[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⑭ 타이·라오스전 보급기지 반찻뜨라깐
타이와 라오스 국경 분쟁 지역인 푸소이다오 산악으로 해가 저문다. 정문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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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스 통치 때부터 사이 벌어져
친베-친중 엇갈리며 간극 심화
타이의 우월의식도 불만 자극 1987년 12월 롬끌라오 두고 충돌
동남아 현대사에서 드문 ‘화력전’
식민주의 침략이 뿌리가 되어
신화가 현실이 된 영토 전쟁 발리 “내 아우 수그리브는 왕국을 훔쳐갔다. 내 죄가 뭐냐? 내가 아우한테 죄를 지었더라도 당신이 나를 죽일 권리는 없다. 나는 락샤스의 라바나왕한테 납치당한 당신 아내 시따를 구할 때 도왔고, 당신 아버지 다샤라트왕은 내 아버지 인드라왕이 락샤스와 싸울 때 도왔다.” 발리 라마 “당신은 수그리브를 아들처럼 보살펴야 한다. 비록 아우가 실수하더라도 용서해야 옳다. 아우는 당신 인생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수그리브는 바라따왕한테 악을 벌할 수 있는 권능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마야비와 싸워 왕국을 잃었고 이제 왕이 아니다.” 아시아의 전통문화와 예술에 밑감이 된 힌두 서사시 ‘라마야나’에서 끼슈낀타의 왕 발리가 동생 수그리브와 싸운 뒤, 힌두신 비슈누의 아바타인 라마한테 살해당하기 전 주고받은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이다. 발리가 죽기 전 수그리브와 화해하면서 삶의 목적과 본질을 가르친다는 줄거리다. 이 이야기가 ‘라마야나’의 타이 버전인 ‘라마끼안’에서는 ‘팔리 손 농’(팔리가 동생을 가르치다)으로 전해진다. 신화시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져온 형제싸움은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이야기 감이 아닌가 싶다. _________
금간 형제애 5월6일 새벽, 형제싸움의 현장을 찾아 길을 떠난다. 타이 북부 치앙마이에서 잘 빠진 국도 11을 따라 남동쪽으로 240㎞ 떨어진 웃따라딧까지 신나게 달린다. 발효시킨 쌀 반죽말이인 웃따라딧 명물 카오판으로 아침을 때우고 에스프레소 한잔을 넘기면서 싸한 가슴으로 풍경을 담는다. 앉으나 서나 무선전화기만 닳도록 만지작거리는 운전기사가 고맙고, 뒤뚱대다 기어이 물잔을 엎지르고 마는 커피소녀도 고맙다. 당신들은 모두 내가 가는 아침 길을 빛낸 주인공들이니까! 영화 보듯 세상을 바라보고 떠오르는 대로 느끼면 그만이다. 여행의 즐거움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핏사눌록주의 반찻뜨라깐으로 가는 길이 만만찮다. 지방도 1244와 1214에 이어 1143으로 정신없이 갈아탄다. 이정표가 흐리멍덩해 위성지도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묻고 물어 반찻뜨라깐에 닿고 보니 꼬박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치앙마이에서 기껏 310㎞를. “왜 여기 왔나?” “어딜 가려고?” 반찻뜨라깐에서 만나는 이들이 하나 같이 묻는다. 바깥사람 발길이 잘 안 닿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관광객들이 구석구석 들쑤시고 다니는 타이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로 치면 면쯤 되는 찻뜨라깐의 9개 마을 가운데 중심지인 반찻뜨라깐은 한 때 타이와 라오스 형제싸움에서 보급기지 노릇을 했던 곳이다. 1810㎞ 국경선을 맞댄 타이와 라오스는 15세기 란상왕국(라오스)과 아유타야왕국(타이) 때부터 역사적으로 얽히면서 문화와 언어의 동질성을 지녀왔다. 특히 18세기 초까지 란상왕국 영토였던 오늘날 타이 이산(동북부) 지역은 메콩강을 놓고 동서로 나라만 갈라놓았을 뿐 사람들은 한 핏줄이다. 아직도 이산 사람들은 라오 말투를 지녀 두 쪽이 서로 어려움 없이 뜻을 주고받을 정도다. 한 핏줄에 말이 통하는 마당에 굳이 문화는 따질 것도 없다. 그러니 타이와 라오스가 형제라는 믿음은 두 나라 전설과 민화에서부터 현대판 노래나 문학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스며있다.
1988년 타이-라오스 국경전쟁에서 두 나라 격전지였던 롬끌라오로 가는 1268 산악길. 정문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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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전투기 동원한 전쟁 꼭 30년 전이다. 신화 속 발리와 수그리브 형제가 권력을 놓고 싸웠다면, 현대판 타이와 라오스 형제는 국경선을 놓고 싸웠다. 이른바 ‘타이-라오스 국경전쟁’이었다. 1987년 12월부터 1988년 2월19일까지 타이와 라오스 정부군은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해 반찻뜨라깐에서 북동쪽으로 70㎞쯤 떨어진 국경 롬끌라오 지역 점령전을 벌였다. 사회주의 형제국끼리 싸운 첫 전쟁이었던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빼고 나면 동남아시아 현대사에서 전투기까지 동원한 정규전은 이 타이-라오스 국경 전쟁 딱 하나뿐이었다.
롬끌라오로 들어가는 길목 삼거리 검문소. 정문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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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롬끌라오로 1988년 타이-라오스 국경전쟁 이해를 돕고자 찻뜨라깐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이제 진짜 전쟁터였던 롬끌라오로 간다. 찻뜨라깐에서 지방도 1237을 타고 북동쪽으로 60㎞쯤 달리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겉보기에도 제법 긴장감이 돈다. 가정집 같기도 하고 초소 같기도 한 이상한 집으로 군복을 안 걸친 군인들이 드나든다. 비무장지대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한 군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군용지도까지 들고 나와 국경을 설명해준다. 친절하다. 날이 저문다. 마음도 바빠진다.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꺾어 지방도 1268을 따라 5㎞쯤 아주 험한 산길을 달린 끝에 롬끌라오에 들어선다. 당장 잠자리가 문제다. 국경초계경찰(BPP)을 찾아간다. 17명이 진 친 막사는 참호로 둘러싸였다. 여긴 더 친절하다. 핏사눌록주가 꾸려온 식물원에 전화를 걸어 잠자리와 저녁을 마련해준다. 식물원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접는다. 12시간짜리 길에 지친 몸이 단박에 풀린다. 전쟁터였던 롬끌라오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는지,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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