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8 19:41
수정 : 2018.05.09 09:21
|
8일 인도 동부 자르칸드주 주도 란치에서 학생들이 거리에서 최근 발생한 소녀 성폭행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란치/AP 연합뉴스
|
지난 3일 동부 자르칸드주서 비슷한 사건 두 차례 발생
피해 소녀, 신체 95% 화상 입고 치료 중…위독한 상황
‘성폭행 대국’ 오명 뒤엔 종교·카스트·남성 우월 문화
|
8일 인도 동부 자르칸드주 주도 란치에서 학생들이 거리에서 최근 발생한 소녀 성폭행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란치/AP 연합뉴스
|
인도에서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뒤 불에 태운 사건이 또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인도 사회가 또다시 깊은 슬픔에 빠졌다.
<비비시>(BBC) 방송은 지난 3일 인도 동부 자르칸드주에서 19살 소년이 이웃에 사는 17살 소녀를 성폭행한 뒤 집에 불을 질렀다고 7일 보도했다. 소년은 소녀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가 거절당한 뒤, 혼자 있는 틈을 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소녀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위독한 상황이다.
같은 날, 같은 자르칸드주에서는 16살 소녀가 남성 2명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 지난 5일 공개돼 충격을 준 바 있다. 이 남성들은 성폭행 범죄에 대해 동네 장로들의 마을회의가 ‘윗몸일으키기 100번’의 체벌과 5만루피(약 80만5000원)의 벌금을 선고하자 피해자 부모를 때린 뒤 피해 소녀를 산 채로 불태워 살해했다. 인도 경찰은 두 사건 사이의 연관성은 없다고 밝혔다.
인도 사회는 슬픔에 잠겼다. 자르칸드주 학생 수십명은 8일 주도 란치 거리에 모여 “성폭행 사건을 인정하라, 보도하라, 목소리를 높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었다. 이들은 잇따르는 성폭행 사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면서 미온적인 수사 당국에 강하게 항의했다.
인도는 ‘성폭행 대국’이란 오명을 쓴 나라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2012년 말 수도 뉴델리의 한 여대생이 남자 친구와 버스를 타고 가다 운전사 등 7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 이후다. 끔찍한 범죄에 인도인들은 경악했다. 이후 성폭행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범죄는 되풀이되는 중이다. 특히 지난 1월 카슈미르주에선 8살 소녀가 성폭행당한 뒤 약을 주입당한 채 살해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인도 전역에서 들불처럼 시위가 번져갔다. 소녀가 이슬람교도라는 사실 때문에 힌두교도인 남성들이 더 악랄하게 폭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언론은 “종교적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꺼렸다. 사건 직후 인도 정부는 12살 미만 어린이 성폭행에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인도에서 끔찍한 성범죄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성을 우월하게 여겨온 전통 문화, 철폐된 신분제(카스트 제도)의 잔재, 빈부 격차로 인한 계층 분열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인도 역사서 <마하바라타> 13권의 40번째 부분에는 “여성보다 더 죄가 많은 창조물은 없다. 여성은 독이요, 뱀”이란 구절이 있다. 델리에서 활동하는 사회학자 시브 비스바나탄은 “여기엔 힌두교도의 권리와 이슬람교도의 권리만 존재한다. (여성의) 인권은 없다”고 꼬집었다. 아크리티 콜리 델리대 강사도 <시엔엔>(CNN) 방송 인터뷰에서 “사회적 배경이 서로 다른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성차별뿐 아니라 성별 내 차별적 위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시바난티 타넨티란 아시아태평양여성자산연구센터 전무이사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다루는 종합적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도에선 매일 100건 이상, 연간 4만여건(2016년 기준)의 성폭행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 발생 건수는 상당히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끔찍한 ‘낙인’을 두려워해 신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