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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2 09:58 수정 : 2018.04.22 11:09

사리모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목축민의 아이들 중 짐승을 키우겠다는 아이는 한명도 없다. 공원국 제공

[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⑬ 봄의 투쟁

사리모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목축민의 아이들 중 짐승을 키우겠다는 아이는 한명도 없다. 공원국 제공

길에 쌓인 두터운 눈은 녹고 개울의 물소리가 우렁차더니 또 눈바람이다. 하루 햇빛이 나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진눈깨비, 눈이 그치면 사나운 바람이 몰아친다. 4월도 이제 중순인데 도대체 파미르에 봄은 언제 올까. 잠깐 누런빛을 보이던 마을 뒤편 능선이 또 하얘지고, 물 긷는 당나귀는 눈을 한껏 뒤집어썼다.

아름다움으로만 따지면 맑든 흐리든 매한가지다. 파미르, 정말 태양신 미트라의 궁전(Pa-i-Mihr)인지 날마다 빛 잔치다. 켜켜이 쌓인 만년설은 단순한 허연색이 아니라 하루에도 빛깔은 수시로 바뀐다. 어둠이 내리기 전 7천m가 넘는 봉우리의 서록은 주황색으로 물들고, 그 위에 떠 있는 구름은 더 진한 붉은빛이다. 맑은 날 새벽이면 산의 동록은 잘 읽은 참외 같은 누런빛을 띠고, 한낮이면 새파란 쪽빛 하늘 아래 새하얀 봉우리는 바다에 뜬 빙하처럼 비현실적이다.

어쩌다 마른바람이 먼지를 실어 오면 봉우리는 보랏빛으로 물든다. 빛이 가진 일곱색은 시시각각 다른 비율로 섞여 한순간도 같지 않은 풍경을 만든다. 설산에 무슨 초록색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비 온 후 언덕과 들판에 쌍무지개가 비스듬히 걸리면 무지개 뒤의 봉우리는 녹음이 우거진 듯 녹색이다.

춥고 구름 낀 날 서쪽 지평선 위의 하늘은 아예 비현실적이다. 원근에 따라 색감과 크기와 속도가 다른 구름 덩어리들이 지는 해를 등지고 움직이면, 수천마리 고래 떼가 하늘 바다에서 헤엄치는 듯하다. 고래의 바다가 완전한 어둠에 잠기면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별은 꼭 고기잡이배들의 등불 같다. 바람이 구름을 걷어가면 하늘은 불꽃의 밤바다로 바뀌고, 객은 엉뚱하게 만선을 걱정한다. 세상에 이런 풍광이 여기 빼고 다시 있을까?

아름다움은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이 노래 불렀듯이 높은 곳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高處不勝寒), 하늘에 정말 궁궐이 있는 줄 모르겠으나 사람이 살 수는 없다. 눈이 날려도 물은 길어야 하고, 바람이 불어도 건초는 내려야 한다. 얼음 같은 물에서 나오자 바로 찬 바람을 맞은 물 긷는 소년의 고사리손은 턱턱 갈라지고, 바람 부는 날 불을 지피는 여인네는 연기를 함빡 뒤집어쓴다. 결국 아름다움은 먹을 수 없고 추위는 뒤집어쓸 수 없다. 오직 대지에 기대 살고 있는 이들에게 빛나는 별보다 한 덩이 소똥이 귀하다. 별은 멀어 몸을 데울 수 없지만 소똥은 오늘 밤을 지켜줄 테니까. 고원의 자연이 엄연하듯 가난도 엄연하다. 이제 집단농장도 없고 아스팔트 공장도 없고 러시아 기술자들도 떠났다. 그리고 벽돌집과 석탄이 있지만 그들은 100년 전보다 훨씬 춥다.

낮에는 볕이 좋더니 다시 눈발이
파미르에 봄은 언제 올까
태양에 힘 보태려 불을 지핀다
봄이 한달이라도 늦으면 대재앙

아이들은 짐승을 키우기 싫다
언어학자, 음악가가 되고 싶다
그들의 웃음이 봄꽃처럼 피어나면
봄은 어쩔 수 없듯 올 것이다

어떻게 오늘날 100년 전보다 더 추울 수 있을까? 100년 전 이 거대한 고원은 키르기스인들의 자일로(Jailoo, 하영지), 즉 여름 목장이었다. 그들은 동쪽으로 멀리 카슈가르 오아시스 언저리부터 서쪽으로는 페르가나 넘어 심지어 사마르칸트 오아시스부터 이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 고원에 만들어진 커다란 촌락들은 거의 1930년대 이후 집단화의 물결 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자일로는 좀 더 높은 산자락 아래지만 그때는 이 고원 전체가 자일로였다. 그러므로 비록 천막 안에서 살았지만 100년 전 그들 조상들의 겨울은 훨씬 따듯했다. 그들은 겨울을 여기서 보내지 않았으므로.

4월이어도 파미르에는 눈바람이 몰아친다. 하지만 노란 꽃도 피기 시작했다. 공원국 제공
봄이 오면 북쪽 페르가나 산록을 떠난 일대는 먼저 자란 풀을 뜯으며 굽이굽이 산을 넘어 고원으로 오고, 카슈가르 골짜기를 떠난 동쪽 형제들은 능선을 따라 이곳에 닿았다. 그들은 6월부터 9월까지 크즐강 좌우로 천막을 가득 펼쳤다가 눈이 오기 전 산을 내려갔다. 사계절 정착촌이 생기면서 유목민은 목축민으로, 목축민은 다시 반(半)농민으로 생업을 바꾸었다. 예전의 자일로는 오늘날 키시토(Kyshtoo), 즉 동영지가 되었다. 최소 백에서 수백㎞에 이르던 이동거리는 짧게는 몇㎞, 길게는 몇십㎞로 줄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노동 방식을 결정했던 옛 체제는 아무런 사후처리도 없이 사라졌다. 밖에서 주어진 체제는 오지 말라 해도 강제로 오고 가지 말라 해도 강제로 떠났다. 지금 정주지에 남은 그들은 100년 전 조상보다 훨씬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분명 누군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언저리까지 이어졌던 조상들의 광대한 이동거리를 부러워할 것이고, 대개 가난했지만 가난을 의식하지 못했던 과거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고원 사람들의 웃음에는 가난이 느껴지되 추위에 눌린 흔적은 거의 없다. 과거는 지나간 것, 이미 이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이제 주어진 것에서 한발짝 더 디딜 뿐이다.

악카즈는 검둥이 야크가 갓 낳은 새끼의 배꼽 둘레에 목도리를 감아줬다. 공원국 제공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소비에트의 유산이라고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학교도 그중 하나다. 하영지의 눈이 녹기를 기다리는 동안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인 무사의 집에 묵고 있다. 그의 부모님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묵은 지 얼마 안 되어 무사가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공, 모레 학교에 가자.” “좋지, 애들 보러?” “하루 영어 수업을 해봐. 서른다섯명이야.”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설렘을 억누르고 수업을 구상했다.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교단에 서니 아뿔싸 수염을 깎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준비한 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나의 수업 주제는, ‘나는 무엇 때문에 내 고향을 사랑하는가’,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였다.

무사가 옆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웃음덩어리 사내 녀석들은 손을 번쩍번쩍 들었지만 막상 대답은 못 하고, 정작 새침한 여자애가 처음으로 대답했다. 감수성이 무딘 중년은 해독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내 고양이는 색깔이 까매요. 그래서 나는 내 고향을 좋아해요.” 고양이 색깔 때문에 고향을? 또 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강아지가 하얗다는 둥 망아지가 어떻다는 둥 사내 애들이 중구난방 떠든다. 모두들 꿈을 적어서 냈다.

누르와 압두르술은 건축가가 되고 싶고, 귈리는 의상 디자이너, 자를륵은 선생님, 주숩은 음악가가 되고 싶단다. 카하르는 중국어를, 압둘샤리프는 터키어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개구쟁이 술라이만에게 농담을 던졌다.

“와, 이름이 오스만의 술레이만 대제와 같구나. 그럼 뭐가 되고 싶지? 대제?”

녀석은 영어보다는 장난이 익숙해서 고개를 숙인다. 녀석이 낸 쪽지를 보니 소원은 언어학자. 시골 초등학교 시절 모두가 전부 농부의 아들딸인 우리 반 서른명 중 농부가 되겠다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농사는 지겨웠다. 그러니 고사리손으로 부모를 돕는 목축민의 아이들 중 짐승을 키우겠다는 이가 없는 것은 당연하리라. 수업을 마치며 애들에게 말해주었다.

“아저씨가 한국에 있을 때 저기 레닌봉 밑에 정말 예쁜 아이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래서 여기 온 거야. 나는 거기 아이들이 밝고, 용감하고, 착하다고 들었어. 그런 사람들의 꿈은 모두 이뤄진대.”

그날 이후 아이들은 한결 더 친근하게 군다. 길에서 만나면 새까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당나귀를 탄 녀석들은 더 의젓하고, 말 탄 녀석들은 의젓함을 넘어 당당하다. 당나귀와 말 덕에 나와 눈높이가 같아진 탓이리라. 날이 따듯하면 애들과 뒤섞여 당나귀 경주를 벌인다. 아이들은 내 나이를 묻지 않고 기꺼이 끼워준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봄이다.

더디지만 봄은 오고 있다. 무사의 예쁜 딸이 한달 전에 태어났고 가축 우리마다 온통 새로 태어난 생명들이다. 강 건너는 아직 눈이라 매일 마을 뒤편 악카즈의 양지바른 목장으로 올라간다. 처음 악카즈를 보았을 때, 마침 그의 검둥이 야크가 갓 새끼를 낳았다. 초원에서 새끼가 태어나는 것만큼 경사는 없다.

“몇 분 전에 나왔어.”

그는 새끼 야크 배꼽 둘레를 목도리로 감았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배꼽으로 바람 들어가면 안 된다고 배에 뭔가를 둘러주듯이. 오후 봄 햇살이 너무 좋았는지, 어미가 털을 다 핥자마자 새끼는 졸았다. 아직 바람이 차다. 움직여야 한다. 악카즈가 일부러 새끼를 몬다. 어미 야크들이 악카즈 주위를 둘러싼다. 비록 주인이지만 혹시나 새끼에게 위해를 가할까봐. 모성애가 큰 어미들은 육아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으로 새끼를 보호한다. 나는 아낌없이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해줬다.

“우리가 아니라 초원에서 태어났어. 정말 경사지.”

사리모골 초등학교의 학생들과 영어 교사인 무사. 공원국 제공
낮에 볕이 그렇게 좋더니 오후 늦게 또 바람이 불고 눈발이 흩날린다. 유목민들에게는 춘분이 새해 첫날 노루즈다. 그때부터 봄이 겨울을 밀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 이란계 유목민들은 태양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지상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 계절은 염원 없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염원에 부응하여 오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은 대개 이 전통을 따른다. 결국 봄은 오겠지만 한달이라도 늦으면 그것은 유목민들에게는 대재앙, 바로 몽골인들이 말하는 주드다. 이 시기 파미르의 바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길을 바꾼다. 겨울의 전령 서풍과 봄의 전령 동풍이 힘을 겨루다 뒤엉켜 길을 잃는다. 눈발 휘날리는 길을 걸으며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대화는 분명 이런 것이리라.

서풍: 물러나라. 다시 눈을 데리고 왔다.

동풍: 악카즈네 야크는 태어나자마자 햇살에 졸던데? 이제 늦었어.

서풍: 오늘 내가 눈으로 덮었으니, 내일은 야크도 올라오지도 못하겠지.

동풍: 누르네 양떼는 눈 속에서 풀을 뜯고 있던데, 야크가 못 올라올까?

서풍: 싹은 올라도 그 아래는 아직 얼음이라네. 오늘 밤 개울을 얼려주지.

동풍: 늦었어. 삼시딘의 동생은 벌써 고추 내놓고 물 뜨러 다닌다네, 그만 물러나게.

서풍: 좋아, 얼음으로 타르박 구멍부터 막아주지.

동풍: 타르박이 하얀 여우가 땅 쥐를 잡는 걸 구경하던데, 이제 물러나게.

봄의 문턱까지 닿았다. 나는 동풍의 말을 보증할 수 있다. 나는 벌써 아지랑이를 보았고, 노란 꽃도 보았고, 망아지가 털을 가는 것도 보았다. 차르한이 새집을 지으려고 맨손으로 흙반죽을 하는 것도 보았고, 소똥구리 배가 불룩한 것도 보았고, 수리가 타르박을 쫓는 것을 보았고, 크즐강에 얼음이 깨지는 소리도 들었다. 해는 하루하루 길어지고 당나귀 부대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차츰 늦어진다. 비록 짧지만 새순이 땅을 들고일어나 벌써 온 들판을 덮었다. 봄은 어쩔 수 없이 오고 있다. 사리모골 학교에서 공부하는 무려 1300명의 아이들, 건축가니 음악가니 언어학자가 될 아이들의 웃음이 봄꽃처럼 피어나는 마을은 매일 봄이다.

봄 계획이 생겼다

4월16일, 악카즈의 목장으로 다가가다 식겁을 했다. 멀리서 검둥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먼지를 일으키며 언덕 아래로 나를 향해 질주한다.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좀체 화내지 않지만 화가 나면 반t짜리 수컷 말도 하늘로 날려 올린다는 녀석의 힘을 알기에. 마침 악카즈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 한 포기 없는 초원 언저리라 숨을 곳도 없다. 정말 나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운명이다. 녀석 뒤로 덩달아 열댓마리가 뛰어온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녀석의 목표는 정말 나였다. 하지만 녀석은 20m 전방에서 멈추더니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 다시 뛰어내려갔다. 바람 때문에 초원으로 보내지 않은 새끼가 든 우리를 내가 지나쳤기에 놈이 달려온 모양이다. 젖이 불어나면 녀석들은 애타게 새끼를 찾는다. 영민한 놈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멈췄을까?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이 또 한치 쌓였지만 눈 사이로 풀싹이 기죽지 않고 빼죽빼죽 머리를 쳐들고 있다. 나에게도 봄 계획이 생겼다. 자일로로 나갈 때 검정말 한마리를 사야겠다. 새끼 딸린 야크가 질주하면 멋지게 달아나게. 그리고 혹여 기회가 된다면 어른들에게 개울가에 느릅나무를 심자 권하고 싶다. 둑이 자꾸 침식되어 무너지고 흙탕물이 인다. 이 물길에 거주민 전체의 복지가 달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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