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3 18:27
수정 : 2017.11.13 22:20
|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개막식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닐라/EPA 연합뉴스
|
필 “인권문제 제기 없었다”…미 “간략히 언급”
두 정상, 거친 입 자제했으나 관계 개선에 의문
필리핀의 미·중 등거리 외교 지속될듯
|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개막식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닐라/EPA 연합뉴스
|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막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의 주요 이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주최국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상회담이었다. 양국 관계 복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어느 정도 개입할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관심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밀어붙여온 마약과의 전쟁이 야기한 인권침해 논란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할 것인지에 집중됐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비판하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개자식”이라고 욕한 게 양국 관계 악화의 직접적 계기였기 때문이다.
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대단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말했다.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것이냐’고 기자들이 큰소리로 질문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40여분의 회담 뒤 양쪽의 발표 내용은 조금 달랐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대화는 이슬람국가(IS), 마약, 무역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인권은 마약과의 전쟁 맥락에서 간략히 언급됐다”고 말했다.
결국 두테르테 대통령의 필리핀이 미국에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회담 뒤 기자회견이나 공식 성명이 없었던 것도 양국 관계에서 당장 진전이 없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이 필리핀에 가장 원하는 대중국 견제에 대해서도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양쪽 관계가 서먹한 근본적인 이유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 이후 택한 미·중 등거리 외교에 있다. 그는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과 타협을 모색하는 한편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필리핀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남중국해 문제에서 유리한 결정이 나왔는데도 필리핀은 중국을 더 이상 압박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필리핀에 적극적으로 구애했는지도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 견제에 입각한 ‘인도-태평양 전략’보다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결을 위한 양자 압박에 초점을 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맬컴 턴불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의 3자 회담을 한 뒤에도 “우리는 무역과 관련해 전에 없던 아주아주 큰 조처를 이뤘다”며 워싱턴에 돌아가 이에 대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 북한 및 다른 것에 대한 완전한 성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필리핀 대통령과의 대화의 초점 중 하나도 무역이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도 아닌 필리핀과의 정상회담에서까지 무역 문제를 거론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초점이 없음을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개막 식전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파격적인 ‘아부’를 선보였다. 그는 정상 만찬장에서 갑자기 필리핀의 인기 가수 필리타 코랄레스와 함께 ‘당신’이라는 유행가를 불렀다. 이 노래에는 “당신은 내 세계의 빛, 내 마음의 절반”이라는 가사가 있다. 노래를 부른 뒤 “신사숙녀 여러분, 미국의 최고사령관 주문에 따라 내가 초대받지 않은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미국·중국 등거리 외교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