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09 17:23
수정 : 2017.02.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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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주 반둥시에 있는 수카미스킨 교도소의 정문 앞에서 한 여성이 면회를 기다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주간 <템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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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거물급 부패범들 ‘초호화’ 교도소 생활
감방 개조해 정원 만들고 연예인 불러 파티도
병원 치료 핑계로 외출…성매매·해외여행까지
“부패와의 전쟁 실패” 비판에 감사·이감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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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주 반둥시에 있는 수카미스킨 교도소의 정문 앞에서 한 여성이 면회를 기다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주간 <템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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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9일 이른 아침, 인도네시아 자바주 반둥시의 호텔인 게이트웨이 아파트먼트 앞에 구급차 한 대가 멈춰섰다. 구급차에서 내린 사람은 앙고로 위조조(63). 그는 인도네시아 삼림부의 무선통신 사업을 따내기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반둥 수카미스킨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수감자였으나, 연말을 전망 좋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지냈다.
부패 혐의로 수감된 인도네시아의 유력 인사들이 감옥에서도 5성급 호텔에 버금가는 초호화 생활을 누리며 ‘부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네시아 시사주간 <템포>는 4개월여의 탐사취재를 통해 고위층의 호화 감옥살이 실태를 최신호에서 낱낱이 폭로했다.
이 교도소의 ‘거물급’ 수감자들은 감방을 개조해 발코니 정원을 만들고, 에어컨과 소파, 커튼, 냉장고, 온수기, 음향기기 시스템을 갖췄으며, 연예인을 불러 라이브 음악 파티를 즐긴다. 교도소 안에선 가든카페와 미용실, 마사지숍을 드나들며, 인근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한다. 바깥의 부패 행태가 교도소 안에서 고스란히 재연되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출소한 민족민주당의 파트리스 리오 카펠라 전 사무총장은 <템포>에 “교도소에서 사는 비용은 꽤 비싸다. 나는 매달 1000만루피아(약 86만원)을 썼는데, 에어컨과 발코니 정원의 전기료가 가장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부패 특혜를 누리는 수감자들은 대부분 전직 장관과 정치인, 고위 법관, 기업 경영인들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는 루프티 하산 이스하크 인도네시아 번영정의당 전 대표, 아킬 목타르 전 헌법재판소장, 아나스 우르바닝룸 전 민주당 대표 등도 포함됐다. 최근에도 법무장관을 지낸 헌법재판소 재판관 파트리알리스 아크바르가 육가공업체로부터 구제역 발병국가에서 쇠고기 수입을 허용해주는 대가로 20억루피아(약 1억7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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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카미스킨 교도소의 부패 실태를 폭로한 현지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에 수감자들이 이슬람식 기도를 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실렸다. <자카르타 포스트>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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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수감자들은 병원 치료를 구실 삼은 바깥 나들이도 자유로웠다. 하루 나들이에는 보통 1000달러(약 115만원)의 뇌물이 필요했다. <템포>는 지난해 10~12월에만도 수많은 수감자들이 교도소 밖을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중에는 구급차를 타고 교도소를 나와 반둥 호텔에 들어간 지 13시간 뒤에 한 젊은 여성의 팔짱을 끼고 나온 수감자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2010년에는 탈세·사기 혐의로 복역 중이던 한 수감자가 발리섬에서 벌어진 국제 테니스 대회를 관람하는가 하면, 위조여권을 사용해 마카오와 싱가포르 등으로 해외여행을 다녔다. 이 모든 특혜는 수감자와 교도소 관리들 사이에 오가는 뒷돈으로 이뤄진다.
독재자 하지 모하마드 수하르토 전 대통령(1967~1997년 재임)의 아들 토미는 살인 사건 조작 혐의로 15년형을 선고 받았다가 4년만에 풀려났는데, 복역 중 교도소 안에서 개인비서를 부리고 외부 나들이땐 헬리콥터를 이용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9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지난해 사형이 집행된 한 마약사범은 자카르타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 수시로 여자친구가 면회를 왔으며, 그때마다 이른바 교도소장실 옆에 따로 마련된 ‘사랑실’에서 섹스와 마약을 즐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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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소나 라올리 인도네시아 법무·인권 장관이 8일 의회에서 수카미스킨 교도소의 부패를 끝낼 대책을 밝히고 있다. 인도네시아 주간 <템포>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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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정부는 부패근절위원회(KPK)를 구성해 17년째 고위직 부패를 없애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경찰과 의회 등 권력층의 견제와 공격이 지속되면서 이 기구의 위상과 권한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시민단체 ‘인도네시아 부패감시’의 아드난 토판 후소도는 “수카미스킨 교도소에서 드러난 부패 실태는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대다수 부패 혐의 수감자들이 범죄를 뉘우치지 않은 채, 여전히 재물을 소유하고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감옥 안에서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패근절위원회도 법관들과 교정당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이런 기구들을 개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인도네시아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정부는 교도소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감사를 벌이고, 교도관들을 전직 발령하며, ‘특별실’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야소나 라올리 법무·인권 장관은 7일 “수카미스킨 교도소의 모든 부패 관련 수감자 488명을 인근의 다른 교도소 4곳으로 점차적으로 분산 이감하겠다”고 말했다고 <템포>는 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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