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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6 15:09 수정 : 2016.11.04 10:56

[2016 아시아미래포럼]
기고 / 부탄서 살아보니

솔직히 말뿐인 줄 알았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는데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수도 팀부 국립병원에서 못 고치면 인도 콜카타 큰 병원까지 정부에서 치료비뿐 아니라 차비까지 줘서 보내준다는 말은 선뜻 믿기 힘들었다.

“콜카타 내가 다녀왔잖아.” 지난 1년 동안 부탄에 살며 친해진 여행사 가이드 체링(36)이 말했다. 아내가 신장 옆에 담석이 생겼는데 국립병원 의사들이 콜카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부탄 정부가 병원비에 교통비까지 댔다. 체링은 보호자로 부탄대사관이 마련해준 숙소에서 한 달 넘게 지냈다. 에어컨 안 돌아가는 방 하나에 다른 병간호 가족 5~6명이 함께 지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공짜다. 정부에서 식비로 하루 150눌트럼(약 3천원)까지 줬다. 체링은 말했다. “인도 병원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못 내 쩔쩔매는 사람들을 봤어. 부탄에서 태어나 얼마나 다행인지. 고마웠어.”

체링의 고향은 팀푸에서 차로 하루를 달려가야 하는 붐탕이다. 부모님은 자급자족하는 농부였다. 초등학교까지 가는 데 걸어서 세 시간이 걸렸다. 걸어가는 동안 가장 무서운 건 곰이었다고 한다. 중학교는 기숙학교를 다녔다. “항상 배가 고팠어.” 성적이 좋으면 국립고등학교에서 국립대학까지 다 공짜였다. 영어를 잘하는 체링은 무상교육의 사다리를 타고 수도 팀푸로 와 신흥 중산층이 됐다.

그래도 체링은 운이 좋은 편이다. 부탄 전체에 의사가 185명뿐이다. 의사 없는 곳이 태반이다. 진단을 받아야 콜카타에 갈 게 아닌가. 예시(23)는 2년째 국립병원 옆에 있는 ‘환자 게스트하우스’에 산다. 18살에 신부전이 발병했다. 그의 고향 근처엔 투석기가 있는 병원이 없다. 한방에 6~7명이 사는 환자 게스트하우스를 그가 떠날 수 없는 이유다.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부엌은 파리들로 북적이지만, 돈 걱정 없이 머물 수 있다.

부탄이 돈을 더 벌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까? 2016년 부탄의 경제 성장률은 7.3%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민총행복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5년 전 0.743에서 0.756으로 높아졌다. 물질적 만족도가 높아진 게 한몫했다. 그런데 공동체 소속감은 떨어졌다. 이웃에 대한 믿음은 11%나 곤두박질쳤다. 모든 차를 달구지로 만드는 비포장, 마성의 길에서 시속 20㎞도 내지 못하는 페라리도 봤다. 청춘들은 수도 팀푸로 향하고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열망한다.

봄볕이 따뜻한 날에 만난 지그미(77) 할아버지는 산허리에 널브러져 앉아 있었다.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전구 하나 사러 가고 있어.” 큰길까지 족히 두시간은 더 남았다. “아무 데나 재워달라면 되지.” 할아버지는 혼자 산다. 절에서 방 한 칸을 내줬다. 동네 사람들이 먹거리를 챙겨준다. 주로 하는 일은 기도다. “1억번 만트라를 외면 새 이가 난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있는 이도 빠져. 그래도 잇몸 저 아래쪽에서 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마을 공동체가 붕괴하면 지그미 할아버지는 이가 아니라 생계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웬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팀푸에 호화 빌딩이 하나씩 들어설 때마다 되레 국민총행복 시도가 실패할까 조마조마해진다. 그곳이 어디건 가난하더라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하나쯤은 지키고 싶어서일 거다. 김소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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