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3 22:22
수정 : 2016.10.13 23:35
국민 절대적 존경 받아와
군사쿠데타 막은 적도
군부와 엘리트와 밀착 한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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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쾌유를 빌기 위해 방콕 시리랏 병원 주변에 있던 타이 국민들이 국왕 사망 소식에 흐느끼고있다. 방콕/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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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동안 재위해 세계 최장 재위 국왕이었던 타이의 푸미폰 아둔야뎃(89) 국왕이 13일 숨졌다. 푸미폰 국왕은 타이 국민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기에 그의 사망은 타이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왕의 권위와 인기에 정권의 정당성을 상당 부분 의지해왔던 왕실과 군부정권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타이 왕실은 13일 성명을 내어 “국왕이 오후 3시52분께 시리랏 병원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공식 발표했다. 왕실은 국왕의 사망 원인을 밝히지는 않았다. 앞서 지난 9일과 12일 타이 왕실은 “푸미폰 국왕이 신장에 이상이 있고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다”며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다”고 발표한 바 있다. 푸미폰 국왕은 최근 2년 동안 건강악화로 수도 방콕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에 라마 9세로 즉위해 70년간 재위했다. 타이에서는 1932년 쿠데타로 절대왕정이 폐지돼 푸미폰 국왕에게 정치적 실권은 없었으나, 푸미폰 국왕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푸미폰 국왕은 왕세자가 아니었으나 형인 아난다 마히돈이 1946년 궁정에서 의문의 총기 사고로 숨진 뒤 왕위를 이어받았다. 아난다의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다. 미국에서 태어나 스위스 유학을 한 푸미폰 국왕은 1950년 공식 즉위식을 열었으며, 빈곤 지역 방문과 마약 재배 지역 대체작물 개발 정책 등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조금씩 얻어갔다.
푸미폰 국왕은 군부의 폭주를 막는 역할을 한 적도 있다. 그는 평소 “현실을 알지만 입은 닫는다”는 정치 불개입 원칙을 고수했지만, 1973년 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발포하자 왕궁 문을 열어 도망치는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등 군사정권 반대를 분명히 했다. 1992년 군사쿠데타와 뒤이은 민주화 시위로 희생자가 늘자 양쪽의 지도자를 불러들였고, 양쪽은 국왕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쿠데타 주모자 수찐다 크라쁘라윤 장군은 곧 사임했다.
하지만 타이 왕실은 최근 군부와 방콕의 엘리트층에 밀착된 행보를 보였다. 군부와 전통적 엘리트층은 ‘왕실 모독죄’ 처벌 규정과 단속을 강화하며 왕실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며, 자신들의 반대 세력으로 떠오른 신흥재벌 출신 탁신 친나왓 총리를 군사쿠데타로 2006년 몰아냈다. 타이에서는 이후 왕당파인 노란 셔츠(옐로 셔츠) 시위대와 친탁신파 시위대인 붉은 셔츠(레드 셔츠)가 번갈아 시위를 벌이는 정치 혼란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사태는 왕실 근위대 출신인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이 2014년 탁신의 동생인 잉락 전 총리를 쿠데타로 몰아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타이 사회의 대립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푸미폰 국왕은 총리에 오른 쁘라윳의 쿠데타를 묵인했다. 미국 <포브스>는 2014년 푸미폰 국왕의 재산이 30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한 적도 있다.
푸미폰 국왕이 숨지면서 푸미폰 개인의 권위와 인기에 정권의 정당성을 상당 부분 의지해왔던 왕실과 군부는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쁘라윳 총리가 왕위 계승자로 밝힌 왕세자인 마하 와찌랄롱꼰(64)은 푸미폰만큼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와찌랄롱꼰은 2014년 부인 시랏 수와디가 뇌물 수수 등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며 이혼했다. 와찌랄롱꼰은 왕실 사람과 1977년 첫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고, 두번째 부인이 1996년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에 가버리면서 파경을 맞았다.
<결코 웃지 않는 왕>이라는 제목으로 푸미폰 국왕에 대한 책을 쓴 미국 작가 폴 핸들리는 13일 <에이피>(AP) 통신에 “다음 왕은 푸미폰 국왕만큼 영향력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국왕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군부와 정치권이 차기 국왕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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