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22 16:35
수정 : 2016.09.22 21:11
11~17일, 모두 7차례 직접 취재해 연속 보도
‘과거는 닫자’는 정부 당국 태도 비춰 이례적
한국에 책임 요구 등 인민의회에 상정했다는 내용도
당 간부 “학살 50주년 생존자들 만남 조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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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보도가 실린 일간 <뚜오이쩨>의 11~15일치 신문. 한-베 평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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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일간 <뚜오이째>가 지난 11~17일 모두 7차례에 걸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과 활동 모습을 연속 보도했다. 베트남의 유력 일간지가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의 사연을 직접 보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뚜오이째>는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발행되는 일간지로, 1999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뒤 이 내용을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전한 현지 신문이기도 하다.
<뚜오이째>는 11일 보도한 ‘학살 이후의 생존?1부: 평생을 끊어질 듯 고통스럽게’를 시작으로 5회까지 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다뤘다. ‘마지막 임무: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라는 제목의 6회에서는 지난해 4월 학살 생존자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떤런(65·빈안 학살 생존자)의 사연을 전했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런은 “지난해 7월 빈딘성 인민의회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베트남 정부가 한국 정부에게 총 1004명이 희생된 빈안 학살 사건과 관련해 세 가지 사항을 요구하도록 공식적으로 건의했다”고 밝혔다. 런씨가 건의한 내용은 한국 정부에 베트남에서 저지른 일들에 대해 사죄를 요구할 것,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요구할 것, 민간인 학살로 인한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 등이다.
이는 ‘한국군의 학살을 인정하면 된다’는 기존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요구다. 런의 요구사항을 들었던 반티낌늉 빈딘성 인민의회 대표는 “건의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종합했으며, 지난해 7월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빈딘성 인민의회 회기에 이 내용을 상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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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8일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173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응우옌떤런(뒷줄 오른쪽)과 응우옌티탄(뒷줄 왼쪽)씨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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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생존자들이 고령화되면서 생존자들의 증언을 남기기 위한 관 차원의 노력도 시작되고 있다. 모두 18건의 민간인 학살로 1500여명의 피해가 발생한 꽝응아이성의 응우옌당부 문화통신관광청장은 “베트남의 모든 성이 1차적으로 생존자들에 관한 정보를 종합한다면, 학살 50주년이 되는 올해 안에 생존자들의 만남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한겨레21>을 통해 처음 보도한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이사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도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들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있을 때 운동이 거세졌다. 베트남도 비슷하다”며 “생존자들 사이에서 세대가 넘어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1960년부터 15년간 이어진 베트남전이 끝난 뒤 베트남 정부는 민족 통합과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과거를 닫고 미래를 열자’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역시 ‘닫아야만 하는 과거’가 됐다. 그런데 정부 통제가 강한 베트남에서 <뚜오이째>의 이번 연속보도는 사실상 정부의 묵인 아래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난 1999년 <한겨레21>은 한국군 작전지역이었던 중부의 5개 성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을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뚜오이째>는 마지막 7회 기사에서 “2000년부터 한국 곳곳에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졌고, 그 기념시설에는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자유를 위해 싸운 용사로 칭송되고 있다”며 “이는 일그러진 관점이며, 훗날 미래 세대에게 쉽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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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보도가 실린 일간 <뚜오이쩨>의 1~5회차 보도 내용. 주로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겼다. 한-베 평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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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80여건, 9000여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1966년은 맹호부대에 의해 1004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된 ‘빈안 학살’, 청룡부대에 의해 430여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된 ‘빈호아 학살’ 등 민간인 피해가 집중됐다. 50년을 맞은 올해 베트남 중부지방 곳곳에서는 피해자들을 기리는 50주년 위령제가 열렸다. 한국 정부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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