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30 22:17
수정 : 2016.08.30 22:17
필리핀 대통령 취임 두달 1916명 사살
“총 쏴도 돼” 무차별 처형 주도
초법적 살인행태 비판 의원에
“바람피운 여성” 인신공격까지
의원 “그만할 수 없다” 맞받아
지난 7월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묻지마식 무차별 용의자 살해’로 인해 두 달 동안 숨진 이들이 2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필리핀 야당의 상원의원인 레일라 데 리마(오른쪽)는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초법적 살인에 대한 의회 조사를 이끌면서, 숨진 이들 가운데 마약 용의자가 아닌 이들도 많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경단원들이 실제론 위장된 경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던 중, 지난 18일 두테르테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어 리마 상원의원이 “거물 마약상에게 뒷돈을 받았고 운전사와 바람을 피웠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9일 마약 단속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경찰관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리마 의원을 향해 “여자로서 면목을 잃었다. 나라면 스스로 목을 맬 것”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리마 의원은 의혹을 부인하면서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리마 의원은 29일 “내가 사임한다면 내 삶은 평온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임은 내가 죄가 있다고 인정하는 게 되고 내가 약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나는 죄를 짓지도 않았고 약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30일에는 마약 단속 과정에서 유탄을 맞아 무고하게 희생된 5살 소녀의 집도 방문했다. 숨진 5살 소녀의 이름은 다니카 가르시아로, 지난 23일 북부 다구판시 집에서 밥을 먹다가 마약 용의자로 지목된 할아버지를 쫓던 괴한들이 쏜 총의 유탄에 맞아 숨졌다.
로날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지난 22일 마약과의 전쟁 관련 초법적 살인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두테르테 취임(6월30일) 뒤 마약 범죄 용의자로 의심되는 이들 1916명이 숨졌는데, 이 중 756명은 경찰 작전 과정에서 숨졌고 나머지 1190명은 자경단 등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다.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경찰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도 한다”고 말했다.
리마 상원의원은 이달 중순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최근 숨진 이들이 마약 범죄에 관련된 이들뿐만이 아니라는 정황이 있다. 부패한 공직자와 그들의 조력자들이 자신들이 마약 밀매에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조직을 소탕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희생당한 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자신을 변호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리마 의원은 “내 친구와 가족 모두 이제 그만하라고, 조용해 지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는 그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에도 두테르테는 거침이 없다.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인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에서 열린 당선 축하연에서 “누구든지 거물 마약상을 죽이면 500만페소를 상금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취임 전인 6월 초에도 마약 범죄 용의자를 발견한 시민이 총을 갖고 있다면 마약 범죄 용의자를 현장에서 죽여도 좋다고 했다. 취임 뒤 유엔이 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하자, “엿 먹으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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