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01 19:54
수정 : 2016.07.02 11:28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
‘우토로 마치즈쿠리(민관 협치 마을 만들기)’ 사업을 위한 공사가 한창인 6월27일 오후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마을. 우토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이번 주는 신문에 싣지 않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역사는 잊히는가, 기억되는가? 가해자 쪽에서는 자신들의 과오가 기록된 역사는 잊히길 원하고, 피해자 쪽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이 또렷이 기억되길 원한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51번지. 일명 ‘우토로’로 불리는 이곳은 1941년 일본 정부가 교토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재일 조선인 1300여명을 동원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이다. 이들 조선인들은 밤낮으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도 일본의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제대로 된 노임조차 받지 못했다. 도움 주는 이도 없이 궁핍한 형편에 귀국도 하지 못한 채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터를 잡고 살아왔다. 1988년까지도 마을에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지하수로 연명하면서 가난과 차별의 삶을 이어온 이들은 대부분 일본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지내왔다. 이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은 1989년이다. 닛산차체로부터 소유권을 인수받은 서일본식산이 강제퇴거를 요구했고 지난 2000년 일본 대법원의 퇴거 결정이 내려지면서 오갈 데 없이 쫓겨날 처지가 되었다.
지난 2005년 5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은 이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모금운동을 펼쳤다. 모금운동은 의외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박원순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영화배우 김혜수, 안성기, 지진희, 김선아씨 등 ‘우토로 희망대표 33인’이 모금 참여를 권유하는 릴레이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그해 유재석씨도 1천만원을 기탁했는데, 그가 인터뷰를 고사해서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10년이 지난 2015년 우토로를 방문한 <무한도전>이 방영되면서이다.
한국 정부도 지원에 나서면서 2010년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으로 설립된 ‘우토로 민간기금재단’과 이듬해 한국 정부 지원금을 관리하는 ‘우토로 재단법인’이 우토로 땅을 구입했다. 두 재단이 소유한 땅은 전체 우토로 땅의 3분의 1이 됐다.
차별의 상징인 우토로 마을이 올해 철거에 들어갔다. 7월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가기에 앞서 6월 말부터 철거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겨우 산 땅에 건축비 마련도 요원한지라 이들을 돕던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일본 행정부를 설득해 공적주택을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장 주민들이 살 곳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역사적 공간을 일부라도 보존하자는 주장은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주민들을 도와오던 일본 시민단체 사람들도 공적주택마저 무산이 될 것을 우려해 ‘역사’의 ‘역’ 자도 꺼내지 말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앞으로 4~5년에 걸쳐 공사가 이뤄지면, 지난 세월 차별과 가난을 딛고 살아온 조선인 강제징용마을인 ‘우토로’는 사라지고 공적주택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새집으로 들어갈 이곳 사람들은 마음이 무겁다. 굴착기와 불도저로 밀어내는 것은 단순한 낡은 가옥이 아니라 굴곡된 지난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26일 우토로 마을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정아 기자가 출장을 갔다. 기본장비에 드론까지 이고 지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마을 전체의 모습을 찍기 어려웠던 곳이다. 우토로 상공에 드론을 띄웠다. 6월30일치 지면에는 굴착기에 철거되는 집과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모습이 실렸다. 지면 사정상 실리지 못한 사진을 여기 싣는다. 억지로 지우려 한 역사를 이렇게라도 남겨 놓기 위해서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