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6.19 17:03 수정 : 2016.06.19 22:48

국제 초점 I 미얀마 민간정부 출범 석달

지난 8일, 미얀마 중부 건조지역이자 세계 3대 불교 성지의 하나인 바간 지역의 도로로 지역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는 길가에 멈춰 선 트럭의 짐칸 위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학생들이 위험스레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철도·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이 부실한 미얀마에선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트럭이 여객 운송수단으로 흔히 활용된다.

미얀마 양곤에 사는 에스터 포 산 찡은 아웅산 수치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지금도 깜짝깜짝 놀란다. 날 때부터 군부 정권 아래서 살아온 관성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수치 모습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아, 세상이 달라졌구나’라고 생각한다. 에스터는 “요즘은 페이스북에서 정치 문제로 댓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군부정권 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을 거두고 지난 3월30일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가 대폭 확장됐다는 것이다.

50여년만에 민간정부 들어선뒤
SNS서 정치댓글 논쟁 등
의사표현의 자유 대폭 확대

수치 석달전 ‘100일 계획’ 주문
군부의 반격 막고 민심 잡으려면
조속성과 필요한데 청사진 안갯속

관료부패에다 집권당 균열 조짐
인구 70%인 농민의 빈곤 처절
민생 해결에 민주주의 운명 달려

하지만 에스터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변화가 시작됐다는 느낌은 아직은 없다”며 “새 정부가 100일 계획을 실행한다던데,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자유롭고 등 따습고 배부른 미얀마’를 일굴 능력이 있는지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에스터는 이화여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공부하고 미얀마로 돌아와 지금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미얀마사무소에서 일한다. 젊은 인재인데, 불교국가 미얀마에선 소수자인 개신교도라 변화에 각별히 민감하다.

‘100일 계획’(100-day plans)이 뭐길래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것일까? 미얀마에서 ‘대통령 위의 존재’로 통하는 수치는 새 정부 출범 직전인 3월26일 14개 부처 장관과 만나 100일 계획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부처별로 계획을 세우되, “실행 가능한 내용”을 담으라고 강조했다.수치의 100일 계획 주문엔 조기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반세기 넘게 미얀마를 장악·통치해온 군부에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면 민심을 붙잡아둘 ‘성과’가 긴급하다는 판단이다.

민족민주동맹이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민족의회(상원) 60%와 인민의회(하원) 58%를 장악했지만, 군부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헌법에 따라 의회 의석의 25%를 자동 보장받을뿐더러, 새 정부에서도 부통령과 국방·국경경비·내무 3개 부처가 군부 몫이다. 요컨대 개헌 저지선과 무력을 군부가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 <가디언>이 사설에서 “미얀마엔 아직도 두 개의 정부가 있다”고 했을 정도다. 수치가 ‘대통령 위의 존재’인 국가자문역(state counsellor)이라는 전대미문의 위인설관에다 외교·대통령실 등 2개 부처 장관을 겸하는 무리수를 두는 배경이다. 애초엔 교육·에너지부까지 더해 4개 부처 장관을 겸했다. 수치 정부의 강력한 후원자인 미국 정부가 경제 제재를 일부 해제하면서도 미얀마를 ‘돈세탁 주요 우려 대상국’에 묶어두고 미얀마의 대표적 군부 유착 기업인 아시아월드와 스티븐 로 아시아월드 회장을 제재 대상에 추가한 이유도 ‘군부를 제어하면 수치를 돕는다’는 이중 포석에 따른 조처다. 미 재무부는 5월17일 일부 제재 해제를 발표하며 “(미얀마의) 민주 개혁을 촉진하고 군부와 일부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한 압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자금법’에 따라 의회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미얀마 군부의 ‘경제권력’을 제어하자면 경제 제재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인 셈이다.

어쨌든 수치의 100일 계획은 군부가 새 정부에 협조하도록 제어할 힘의 원천인 미얀마 인민의 지지를 붙잡아둘 유력한 카드라 할 수 있다. 미얀마 정부 관료들이 100일 계획에 붙인 별칭이 “조속한 성과(Quick win)”인 데서 알 수 있듯, 100일 계획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마음은 올림픽 금메달인데, 몸은 올림픽 참가 자격을 얻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수치가 100일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석달이 다 돼가는데, 새 정부 100일 계획의 전모를 아는 사람이 없다. 수치 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100일 계획을 발표한 적이 없어서다. 개별 부처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제각각이다. 양곤경찰청은 ‘범죄 소탕 100일 계획’을 5월1일 시작한다고 발표했고, 네피도 시의회는 ‘법의 지배’에 초점을 맞춘 100일 계획을 5월12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미얀마 현지언론인 <미얀마 타임스>는 “100일 계획 시작일이 언제인지 여전히 혼란스럽다”며 “100일 계획은 지금껏 알려진 게 워낙 없어 실제가 아닌 ‘흥행 전략’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코이카 미얀마사무소 문상원 부소장은 “아직은 미얀마 새 정부의 정책 노선과 기조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미얀마는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의 하나’라고 불릴 정도로 관료집단의 부패가 극심하다.

집권 민족민주동맹의 경제정책 기조를 둘러싼 ‘균열’도 감지된다. 한타민 민족민주동맹 중앙집행위 위원장(경제위·교육위·조사분과 담당)은 6일 양곤 세도나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한 기자회견에서 민족민주동맹은 인권·민주주의·빈곤 해소·소수민족 갈등 해소 등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배석한 당의 경제전문가인 아웅코코 박사는 ‘작은 정부’ ‘경제적 효율성’ ‘시장 지향적 경제’ 따위를 강조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아주 멀다.

미얀마 양곤의 흘레단 센터 앞 삼성 ‘기어 VR(가상현실)’ 광고판 주변에서 미얀마 청년들이 즉석 거리공연(버스킹)을 준비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얀마 인민의 처지가 ‘민주주의와 새 정부의 안착’을 기다려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데 있다. 7일 미얀마 수도인 네피도 외곽의 ‘쫑콘 마을’에서 만난 농민들의 새 정부에 대한 평가와 바람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중년의 마웅 저우와 진 누에이는 “(지난해 11월 총선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펌프가 설치되고 다리가 놓였다”고 자랑했다. 사실은 이 마을의 전기·펌프·다리는 새 정부의 선물이 아니라 코이카가 ‘새마을 사업 시범 마을’ 생활환경 개선 차원에서 지원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 마을엔 보건소가 없다. 보건소가 빨리 세워져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마을 노인 윈 마우는 “우리는 대대로 살던 마을에서 이곳으로 쫓겨왔다. 정부는 아직도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쫑콘마을 사람들은 2004~2005년 군사 정부가 ‘미국의 침략 우려’를 이유로 수도를 연안의 양곤에서 내륙 깊숙한 네피도로 급작스레 옮길 때 살던 마을이 네피도 공항 터로 수용됐다. 마웅 저우는 “땅이 없어 일용 노동으로 간신히 먹고 산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이 마을엔 130가구(508명)가 사는데 마을 전체 경작지가 5.4ha뿐이다. 미얀마의 평균적 소농 4가구 몫에 불과하다. 이렇듯 이들은 민주주의·인권·복지·교육·국가폭력·삶의질 등의 추상적 개념어가 아닌 땅·전기·식수·보건소·학교 등이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

미얀마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은 처절하다. 전체 농민의 90%가 소농인데 가구당 경작지는 1.3ha다. 인구는 한국과 비슷하고 면적은 한반도의 3배나 되는 미얀마의 소농 가구 경작지가 한국 농가(1ha 안팎)와 별 차이가 없다. 더구나 소농 100명에 95명은 농사에 산업문명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소 두 마리에 쟁기를 걸어 밭을 갈아야 하고, 관개수로나 화학비료는 언감생심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550㎜뿐이어서 자연에 의지해선 땅콩·깨 정도를 빼고는 작물 경작이 어려운 중부 건조지대 바간의 너른 들판에도 관개수로가 전혀 없다. 땅은 모두 국가 소유(농민은 30년 경작권을 갖는다)이고, 밭에 심을 곡물의 종류조차 원칙적으로 정부가 정한다. 상수도가 설치된 농가는 없다시피하고, 농가의 85%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벼농사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전문가 집단인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미얀마사무소 신종수 소장은 “라오스·베트남·캄보디아·타이 등 주변국과 비교할 때 미얀마의 농업기술이 최저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113달러(국제통화기금, 2014년 기준)인데 소농가구 연평균 소득은 250달러다. 인구의 25% 이르는 1300여만명이 하루 1500원(1.25달러)으로 연명한다.

아웅투 농축산관개부 장관이 7일 네피도 예진지역 농업조사국에서 진행된 ‘수확후 관리기술연구소’ 착공식에서 “많은 부분 농업정책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농민의 삶이 좋아지지 않는 한 미얀마 민주주의의 앞길이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책 입안·집행의 토대인 필수 기초통계와 기반시설·제도가 너무 부족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미얀마엔 망고나무가 한국의 밤나무처럼 지천으로 널렸다. 맛도 아주 좋다. 그런데 그 망고를 수출하지 못한다. 수출에 앞서 망고에 딸려갈지 모를 병해충을 없애고 이를 인증할 국가검역시설이 없어서다. 코이카 공적개발원조(ODA) 농업전문가인 배도찬씨는 “한국돈 20억원이면 되는데 그게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미얀마 정부가 코이카의 재정(450만달러)·기술 지원을 받아 ‘수확후 관리기술연구소’ 설립·운영을 서두르는 건, 이런 문제에 대응하려는 첫 걸음인 셈이다. 기초통계가 얼마나 엉망이냐면, 2014~2015년 미얀마 정부가 유엔인구기금(UNFPA)의 도움을 받아 30년 만의 전국 규모 인구센서스를 실시했는데, 인구가 수백만명 줄어든 5148만명으로 조사됐다. 군부 정권은 ‘사라진 400만명’은 돈 벌러 인근국가에 간 노동자라고 둘러댔다. 지난 3월엔 양곤에 미얀마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개장했는데 지금껏 상장한 미얀마 기업이 2곳뿐이다. 상장에 필요한 경영정보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얀마 경제는 군부가 개방을 선언한 2011년 이후 연평균 6~8%대의 고속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풍부한 자연자원 등 ‘잠재력’ 덕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센터의 경제분석관인 메이 쿨리와 마사 백스터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화로) 열정은 드높고 기회는 충분하다. 이제는 풍부한 잠재력을 현실로 바꿀 때”라고 호소했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앞길을 결정할 운명의 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민의 삶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반세기 만의 민간정부와 이제 첫발을 뗀 미얀마 민주주의의 운명이 달려 있다. 주류인 버마족(인구의 70%)와 135개 소수민족(인구의 25%)의 갈등을 해소할 열쇠도 그 길 위에 있다.

바간·네피도·양곤/글·사진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