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0 20:09
수정 : 2016.05.10 20:41
필리핀, 왜 두테르테 선택했나
경제성장에도 26%는 빈곤선
고질적인 범죄는 더 증가
권력·부는 유력 가문이 독점
“범죄 퇴치” 서민 시장에 기대
“내각제로 개헌 추진” 발표
‘징벌자’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 시장이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투표 하루 뒤인 10일 “겸허하게 국민의 명령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필리핀 선거 감시단체인 ‘책임있는 투표를 위한 교구 사제 평의회’(PPCRV)가 이날 개표율 91% 수준에서 내놓은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득표율 약 39%로 2위와 3위인 마누엘 로하스 내무장관(약 23%)과 그레이스 포(약 22%) 상원의원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로하스 장관은 “두테르테 시장이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하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대통령 선거와 별도로 치러진 부통령 선거에서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이 득표율 34.5%로 레니 로브레도 하원의원(35.05%)에게 근소한 차이로 뒤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필리핀인들은 대선에서 “범죄자들을 죽여 고기밥을 만들겠다”와 같은 말을 서슴지 않더라도 강력한 지도자처럼 보인 두테르테를 선택했다. 부통령 선거에서도 독재정권 시절을 미화하는 발언을 자주했던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에게 상당한 표를 던졌다.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은 “필리핀은 아시아의 병자에서 아시아의 빛나는 별로 떠올랐다”고 말했지만, 필리핀인들은 아키노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인 로하스 장관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키노 대통령은 1986년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몰락시킨 민주화 시위인 ‘피플 파워’로 집권한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필리핀인들이 피플 파워 30주년인 올해 이런 선택을 한 배경에는 아키노 대통령 집권 6년 동안 국민들의 삶이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국민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아키노가 집권을 시작한 2010년부터 올해까지 필리핀 경제는 평균 6%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사회복지 예산도 늘었다. 하지만 필리핀의 만성적인 문제로 꼽히는 만연한 빈곤은 그리 개선되지 않았다.
필리핀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전체 인구 4명 중 1명꼴인 26.3%가 빈곤선에서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키노 집권 이전인 2006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빈곤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필리핀 40대 갑부의 부는 3배로 늘었을 정도로 경제성장 과실은 부자들에게 주로 돌아갔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인구 10만명당 범죄 발생도 226건에서 2014년 1004건으로 증가했다.
두테르테가 자신이 공언한 대로 6개월 안에 범죄와 부패를 뿌리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테르테는 다바오시에서 자경단을 활용해서 범죄 혐의를 받은 1000여명을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서 사적인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두테르테의 대변인 피터 라비냐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피플 파워’ 뒤 특정인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6년 단임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을 만들었다.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 때인 2004년에도 내각제 개헌이 추진된 적이 있지만, 장기 집권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면서 무산됐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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