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9 20:08
수정 : 2016.05.0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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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치러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가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다바오시의 마티나구 다니엘 R. 아기날도 국립고등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뒤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바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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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다바오 시장 재직하며
‘범죄·부패 무관용’으로 인기
변방 출신 ‘서민의 영웅’ 부각
“범죄자 10만명 죽여서 버리겠다”
“교황은 매춘부의 자식” 막말 불구
소수가문 부·권력 독점에 민심 이반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시체를 마닐라만에 버리겠다.”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 시장은 범죄자에 대한 무관용 정책과 막말로 유명한 인물이다.
두테르테는 다바오시에서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정책을 펼쳐서, 대선 이전부터 ‘징벌자’, ‘필리핀의 더티 해리’(피의자들을 난폭하게 다루는 형사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리즈물 영화)라는 별명을 얻었다. 두테르테는 1999년 인구 1만명당 1000건에 이르던 다바오시의 범죄 건수가 2000년 0.8건으로 줄었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의 범죄자에 대한 강경 대응책에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두테르테가 다바오시에서 범죄 혐의자 1000여명을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사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일과 관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징벌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두테르테가 범죄자들을 살해하는 다바오 암살단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실었다. 두테르테는 다바오 암살단과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범죄에 대한 강경 발언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계속했다.
대선 출마 뒤에는 ‘필리핀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막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필리핀 방문 당시 길이 막혀 차에서 5시간 갇혀 있었다며 교황을 “매춘부의 자식”이라고 욕했다. 1989년 다바오시 교도소 폭동 때 집단 성폭행 끝에 숨진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선교사에 대해서는 “얼굴이 예뻤다”는 어이없는 말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대사관이 이 발언에 대해 비판하자 “(두 나라와) 외교관계를 끊겠다”고 되받기도 했다.
막말을 제외하더라도 두테르테는 필리핀 주류 정치인들의 시각과 배치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중국과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중국과 협상하겠다고 밝힌 반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대해선 “미국(인)은 필리핀을 위해 죽지 않는다”며 비판적인 톤을 보였다. 또 집권하면 공산 반군과 휴전하겠다고 밝혔다.
두테르테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그가 자신을 ‘서민의 영웅’으로 포장한 점과 관련이 있다.
필리핀은 소수 가문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강한 나라로, 의원 70% 이상이 유력 가문 출신이며 현 아키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아키노 대통령 집권기인 2010~2015년 필리핀 경제는 평균 6.2% 고성장을 했지만 경제성장 혜택은 주로 부자들에게 돌아갔다. 2011년 기준 경제성장분의 76%가 40개 가문에 돌아갔다는 조사도 있다.
필리핀 정치분석가인 라몬 카시플레는 <시엔엔>(CNN) 방송에 두테르테의 지지표 상당수는 현 정권에 대한 “항의 표”라고 분석했다. 그는 “(아키노 대통령 시절인) 6년 동안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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