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2 19:55
수정 : 2015.11.12 22:17
새정부, 이르면 다음주 군부와 협상
꼭 5년 전인 2010년 11월13일, 미얀마 군사정부는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전면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8888항쟁’(1988년 8월8일 촉발된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듬해인 1989년부터 되풀이된 ‘감옥살이’가 완전히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수치는 양곤의 자택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 시민들에게 짧은 연설을 했다. “자유의 몸으로 여러분을 보게 돼 너무나 기쁩니다. …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단결할 때에만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때가 왔을 때 움츠려 있지 말아 주세요.”
수치가 말한 ‘그때’가 미얀마 국민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지난 8일 총선에서 미얀마 국민은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군부의 태도도 어느 때보다 유연하다.
11일 오후 군부 출신의 테인 세인 대통령이 수치에게 “평화적 정권 이양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데 이어, 이날 밤늦게는 군부 최고 실력자인 민 아웅 흘라잉 참모총장이 군 수뇌부 회의를 마친 뒤 “민족민주동맹의 승리를 축하한다. 군은 선거 이후 과도기 동안 새 정부와 협력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식 성명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군부의 잇따른 메시지는 군부가 1990년 총선 때처럼 야당이 압승한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를 덜고 미얀마가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군부 통치에서 벗어난 민간 정부를 세울 수 있게 됐다는 뜻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평가했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12일 개표 현황 중간발표에서, 민족민주동맹이 의회 전체 664석 중 326석(상원 83석, 하원 243석)을 얻었다고 밝혔다. 개표가 절반 정도만 완료된 시점에서 민족민주동맹이 과반에 불과 7석 못 미치는 의석을 확보해, 단독정부 구성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더라도 민간 정부가 군부의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민주화를 이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행 헌법상, 외국인 직계가족이 있는 수치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데다, 의회 의석의 25%가 군부의 몫이며, 국방·내무 등 내각의 핵심 요직은 군이 지명하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향후 권력구도 재편은 이르면 다음주부터 시작될 수치와 군부의 정치협상에서 밑그림이 나올 전망이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수치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서 “새 정부 구성은 버마 민주화 이행의 중요한 전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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