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0 19:23
수정 : 2015.11.10 22:08
|
가슴졸인 미얀마 시민들 미얀마의 불교 승려들이 9일 밤 양곤의 민족민주동맹(NLD) 당사 앞에서 아웅산 수치를 지지하는 시민들과 함께 모여 개표 현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
총선 뒤 권력지형 어떻게 바뀔까
수치의 NLD 과반 차지해도
행정권은 여전히 군부 손에
내년 2월 이후 대통령 선거
의회서 간접선거로 뽑아
수치, 외국인 배우자 조항 ‘족쇄’
“장미는 어떻게 불려도 향기로울 것”
수치, 실질적 영향력 행사 시사
10일(현지시각)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개표가 완료된 하원 88석 중 78석, 상원 33석 가운데 29석을 휩쓸었다고 발표했다. 총선 이틀 뒤에도 결과 발표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민족민주동맹이 군부가 만든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족민주동맹의 압승이 확정된다면 이후 미얀마 권력 지형은 어떻게 변할까? 민족민주동맹이 상·하원에서 과반을 차지한다고 해서 수치가 단숨에 군부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을 수는 없다. 미얀마는 내각책임제 국가가 아니고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민주동맹이 의회에서 다수당이 돼도 곧바로 행정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의회에서 간접선거로 뽑는 대통령이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대선은 내년 2월 이후에 있다. 더욱이 수치는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사람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헌법 규정 때문에 출마할 수도 없다. 수치는 이날 총선 뒤 처음으로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장미는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입니다”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인용하며, “총선에서 이긴 정당의 지도자로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수치가 자신의 대리인을 대선에 내세우는 방법이 유력시된다. 대선 후보로는 군사령관 출신이며 수치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온 틴 우 등이 꼽힌다. 수치가 일단 대리인 격인 대통령을 세운 뒤, 헌법을 개정해 자신이 나중에 직접 대통령이 되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하지만 수치가 미얀마를 이끌기 위해서는 군부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군부는 의회에서 개헌 저지선인 상·하원 양원 각각 25%를 자동으로 군부 몫으로 챙길 뿐 아니라, 군 총사령관이 내무, 국방, 국경보안이라는 가장 예산이 많고 핵심적인 장관 3명을 지정한다. 미얀마에는 국가방위안보위원회(NDSC)가 있는데, 실질적인 권한은 의회보다 강력할 수 있다. 이 위원회는 외교·안보 분야 정책을 협의하며 비상사태 실행권도 갖고 있다. 국가방위안보위원회 구성원은 대통령과 군 최고사령관 등 모두 11명으로, 이 중에 군부 쪽 인물이 적어도 6명에 이른다. 군 최고사령관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으며 비상사태 선포 때 입법, 사법,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군부도 수치와 협력의 길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수치는 <비비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부는 25년 전 총선 결과를 뒤집고 당신을 계속 가택연금했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믿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시대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다”며 “지금은 모두가 정보로 연결돼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군부가 불법적 개입을 하기가 훨씬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 자체가 2010년부터 군부가 실행하고 있는 단계적 민주화 조처의 일환이다. 2011년 취임한 테인 세인 대통령은 민간의 신문 발행을 허가하고 파업권을 보장한다고 발표하는 등 1962년부터 이어져온 군부 통치를 형식적으로 끝내고 민주화 계획을 실행했다.
민족민주동맹 지도부 중 한명인 한 타 민은 “대선 후보는 군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타이에 기반을 두고 미얀마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 <이라와디>는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수치가 자신을 오랫동안 박해했던 장군들에게 기념비적인 참패를 안겨줬다. 하지만 수치는 그들 없이는 미얀마를 통치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