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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7 20:09 수정 : 2015.10.27 20:09

미-중 ‘그레이트 게임’

19세기 제국주의 세력의 마지막 패권 다툼인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20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모두 러시아와 소련을 봉쇄하는 전략이었다. 대륙 세력인 러시아와 그 후예인 소련은 남쪽으로 진출하려고 했고, 영국과 미국은 이를 봉쇄하려 했다. 러시아와 소련의 남쪽 국경을 따라 봉쇄선이 만들어졌고, 그 봉쇄선의 요충지인 크림반도, 아프가니스탄, 한반도 주변 등지에서 열전이 벌어졌다.

21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대결 구도 역시 중국의 진출을 막는 봉쇄선이 있다. 동아시아, 특히 남중국해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그레이트 게임은 과거와 달리 봉쇄선 또는 대치선이 명확하지 않다. 중국이 미국의 기존 영향권 내 국가로 전방위적인 경제적 진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중남미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미국의 최대 전통 동맹국인 영국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문해 황금마차를 제공받는 등 전례없는 의전을 받았다. 중국은 400억파운드(70조원)라는 투자무역협정을 영국과 체결하며, 두 나라의 ‘황금시대’를 선언했다. 미국은 불쾌감을 보였으나, 독일과 프랑스의 정상도 10월말~11월초 앞다둬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봉쇄선 전략에 맞서, 미국 세력권 내의 국가들을 향한 ‘점의 진출’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대응은 대중 대치 전선을 다시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는 한편 동맹국들의 이탈을 막고 동참을 압박하는 것이다.

미국이 27일 오전 중국이 남중국해의 환초에 건설한 인공섬 수역의 12해리 안으로 미군 구축함을 진입시킨 것은 그 일환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부 고위인사들은 최근 들어 남중국해에서 항해 자유 문제를 부쩍 천명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의 면전에서 남중국해와 관련해 “미국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어디에서도 항해하고 비행하며, 작전을 벌일 것”이라며 군사작전까지 시사했다. 미국은 지난 12일에 이 수역으로 미국 전함 파견을 이미 발표했고, 이날 이를 단행한 것이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미국 동맹국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를 압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6일 방미한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그렇지 못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4일 “항해의 자유와 관련해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고 한국이 적절히, 강력하게 국제법에 따라 대응한 것을 상기하고자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동남아 국가 방문을 앞두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다투는 이 지역 국가들을 더욱 미국 쪽으로 견인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에서 긴장과 대치가 노골화되면, 경제적 이익을 노려 중국을 향해 달려가고 구애하는 미국의 기존 동맹국들에게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대결 구도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고, 한국이 그 자장에 가장 먼저 빨려들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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