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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7 17:26 수정 : 2015.10.27 21:00

1954년 3월1일 오전 6시45분 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섬에서 미국이 진행한 수소폭탄 폭발 실험 전경.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오른 가운데 붉은 섬광이 주변을 물들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여름 해변의 비키니 수영복은 시원하고 멋진 패션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비키니’의 어원이 된 비키니섬의 주민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열기 때문에 70년에 걸쳐 강제 이주민 신세가 되고 있다. 한번은 핵실험 난민으로 고향을 등졌고, 지금은 기후변화 난민으로 또다시 삶터를 옮겨야 할 처지다.

1940년대에 미국령 마셜군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키리섬 등 인근의 다른 섬들로 강제이주했던 원주민과 후손들이 미국 정부에 본토 이주를 요청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이 키리섬 공항의 활주로까지 침범하고 토양이 침식돼 농작물이 염해를 입는 등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마셜군도공화국의 토니 드브룸 외무장관은 26일 “키리섬에 거주하는 비키니섬 출신 주민들은 미국이 지원하는 재정착 기금을 미 본토에서 쓸 수 있기를 원한다”며 “이런 요청은 기후변화 때문애 키리섬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있는 현실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셜군도 주민들은 이미 미국 본토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므로 시민권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1982년 미국은 비키니섬 원주민들이 마셜군도 안에서만 쓰는 조건으로 재정착 기금을 조성했으며, 현재 적립액은 약 7900만달러 규모다. 마셜군도는 1986년 미국의 신탁통치를 벗어나 자치공화국으로 독립했으나 외교·국방 등을 미국에 의존하는 ‘자유연합’ 관계를 맺고 있으며, 상대국에서의 거주와 노동에 제약이 없다.

비키니섬 원주민들의 운명은 기구하다. 미국은 1946년 핵실험을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비키니섬 주민 167명을 인근의 다른 섬으로 강제이주시킨 뒤 1958년까지 23번이나 비키니 환초에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미국은 11년이 지난 1969년 원주민들의 귀향을 허용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몸에서 방사성 물질이 다량 검출되는 등 부작용에 시달리다 1978년 다시 섬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심각한 기후변화의 위협에 노출됐다. 기후변화 정부간 채널(IPCC)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해수면은 1901년 이후 약 19㎝나 상승했다. 마셜 군도의 섬들은 평균 해발 고도가 3m에 불과해 해수면 상승의 위협에 극히 취약하다.

지난 8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위성 관측 결과로 보면 세계 해수면 평균이 1992년 이후로만 거의 3인치(약 7.6㎝) 높아졌으며 앞으로도 수 피트(1피트는 약 30㎝) 상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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