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미얀마 2대 도시인 만달레이에서 열린 민족민주동맹(NLD)의 유세에서 한 지지자가 이 정당의 대표인 아웅산 수치의 사진을 들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2010년 명목상 민간정부로 권력이 이양된 뒤 처음으로 다음달 8일 총선이 열릴 예정이다. 만달레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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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이양 뒤 열리는 첫 총선 참여
상하원 의원중 75% 선출직 뽑아 출마 길 막혀 대통령 될 순 없지만
“총선 승리땐 내가 나라 이끌 것”
수치, 실질적 권력행사 의지 비쳐 내년 대선 앞두고 압승 필요한데
소수민족 지역에선 대체로 열세
버마족 지지에도 과반 의석 미지수 국방장관·내무장관 등 요직은
헌법상 군 최고사령관이 임명
선거 상관없이 ‘군부 힘’ 이어질 듯 ■ 대통령 될 수 없는 아웅산 수치의 운명 민족민주동맹이 총선에서 이겨도, 수치는 법적으로는 미얀마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미얀마 군부가 2008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사람은 대통령으로 출마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수치는 대통령 출마가 불가능하다. 이 조문은 군부가 수치를 겨냥해 만든 조항이다. 수치는 영국인 남편과 결혼했으며 아들이 영국 국적이다. 미얀마 군부는 상·하원 의원 25%는 선출직이 아니라 군부가 지정하도록 헌법에 못박아뒀다. 헌법 개정은 의원 75%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도 집어넣었다. 이 때문에 수치가 헌법을 바꿔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 길도 사실상 봉쇄했다. 그러나 수치는 굳이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실질적인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수치는 이달 초 인도 방송인 <인디아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민족민주동맹이 총선에서 이겨 정부를 구성한다면, 내가 대통령이든 아니든 간에 내가 나라를 이끌 것이다. 왜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수치는 이전에는 헌법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대통령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돌아섰다. 미얀마에서 대통령 선거는 의원들이 뽑는 간접선거 형태다. 다음 대선은 내년 3월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아 투데이>가 인도 국민회의의 대표인 소냐 간디와 같은 형태를 구상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수치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 기다려 보면 알 것이다”라고 부정했다. 소냐 간디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리로는 만모한 싱을 내세우고 자신은 막후의 실력자로 남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수치는 자신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인 ‘상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보였다. “나는 항상 실용적 정치인이었다. 나는 항상 ‘상징’으로 불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왜냐하면 상징은 앉아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느냐. 나는 항상 열심히 일해왔다”고 말했다. 수치는 1988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이래 30년 가까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불려왔다. 미얀마 현실정치에서 군부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수치가 현실정치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얀마는 1962년 네 윈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부정권을 세운 이후 기나긴 군사정치가 이어져왔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던 수치는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에 들어왔다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미얀마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나 1947년 암살당한 아웅산의 딸인 수치의 인기는 엄청났다. 당시 수도였던 양곤의 슈웨다곤 파고다에서 수치가 민주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을 때 수십만명이 모여들었다. 미얀마 군부는 1988년 수십만명이 참여한 ‘8888항쟁’을 유혈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수천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 무소불위의 신군부 군부는 1990년 총선을 실시했다가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492석 중 392석을 얻는 대승을 거두자, 이 선거를 무효화했다. 수치는 15년여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며 현실정치 참여를 차단당했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미얀마로 다시 못 돌아올까봐 수상을 하기 위해 노르웨이에 가지도 못했다. 1988년부터 집권을 시작한 신군부는 1990년 선거를 끝으로 2010년까지 20년 넘게 선거와 의회도 없이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등의 군부협의체를 통해 미얀마를 통치해왔다. 신군부는 2010년 수치에 대한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자신들이 마련한 ‘민주화 로드맵’에 따라 20년 만에 총선을 실시했지만, 민족민주동맹은 2010년 총선을 보이콧했다. 군부가 형사처벌을 받은 기록이 있는 사람의 출마를 금지한다며 수치의 의원 출마를 막았고, 민족민주동맹은 이런 조처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족민주동맹이 빠진 선거에서 군부는 자신들이 만든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전체 선출직의 76%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고 발표했고, 군부 출신 테인 세인을 이듬해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수치가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복귀한 것은 2012년 보궐선거로, 수치 자신이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의 코무에 출마해 당선됐다. 다음달에는 비로소 처음으로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과 통합단결발전당이 맞대결한다. 수치는 군부가 나라 이름을 미얀마로 바꾸기 이전의 이름인 ‘버마’를 사용하면서 “독립 버마 역사상 이번 선거는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강조하고 있다. 수치의 민족민주동맹이 정부를 구성하고 대선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선출직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런 대승이 가능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 다음달 총선 예상판도와 소수민족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미얀마에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없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자료는 1990년 총선과 2012년 보궐선거 정도라고 짚었다. 1990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은 52.5%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2012년 보궐선거에서는 66%의 득표율을 기록해 전체 45석 중 43석을 휩쓸었다. 2012년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민족민주동맹이 여전히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1990년보다 2012년 득표율이 높았다고 해서 민족민주동맹의 인기가 1990년보다 2012년에 더 올라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2년 보궐선거 무대는 미얀마 다수 민족인 버마족 거주 지역에서 열렸는데, 민족민주동맹은 버마족 사이에서 더욱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민족민주동맹은 이번 총선에서 버마족이 다수인 중부와 남부 7개 지역에서 승리할 듯 보이는데, 이 지역 승리로 선출직 의석의 44%를 일단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과반 이상을 만들려면 소수민족 지역에서도 의석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한다. 미얀마는 100여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다. 이번 총선에는 90여개의 정당이 후보자를 냈고, 소수민족 지역에서는 지역 정당들이 대체로 우세하다. 수치도 이런 점을 의식해 지난해 소수민족 지역을 자주 방문했다. 최근엔 정부와 전쟁까지 벌였던 소수민족인 카친족들의 주요 거주 지역을 방문해 “민족민주동맹은 특정 민족을 대변하지 않는다. 다수 버마족을 대변하지 않는다. 전체 연방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치는 소수민족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달 중순 로힝야족 해상난민 사태의 진원지로 유명한 북부 라카인주에서도 선거운동을 했다. 라카인주는 미얀마 전체로 보면 소수이지만, 지역에서는 다수인 불교도 라카인족과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사는 지역으로, 2012년 양쪽 사이의 유혈충돌로 약 200명이 숨진 곳이다. 유혈사태 때 사망한 이들 대부분은 로힝야족이었다. 2012년 유혈사태 이후 로힝야족이 미얀마를 떠나 난민이 되는 경우가 급속히 늘었고, 이는 올해 로힝야족이 동남아시아 안다만해를 기약도 없이 떠도는 해상난민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라카인족 폭력사태에는 미얀마가 부분적 민주화로 이행한 이후 오히려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배타적 불교 민족주의 영향이 크다. 대표적인 불교 극단주의 단체인 마바타(Ma Ba Tha·민족과 종교 수호위원회)는 “미얀마의 불교 정체성이 이슬람에 위협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민족민주동맹은 무슬림 정당”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민족민주동맹 간부들은 수치가 라카인주에 가는 일 자체가 위험하다고 여겨 선거운동 지역에서 제외시키려고까지 했지만, 선거운동이 치열해지자 수치가 방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치의 라카인주 방문은 10여년 만의 일이다. 라카인주에서 민족민주동맹은 불교 극단주의의 지지를 받는 지역 정당인 아라칸민족당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아라칸은 라카인주의 옛 명칭이다. 수치는 지난 16일 라카인주 선거운동에서 “국민들이 의회에서 뽑을 수 있는 의석은 전체 중 75%뿐이다. 따라서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싸워줄 후보자를 뽑는 게 중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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