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19 20:41
수정 : 2015.10.19 20:41
[싱크탱크 광장] ‘서승과 동아시아 평화여행’ 12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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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코 기지 이전 예정지를 둘러싼 철책에 방문객과 지역 엔지오 관계자들이 제작한 이전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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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아시아 시민 네트워크의 강화가 필요하다.”
기대했던 광복 70년, 분단 70년도 동아시아 평화라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나가면서 서승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교수가 최근 자주 강조하는 말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정말 평화의 비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베 정권은 국내외의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대중국 포위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을 핑계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국의 자리를 얻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사이에 남북한은 8·25 합의가 있었지만, 이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아시아 평화비전 암울…‘고난 장소’ 난징·오키나와 등 방문 연대 모색
여행을 매개로 시민연대 접근 취지…서승과 인연있는 각국 NGO 참여
지난 20여년 동안 동아시아 민중 혹은 시민 네트워크 사업을 벌여왔던 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가 아닌 시민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서 교수 스스로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서 교수가 중심이 돼서 진행하는 ‘서승과 함께 하는 아시아 평화여행’(이하 평화여행, 한겨레통일문화재단·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주최)이라는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시민 네트워크가 활동가들만이 참여하는 딱딱한 교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여행을 매개로 시민연대에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평화여행은 중국의 난징(12월26~29일), 일본의 오키나와(2016년 1월21~24일), 대만(2016년 2월18~21일)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대표적 ‘고난의 장소’를 각각 30명의 시민과 둘러보는 것이다. 해당 지역마다 서 교수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각 지역 엔지오(NGO)들이 적극 협조하여 여행 속에서 시민의 역사와 생활 그리고 투쟁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왜 서 교수는 이렇게 쉼 없이 시민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동아시아 시민 네트워크에 대한 서 교수의 강조는 그가 한국에서 19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출옥한 1990년부터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94년 대만 방문 때 36년 동안 투옥됐던 대만 정치범 린수양을 만난 것이 큰 계기였다. 동아시아의 국가 폭력이 일국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은 자국 내에서만 활동할 뿐 국경을 넘어선 연대는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 교수는 “지배하는 자는 조감을 갖고 있는데 지배받는 동아시아 민중은 냉전의 벽과 국경으로 분단되어 뿔뿔이 흩어져 공통의 ‘말’을 잃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후 서승 교수는 1997년 타이베이에서 순수 민간이 중심이 된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냉전과 국가테러리즘’을 열었다. 서승 교수가 주최한 민간 중심 국제학술대회는 2002년까지 제주, 오키나와, 광주, 쿄토, 여수 등지에서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되어 일단락한 상태다. 그러나 거기서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은 성과는 많이 나왔고, 민초의 눈길로 동아시아를 바라보고 연대하는 운동도 여러곳에서 돋아났다는 게 서 교수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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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해 1월 서승 교수와 함께 오키나와를 방문해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 농성장에서 지역 엔지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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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 교수는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민초의 역사인식이나 운동이 동아시아의 상황을 크게 바뀌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더욱 위력을 떨치면서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강화됐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한 예로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상황을 예로 든다. “한반도에서의 분단 극복을 위한 노력과 오키나와에서의 미군기지 반대운동은 사실 큰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오키나와에서는 평화운동을 벌이더라도 보수 진영에서 한반도의 긴장이 오키나와의 안보 불안을 초래한다고 선전한다”며 “한반도 긴장과 분단이 해소돼야 미군기지철수의 당위성도 증대되어 오키나와의 평화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통일도 한반도 자체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군비와 병력이 집중되어 있고, 항상 불씨를 안고 있는 동북아가 평화로워져야지 통일을 위한 외부조건도 정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에 따라 “각 지역의 현장에서 고통과 싸우는 민중들과 교류하면서 민중적 대안에 대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공해소송 변호인단으로 활동하는 재일동포 백충(30) 변호사도 “동아시아 각 지역의 민중들이 고립되어 싸우고 있는데 연대는 큰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쿄에서 자란 백 변호사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오키나와를 찾은 것도 사실 연대감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미국 등은 동아시아 지도를 펼쳐놓고 전략을 짤 텐데, 우리는 오키나와만 보고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서로 손을 잡고 어떤 전략을 가지고 동아시아를 볼 것인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변호사는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도 오키나와의 상황을 접하면서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변호사는 “특히 오키나와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브레이크 구실을 하고 있다”며 오키나와의 경험을 다른 지역에서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백 변호사는 “현재 오키나와에는 후텐마기지를 헤노코기지로 이전하려는 계획에 반대하면서 올(all) 오키나와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2014년 당선된 오나가 현 주지사도 애초 자민당 출신이었으나 기지 이전에 반대해 자민당을 탈당하고 지사가 되는 등 오키나와의 정치인들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오키나와 미군 기지 확대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대만 노동당의 장루싱(51) 사무부총장도 국가라는 벽을 통과할 때 시민들의 목소리는 거대 언론 등에 막혀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직접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속한 노동당은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지향하는 작은 정당이다. 현재 국회의원은 없고, 지방의원만 몇 명 배출한 상태다. 노동당은 대만의 양대 정당인 국민당과 민진당 모두 통일지향 정당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민진당이 경협과 대륙인과 대만인 사이의 통혼조차 반대하는 데 반해, 국민당은 좀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국민당도 실질적인 통일보다는 현 상태 유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국 화교 출신으로 대만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한국학생운동에 감명을 받아 다시 고대에 들어가 배웠다는 장 사무부총장은 한국의 시민들이 노동당이나 대만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대만 관계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았으면 한다.
동아시아 시민 네트워크라는 화두를 필생의 과제로 삼고 있는 서승 교수가 여행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시민 네트워크를 이루는 모범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 교수는 평화여행에 앞서 현장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기 위해 10월29일부터 5주 동안 서 교수를 포함해 5명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동아시아 평화 강좌도 함께 연다. 문의 (02)3275-3328.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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