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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08 20:15 수정 : 2015.03.08 20:15

인도 뉴델리에서 여성 농민들이 지난달 24일 정부가 사회간접자본 시설 건설 등을 할 때 농민 토지를 쉽게 취득할 수 있게 하는 내용으로 토지법을 개정하려는 데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인도, 토지법 개정 추진…친기업적 색채 강화

‘모디는 인도의 대처가 될 것인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최근 집권 뒤 첫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모디의 경제정책을 뜻하는 ‘모디노믹스’(modinomics)의 향방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모디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모디 정부는 지난달 28일 내놓은 예산안에서 모디노믹스의 친기업적 색채를 한층 분명하게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디 정부가 지난달 23일 시작된 의회에서 추진중인 토지법 개정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 12월 정부와 기업이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공장 건설 등을 위한 사업을 벌일 경우, 행정명령으로 해당 사업 부지로 편입되는 농민의 토지를 비교적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토지법 규정을 완화했다. 전임 국민회의(INC) 정부는 공공과 민간 공동사업일 경우 토지 소유자들 가운데 70%의 동의, 민간사업일 때는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를 얻어야 사업자가 사업용 토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토지법에 규정했는데, 모디 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국방과 국가안보 그리고 사회간접시설 건설 등의 경우에는 토지 소유자 최소 70~80%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의 적용을 삭제해 버렸다.

또 정부나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를 사들일 경우 사업 계획이 지역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사회 충격 측정’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국방과 국가안보, 사회간접시설 건설 등이 목적인 경우에는 행정명령으로 면제하도록 했다. 다만, 이 행정명령은 일시적 효력만 있다. 모디 정부가 예산안을 처리하는 의회가 열리는 6주 내에 의회에서 토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행정명령은 효력을 상실한다.

모디 “산업위해 경제적 행동 해야”
SOC 확충·공장 건설등 사업땐
행정명령으로 토지 쉽게 취득하게

농업 GDP 1/5 차지…고용은 1/2
12억 인구 절반 생계 농토에 달려
농민단체 “가난 농민들 희생” 시위

저유가로 고질적 인플레 진정세
성장률도 올 6.3%…매년 호전
인도 경제상황 모디에 유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모디 총리는 토지법 개정 의지가 강하다. ‘메이크 인디아’라는 구호를 내걸고 인도 제조업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그는 농민의 토지소유권을 희생시켜서라도, 정부와 기업의 토지 취득을 쉽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디 총리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우리는 경제적 행동을 해야 한다. 현행법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토지를 취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에서 농민의 토지소유권은 매우 민감하고 폭발성이 큰 문제다. 인도에서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고용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산업이다. 12억 인도 인구 중 거의 절반의 생계가 농토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인도는 제조업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로 ‘경쟁자’인 중국의 30%대에 견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인도는 우수한 정보기술(IT) 산업으로 유명하고 실제로 정보기술과 금융 등 서비스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에 이르지만, 고용은 전체의 4분의 1밖에 담당하지 못한다.

더구나 인도에서 토지법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농민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법률이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붙이면, 토지 소유자의 동의 없이 식민당국이 토지를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 이후 다소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토지법의 골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다가, 지난해 국민회의 정부 시절 농지 소유자의 권리가 크게 강화됐다. 모디 정부는 이렇게 소유자의 권리를 강화한 토지법을 과거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수도 뉴델리에서 수천명의 농민들은 모디 정부의 토지법 개정 계획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였다. 만년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회의도 모디 정부의 토지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모디 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서 의회를 제치고 토지법을 실질적으로 완화한 데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달 초 인도 서남부 카르나타카주 하산에서 벌어진 농민 시위를 이끈 농민단체 케이피아르에스(KPRS)의 지역 대표 나빈 쿠마르는 “(모디 총리가 속한) 인도인민당(BJP) 지도부는 ‘인도는 어머니의 땅’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제 인민당 지도부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가난한 농민을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힌두>는 전했다.

모디 정부의 기업친화적 정책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룬 자이틀레이 재무장관은 지난 7일 예산안 발표 때 법인세를 현행 34%에서 앞으로 4년 안에 25%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이틀레이 장관은 부유세를 폐지하고, 대신 기존 부유세 과세 대상이던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기존 소득세 등의 세율보다 2%포인트 높여 적용할 것이라고도 발표했다. 인도 정부는 1957년 부유세법을 제정해 300만루피를 초과하는 비생산요소 자산에 대해 1%의 부유세를 부과해왔다. 영업이나 생산 활동에 사용하지 않는 재산이나 자동차, 비행기 등이 과세 대상이었다.

자이틀레이 장관은 기업친화적 정책과 함께 사회간접자본 시설에도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인도의 만성적 에너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4000㎿ 규모의 발전소를 건설하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확충에 114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도 했다. 하루 2300만명이 이용할 만큼 인도에서 비중이 큰 이동수단이지만 시설이 낡아 잦은 고장과 사고를 일으키는 철도도 앞으로 5년 동안 1390억달러를 들여 현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친화적인 행보와 사회간접자본 시설 확충을 통해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높은 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구자라트주 총리 시절부터의 모디 총리가 해온 오랜 경제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모디 총리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총리를 지냈는데, 주총리 재직 시절 타타와 포드 등 인도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해 구자라트주 경제성장률을 인도 전체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끌어올렸다. 구자라트주에서의 경제 성과를 토대로 나온 말이 바로 ‘모디노믹스’였다.

모디는 구자라트주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극우 힌두주의자라는 초기의 이미지를 탈색하고 유능한 테크노크라트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해 인도 총리까지 올랐다. 모디의 인도인민당이 지난해 5월 총선에서 30년 만에 단독으로 하원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둔 것도 국민들이 모디에게 걸고 있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모디가 구자라트주 총리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에도 정책이 지나치게 친기업적이고, 민주적인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오곤 했다. 구자라트주 정부가 2012년 포드와 타타 같은 대기업들의 공장과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주민들에게서 대규모로 토지를 사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정부 공무원들이 주민들에게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땅을 가져갈 것”이라며 반강제적으로 토지를 매수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보도했다.

최근 인도 경제 상황은 모디 총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인도 경제는 2013년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루피 가치 하락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어려웠다. 이는 결국 국민회의 정부의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모디 집권 뒤인 지난해 중반과 올해까지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대외 여건이 호전되면서 인도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인도는 필요한 석유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표적 에너지 수입국이어서,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에너지 수입 비용 축소는 인도 정부가 빈곤층에 지급하는 각종 식품 및 에너지 보조금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인도 경제성장률은 2013년 5%, 지난해 5.8%였으나 올해는 6.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같은 기간 7.8%→7.4%→6.8%로 점차 하락하는 추세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내년 인도 경제성장률은 6.5%로 전망돼 6.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을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 정부가 자체적으로 예상한 2015~2016 회계연도 성장률은 8~8.5%에 이른다. 인도 정부의 경제성장률 통계는 통계치 작성 근거가 최근 바뀌는 등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인도 경제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우호적인 경제환경을 바탕으로 모디 정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를 2013~2014 회계연도의 4.5%에서 2014~2015 회계연도에서는 4.1%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플레이션도 국제유가 하락 덕택에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지난해 4월 8.59%에서 올해 1월에는 5.11%까지 낮아졌다. 인도중앙은행은 그동안 인플레이션 방어에 주력해왔지만 상황이 호전되면서 최근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인도중앙은행은 4일 기준금리를 종전 7.75%에서 7.5%로 0.25%포인트 낮췄다. 지난 1월에 이어 2번째 기준금리 인하였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모디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예산안에 대해, 인도 정부가 경제 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던 1991년 이후 가장 중요한 예산안이라고 평가했다.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이 지나치게 기업친화적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동시에 한쪽에서는 경제개혁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 급격한 기업친화적 정책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모디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예산안에서 사회보장비용을 과감하게 줄이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 사회보장비용 증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니스트 사다난드 두메는 “모디 총리가 빈곤층에 적대적이라는 이미지로 비칠까봐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국영기업들의 민간 매각을 추진하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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