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26 20:01
수정 : 2014.05.27 15:21
쁘라윳 육군총장, 반대파 줄소환
학자·언론인 망라…인원파악 안돼
소재지 불명하고 법적보호도 없어
헌법 개악 등 군사독재 행보 나서
지난 22일 쿠데타를 감행한 타이 군부가 철저한 언론통제와 함께 정치권은 물론 재야인사들까지 줄줄이 잡아들이면서 정국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격변기에 방향타 구실을 했던 타이 왕실마저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지지하고 나섰다. 군사독재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26일 <비비시>(BBC) 방송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푸미폰 아둔야뎃 타이 국왕은 쿠데타를 주도한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이 ‘정부 수반’ 노릇을 하도록 공식 추인했다. 쁘라윳 총장은 이날 쿠데타 이후 첫 기자회견에 나서 “갈등이 심화하고 폭력사태의 위협이 있을 때, (군부는)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군부는 쿠데타 직후부터 발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잉락 친나왓 전 총리를 포함한 정치권 핵심 인사들을 23일 줄소환해 구금한 데 이어, 24일엔 방송을 통해 포고령을 내어 쿠데타에 비판적인 시민사회·언론·학계 인사 35명에게 출두 명령을 내렸다. 반대세력을 솎아내기 위한 ‘예비검속’인 셈이다.
계엄령에 따라, 소환에 응하지 않는 이들은 최고 징역 2년형 또는 4만밧(약 125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소환에 응한 이들도 영장 없이 최대 7일간 구금할 수 있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쿠데타 지휘부 격인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POMC)의 윈타이 수와리 대변인은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소환 대상자가 모두 범죄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일시적으로 구금된 이들도 범죄 혐의가 없으니, 역시 변호인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군부가 구금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소환에 응했다가 구금됐던 잉락 전 총리는 25일 석방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진보적 온라인 매체 <쁘라차타이>의 타나폰 이우사꾼 편집인과 숫사응우안 수티손 탐마삿대학 교수(법학)를 비롯한 반군부 성향의 지식인 상당수가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는 25일 성명을 내어 “구금된 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고문 등 인권 유린을 당하더라도 이를 외부로 알릴 길이 없다”고 우려했다.
왕실이 쿠데타의 ‘정당성’을 추인한 터라, 향후 군부는 더 대담하게 행동할 것으로 보인다. <방콕 포스트>는 26일 “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됐기 때문에, 먼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임시헌법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며 “상·하 양원이 모두 해산된 상태이니, 군부 주도로 임시의회를 구성해 새 헌법 제정에 나서는 게 그다음 절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32년 입헌군주제 등장 이래 타이 군부는 19차례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직후 도입된 임시헌법을 포함해 타이 헌법이 제·개정된 것도 18차례다. 타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2006년에도 임시헌법이 선포된 뒤, 군부 주도의 개헌안이 2007년 8월 통과됐다.
당시 군부가 밀어붙인 개헌안은 ‘선출된 권력’인 입법·행정부의 권한을 가능한 한 축소하는 게 뼈대였다. 대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와 반부패위원회·선거관리위원회 등 ‘독립기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쿠데타로 축출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세력의 선거를 통한 재집권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고, 설령 이들이 재집권하더라도 기득권층이 이를 견제·제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위팃 만따폰 쭐랄롱꼰대학 교수(법학)는 2009년 <타이법학저널> 봄호에 기고한 글에서 “2007년 개헌 당시 군부는 상원의원 전원을 임명직으로 돌리려다 반발이 커지자 절반은 선출직으로 유지했다. 또 이른바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군부가 정국을 장악할 수 있도록 ‘국가위기위원회’ 규정을 신설하려다, 역시 비판여론에 밀려 무위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뒤, 이번에 잉락 총리 정부의 축출을 주도한 곳도 2007년 개헌으로 막강한 권한을 거머쥔 사법부와 반부패위원회 등이었다. 이번에도 타이 군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헌법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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