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19:34
수정 : 2014.05.0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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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롄화(90) 할머니(사진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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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위안부 피해자 ‘천롄화’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극복 다룬
다큐 ‘갈대의 노래’ 일본서 상영
출연자 6명 가운데 2명만 생존
“우리는 영화로 영원히 기억될것”
“출연했던 할머니들이 다들 돌아가셔서….” 지난 7일 오후 6시30분께 일본 도쿄 나카노구의 ‘나카노제로 시청각홀’.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 사무국장은 북받치는 감정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대만의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 일본 시민단체들은 첸리엔화(90·사진) 할머니를 초청해 첸 할머니 등 대만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젊은 시절 입은 끔찍한 상처를 극복해가며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갈대의 노래> 상영 모임을 열었다. 100여명의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선 첸 할머니는 “이 자리에 올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영화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도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대만에서 첫 상영회를 연 영화의 제목 <갈대의 노래>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구약성경 이사야서 42장 3절에서 따왔다.
이날 주인공인 첸 할머니는 19살이던 1943년 공장으로 찾아온 일본인 업자로부터 “필리핀에서 간호사 일을 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가 됐다. 일본 해군이 제공한 배를 타고 필리핀의 세부섬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일자리는 일본군의 성욕을 처리하는 ‘위안부’였다. 첸 할머니는 “속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지만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겐 ‘나미코’라는 이름이 붙었고 “눈을 감고 고통을 참아야 하는” 지옥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영화는 첸 할머니 등 6명이 젊은 시절 입은 상처와 대면하고 이를 극복해 가는 마지막 3년의 시간을 따라간다. 할머니들은 치료 워크숍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요가 수업을 듣고, 요리 등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할머니들은 예전에 자신이 받았던 경험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일깨워 나간다. 멋쟁이였던 루만메이 할머니는 하루 동안 경찰관이 돼 교통을 통제해 보고, 첸 할머니는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하며, 우슈메이 할머니는 평생의 소원이던 스튜어디스 체험도 한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들은 하나둘씩 사람들의 곁을 떠난다. 처음 영화를 찍기 시작할 당시 6명이었던 할머니들이 영화를 마무리할 때쯤엔 4명으로 줄고, 이제 남은 사람은 첸 할머니와 첸타오 할머니 둘뿐이다.
영화 속에서 첸타오 할머니는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의원(참의원) 앞에서 “대만 할머니는 올해도 2명, 작년도 2명, 해마다 2명씩 죽는다. 우리의 바람은 일본 정부가 하루빨리 나와서 사과하는 것이다. 돈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의원은 고개를 끄떡이며 애기를 듣지만, 군소 정당으로 전락한 사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 우슈칭 감독은 “할머니들은 돌아가셨지만 영화를 통해 이들의 사연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일본의 시민들이 생각하고 행동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첸 할머니는 “이제 (나이가 들어) 여러분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며 ‘안녕’이란 제목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불렀다. 참석자들은 훌쩍이며 박수를 쳤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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