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7 18:00
수정 : 2014.05.0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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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락 친나왓 타이 총리가 7일 직권남용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해임 결정을 받은 뒤 방콕 교외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손을 흔들고 있다. 방콕/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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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 남용 혐의”…1001일 만에 실각
각료 9명 해임…임시총리 니왓탐롱
잉락 “불법 저지른 적 없다” 반발
오빠 탁신 측근 3년전 경찰청장 발탁
‘반탁신’ 군부·방콕 중산층 반발 불러
‘친탁신’ 빈민층 10일 대규모 시위 예상
타이 헌법재판소가 7일 잉락 친나왓(47) 과도정부 총리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해임을 결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서 불안했던 타이 정국은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타이 헌재는 이날 잉락과 함께 내각 각료 9명에 대해서도 해임 결정을 내렸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잉락 총리는 취임 뒤 1001일 만에 물러났다. 헌재는 해임되지 않은 내각 각료들이 과도정부를 이끌게 했다. 부총리였던 니왓탐롱 분송파이산이 임시 총리를 맡아, 잉락이 총리 시절 약속한 7월 총선까지 정부를 이끌게 된다. 니왓탐롱은 탁신 전 총리에게 충성하는 인사로 분류된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잉락 총리는 헌재의 해임 결정 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어떤 불법행위도 저지른 적이 없다. 지금부터 나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잉락의 직권남용 혐의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락 총리는 당시 타윈 쁠리안시 국가안보위원회(NSC) 사무총장을 총리 자문역으로 전보 조처했는데, 이 인사가 잉락 총리의 인척인 프리아우판 다마퐁을 경찰청장에 임명하기 위한 조처였다는 의심을 받았다. 프리아우판은 잉락 총리의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처남이다. 잉락은 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에 당시 경찰청장이던 위치안 폿포시를 보내고, 경찰청장으로 프리아우판을 앉혔다. 이번에 해임된 각료 9명은 당시 인사 조처를 승인했던 이들이다. 타이 대법원은 지난달 타윈의 전보 조처가 불법이며 그를 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에 복귀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 3월 상원의원인 파이분 니띠따완은 잉락 총리가 헌법을 위반했다며 헌재에 제소했다.
잉락은 지난 6일 헌재에 출석해 “타윈의 전보 조처는 적법했다. 프리아우판이 경찰청장에 임명되기 전에 이미 오빠는 아내와 이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를 경찰청장에 임명한 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인사 조처로 어떤 이득도 취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타윈의 인사 조처가 ‘공무와 개인적 이해관계가 충돌을 빚었다’고 밝히며, 잉락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잉락의 해임 결정 배경에는 그의 오빠인 탁신 전 총리가 2001년 집권한 이후 구기득권 세력과 탁신 지지세력 간에 계속되고 있는 ‘도돌이표 식’ 대립과 갈등이 숨어 있다. 탁신 전 총리는 집권 뒤 농촌 지방에 의료혜택 확대와 같은 정책을 펼쳐 빈곤한 동북부를 중심으로 단단한 지지층을 형성했다. 하지만 타이의 오랜 집권세력인 군부와 방콕 중산층과는 대립했다. 선거로는 탁신을 이길 수 없었던 반탁신 진영은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섰고 군부는 이를 묵인하는 행태를 보였다. 2006년 탁신 전 총리는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타이 대법원은 2008년 탁신 전 총리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했으나, 탁신 전 총리가 해외로 떠났기 때문에 형이 집행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거에서는 번번이 탁신 전 총리 진영이 이겼으며, 노란 셔츠 시위대에 대항하는 친탁신 계열의 ‘레드 셔츠’ 시위대도 방콕 시내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잉락이 2011년 오빠의 후광을 업고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에 취임한 뒤에도 이런 정치적 갈등은 반복됐다. 반탁신 진영은 잉락을 오빠의 꼭두각시로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잉락 총리가 탁신 전 총리를 포함한 포괄적 정치사면법안을 통과시키려다 실패한 뒤, 노란 셔츠 시위대의 반정부 시위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잉락이 해임돼도 선거로는 반탁신 진영이 친탁신 진영을 이기기 어렵고, 친탁신 레드 셔츠 시위대가 다시 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레드 셔츠는 10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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