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27 22:30
수정 : 2014.02.27 22:30
‘김정욱 억류’ 넉달만에 공개 왜?
남북관계 주도권 잡으려는 의도
금강산 관광 재개와 연계 가능성
“통큰 석방 모습 보일수도” 분석도
국정원도 “관련 없다” 부인
북한이 남한 선교사 김정욱씨의 억류 사실을 넉 달 만인 27일 공개했다. 남북간 고위급 접촉을 앞둔 상황에서 김씨 사건을 다목적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유엔 조사위원회의 발표로 구석에 몰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방어 차원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애초 북한은 지난해 11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평양에 침입한 남한 정보원 첩자를 체포해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신원 확인과 석방·송환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전화통지문의 수령도 거부했다. 그러던 북한이 4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김씨를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씨 사건을 공개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최근 한-미 군사 훈련과 일정이 겹치는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면서 ‘통 큰 용단’을 과시한 북한이 이번 사건도 그렇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김씨를 신속하게 재판한 뒤 통 크게 석방하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북한이 먼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면서 남한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사건을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실질적인 요구 사항과 연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남북은 구체적인 일정은 잡지 못했지만 고위급 접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북쪽은 김씨의 처리 문제는 고위급 접촉에서 남한에 대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이번 사건을 통해 북쪽이 남쪽의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회견에서 국정원으로 부터 돈과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은 북한이 이번 사건에서 국정원을 겨냥하고 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현재 국정원은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공무원 간첩 사건 조작 등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따라서 북한을 무너뜨리기 위해 북한에 스파이까지 보냈다는 주장은 대북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국정원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인권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쪽은 지난 17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국제 사회에서 ‘반인도 범죄 국가’라는 낙인이 다시 찍혔다. 당시 조사위는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국제사법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등 전례 없이 강력한 내용을 담아 북한에 주목을 받았다. 북한으로서는 이 사건과 케네스 배 사건을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 사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북쪽으로서는 김씨를 활용해 이런 부분에 공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의 지시로 북쪽 사람들의 스파이 활동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쪽 인권 상황에 대한 탈북민의 진술에 남쪽 정보기관의 공작이 개입됐다고도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북쪽이 이번 기자회견을 미국 매체인 에이피(AP)를 통해 공개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 한다.
국정원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혀 관련이 없다”며 북쪽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통일부도 김씨를 억류한 일을 반인도주의적 행위로 규정하고 즉시 송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당면한 남북관계 개선 흐름에도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최현준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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