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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7 20:28 수정 : 2014.01.17 20:28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토토, 우리는 더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은 것 같아!”

<오즈의 마법사>에서 토네이도에 휩쓸린 주인공 도로시가 오즈의 나라에 와서 강아지 토토에게 한 첫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세상에 처한 상황을 풍유하는 대표적인 어구이다. 역내 국가의 정권 교체가 일제히 이뤄져 1년이 지난 동북아의 정세는 도로시가 처한 세상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다. 지나온 과거의 법칙과 가야 할 미래의 진로가 착종되어 버린 기이한 풍경이다.

한-일 관계가 대표적이다. 두 나라의 국교 수립 이래 한-일 관계가 이렇게 혼돈스러운 상황은 없었다. 정상들이 취임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정상회의 개최는커녕 덕담도 오가지 못한다. 이 정상들인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동북아 냉전구도와 한-일 관계의 원형을 만들었던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예이고, 이들이 선친들의 유산을 반석에 올려놓는 것을 정치적 사명이라고 여기는 점에서 이런 풍경은 더욱 의외다. 더구나 두 정상의 불화 근원이 과거사 인식이라는 점에 이르면, 범부들로서는 해석이 불가능한 고도의 추상화나 난해한 초현실주의 작품의 기묘한 풍경으로 변한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아베 정부의 태도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베 정부의 이런 과거사 인식을 그대로 체현하는 일본 극우파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소사 역사 교과서와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인 양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로 근대화됐고 일제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는 역사 해석까지 하는 무리들을 안에서는 옹호하고 밖에서는 질타하는 것은 정신분열 수준이다.

이런 정신분열은 과거의 후예들에게 미래의 진로 개척 임무가 맡겨졌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중·일 모두의 지도자가 과거 이 지역의 냉전구도를 만든 장본인이나 세력들의 혈육이다. 박근혜, 아베 신조, 김정은에 더해 중국까지 공산당 원로의 2세가 집권해 완강한 공산당 족벌체제가 등장했다. 전후 동북아의 국제관계는 북·중·러 연합의 북방대륙세력과 한·미·일 동맹의 남방해양세력이 맞서는 구도였다. 하지만 이 냉전 구도의 해체와 화해 역시 필연적이었다.

한-일 관계에서 보듯 지금 동북아 6개국의 양자 관계는 온통 유동적이다. 미-중 관계는 대결, 중-일 관계는 최악, 한-일 관계는 긴장, 한-중 관계는 유보, 북-중 관계는 갈등, 그리고 남-북 관계는 동결이다. 미국이 추동하는 한·미·일 동맹은 탄력이 주춤하고, 북·중·러 연합은 더욱 느슨해졌다. 이 상황이 동북아의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연합의 대립구도가 굳어지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완화되는 수순이 될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이를 판단하는 준거는 동북아 6국의 양자 관계 중 최악인 남-북 관계이다. 북한이 16일 상호비방 등 적대행위와 군사훈련 중지를 제안하며,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90년대 초 팀스피릿 훈련이 북한의 요구로 중지되면서, 남북한은 기본합의서 채택 등 가장 내실있는 관계를 구가한 적이 있다.
이는 한·미 군부가 일방적으로 팀스피릿을 재개하면서 파탄이 나서, 94년 북핵 위기라는 최악의 관계로 반전되기도 했다. 남쪽이 90년대의 노태우 정부 때와 같은 결단 정도는 아니어도 유연성을 발휘할 기회는 물건너가는 것 같다. 북쪽도 하나를 주고 둘을 얻는 지혜를 보일 기미는 안 보인다.

도로시는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 양철 나무꾼이라는 힘없는 이들과 함께 낯선 ‘노란 벽돌길’을 넘어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박 대통령은 그런 도로시가 될 수 있을까? 박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을 감싸는 과거의 망령들이 너무 완강하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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