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스리랑카 남부 해안도시 갈의 시내 사원에서 이재민들이 한민족복지재단 관계자들이 나눠주는 비누와 쌀 등의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갈/서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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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활동속 화해분위기…국민 80% “협력 지지” “위기를 평화의 기회로 만들수 있을 것인가?” 지난 8일 콜롬보에서 만난 정치평론가이자 평화운동가 제한 페라라는 “타밀반군(타밀엘람해방호랑이)은 이번 피해로 경제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해변의 군수창고가 유실되는 등 상당한 군사적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금이야말로 스리랑카 정부가 온건한 ‘햇볕 정책’으로 타밀반군을 감싸안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3~4달은 위기를 평화로 전환할 절호의 기회”라며 “그것만이 내전과 해일로 사망한 수만명의 스리랑카 사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 짧았던 화해 무드=지난달 26일 아침, 지진해일이 스리랑카 동북부 트링코말레 지역 해안을 덮쳤을 때 파도에 휩쓸린 타밀반군의 해군을 구조한 것은 다름아닌 스리랑카 정부군 병사들이었다. 당시 이들을 구조했던 스리랑카 정부군 병사는 “자연은 타밀군과 우리를 똑같이 만들었다”며 겸손해했고, 이는 스리랑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20여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던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반군 사이에 보기드문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북부지역에 구호물자 전달이 지연되자 타밀반군은 “스리랑카 정부가 고위관료들의 출신지역인 갈, 마타라 등 남부에만 물자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반군이 정부가 보낸 구호물자 전달창구의 일원화를 고집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맞받았다.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콜롬보 언론들은 타밀반군이 스리랑카 군대가 자프나에서 운영하던 난민캠프를 불태웠다고 보도했다.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스리랑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타밀 쪽에 “외국 구호단체와 민·관이 함께 구성하는 해일대책반에 참여하라”고 제안했으나 타밀 반군은 거절했다. 스리랑카 정부와의 대등한 위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 갈등의 배경=스리랑카에서는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불교를 믿는 다수 싱할라와 인도계 소수민족인 타밀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83년 공습과 자살폭탄테러 등을 겪으며 전면적으로 확대됐던 분쟁은 2002년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반군이 서명한 휴전협정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휴전협정 이후 양쪽의 타밀지역 행정기구 건설 협상이 지난해 결렬되면서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수 사회당 소속으로 스리랑카 정부 안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는 티사 비타레나 보건복지부 장관은 “타밀 쪽은 북동부에서 콜롬보 정부와 사실상 분리된 독립국가를 구성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아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협상 책임자인 타밀반군 정치책임자 타밀실반은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해 해외원조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를 (타밀반군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 개최해 우리를 배제했다”며 “우리를 동등한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평화와 평등을 논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협상 압박하는 여론=그러나 잇따른 전쟁과 해일에 지친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80%를 웃도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협상 재개를 지지하고 있다. 콜롬보와 자프나에서 만난 대부분의 주민들은 “해일 피해를 조속히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양쪽이 이른 시일 내에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리노치, 콜롬보/글·사진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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