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8 18:20
수정 : 2020.01.0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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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8일(현지시각)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를 미사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 시민들이 미군에 의해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이슬람혁명군 정예부대) 사령관의 사진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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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이라크서 명분·실리 챙겨
상대국 본토 공격하면 전면전 부담
‘저강도 전쟁’ 벌이며 영향력 다퉈
‘고래 싸움’에 분쟁 피해 고스란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철 밟나
이란-이라크전 이후 40년간 화염
41년 이어진 아프간 분쟁 재연 우려
이라크 의회 “미군 철수 결의”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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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8일(현지시각)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를 미사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 시민들이 미군에 의해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이슬람혁명군 정예부대) 사령관의 사진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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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분쟁이 격화되면서 이라크가 다시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에 이어, 8일 이란의 미군 주둔 이라크 기지 보복까지 겹치면서 이라크가 분쟁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라는 무대는 미국과 이란 입장에서 서로에게 보복했다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무대다. 미국과 이란으로서는 상대의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전면전을 부를 우려가 있다. 각국의 유조선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에서의 충돌도 전세계 에너지 시장이나 안보에 미칠 파장이 워낙 커서 당장 취할 조처로는 부담이 크다.
사실 이라크는 이라크 전쟁 때부터 미국과 이란이 영향력을 다투는 무대가 돼왔고, 이미 저강도 전쟁을 벌여온 장소다. 솔레이마니 암살도 이런 저강도 전쟁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다. 솔레이마니 암살 전에도 이미 두 달 동안 이라크 내 미군과 군무원들이 주둔한 기지들은 시아파 민병대에 의해 11차례나 공격받았다고 미국 관리들은 전했다.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지난달 27일 키르쿠크의 미군 기지에 로켓 공격을 가해, 미국의 민간인 군무원 1명이 사망하고 미군 여러 명이 다치면서 이번 사태가 촉발되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사망하면서 이란이 금지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미국은, 이틀 뒤인 29일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연관된 목표물 5곳을 공습해 25명을 죽였다. 이는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31일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에 대한 성난 군중들의 난입 시위를 촉발시켰고, 미국은 지난 3일 솔레이마니 암살로 응수했다.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암살된 것도 미국이 작전을 벌이기 쉬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자유롭게 군사력을 전개할 수 있다. 이란에서라면 이란의 방공망이나 대응력 때문에 이런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 이란 편에서도 시아파 민병대 등 친이란 대리세력들과 미군이 존재하는 이라크가 최적의 전장터다. 미국과 이란은 이미 서로를 향해 저강도 전쟁을 해온 이라크에서 분쟁 강도를 높인다 해도, 국면이 바뀌는 전면전으로 치닫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결국 중간에 끼인 이라크만 미-이란 분쟁의 대가를 고스란히 지불하게 됐다. 이라크 의회가 미군 철수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라크 정부가 미군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솔레이마니 암살이 이라크 주권을 침해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한 이라크가 미-이란의 전장터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딜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미군 철수만이 이라크와 미국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격화되는 미-이란 분쟁으로 이라크가 아프가니스탄처럼 ‘영원한 전쟁터’가 될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라크는 이란의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줄곧 전쟁을 곁에 두고 살아왔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8년간 계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정규전이었다. 이 전쟁으로 빚더미에 오른 후세인 정권은 빚 독촉을 하던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했다가, 미국이 조직한 다국적연합군에게 침공당하는 걸프전을 겪었다.
걸프전 종결에도 이라크는 남부와 북부가 유엔에 의해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되는 한편, 강력한 경제제재를 겪었다.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2011년까지 이어진 이라크 전쟁 뒤에도 저강도 내란이 지속됐다. 2014년부터는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해, 그 격퇴전이 벌어졌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간에서의 전쟁이 지금까지 41년 동안 진행되는 것처럼, 이라크도 1980년부터 지금까지 40년간이나 사실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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