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7 19:03
수정 : 2019.11.28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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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도심에 설치된 소망의 벽에 한 여성이 자신의 바람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바그다드/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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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해방광장에 ‘희망 쪽지’ 빼곡
“정권 교체” “대학 마치길” “부패자 처벌”…
“이젠 두렵지 않다…이라크가 자랑스러워”
공감과 소통의 장소…“책으로 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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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도심에 설치된 소망의 벽에 한 여성이 자신의 바람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바그다드/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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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에 ‘소망의 벽’이 세워졌다. 버려진 건물 벽에 마련된 게시판과 천장에는 이라크의 미래를 위한 소망이나 발언, 기도문을 적은 종이쪽지 수천장이 빼곡히 붙어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오랜 전쟁과 테러, 가난과 절망,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신음해온 이라크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겼다.
이라크의 젊은 활동가들이 설치한 소망의 벽은 타흐리르 광장에 있다.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란 뜻이다. 광장 옆 티그리스강 건너편으로는 대통령궁과 정부청사를 비롯한 주요 시설들이 포진한 특별경계구역 ‘그린존’이 있다.
25일 이곳을 찾은 파티마 아와드(16)는 “10월25일 이전에는 (조국인) 이라크를 혐오했다. 지금은 이라크가 자랑스럽다”고 쓴 쪽지를 붙였다. 이라크에선 지난달 초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만성적인 실업난과 공공서비스 부족, 정부의 부패를 규탄하는 시위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10월25일은 시위대가 처음으로 그린존에 있는 정부청사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던 날이다. 아와드는 “전에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었고, 두려움에 짓눌려 아무도 시위에 나서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타흐리르 광장에 함께 모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라크 시민들이 소망의 벽에 아랍어로 써 붙인 소망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정의’와 ‘희망’으로 수렴된다. “언제쯤이나 내 조국에서 피바람이 멈출까?”, “우리는 정부가 바뀌길 원한다”, “부패 정치인을 처형하라”, “(재학 중인) 스포츠대학을 마치고 싶다” 같은 메모를 보며 시민들은 서로에게 공감하고 근본적 개혁의 의지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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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이라크 젊은이들이 수도 바그다드 도심에 설치된 소망의 벽에 각자의 바람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바그다드/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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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벽을 설치한 활동가들은 쪽지에 담긴 시민들의 염원을 모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작가인 사타르 주데는 <로이터> 통신에 “우린 청년 조직과 한 팀을 꾸렸고, 벌집 속의 벌처럼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한다”며 “우리 활동은 사람들이 가장 원했던 것이고 (이곳에서) 가장 많은 소통을 한다. ‘소망의 벽’이다”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선 정부 보안군이 대부분 비무장 시민인 시위대에 고무탄과 실탄을 쏘는 등 공격적으로 시위를 진압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외신들은 이라크 의회 인권위원회와 의료계 소식통을 인용해, 이라크에서 최근 두 달 사이에만 격렬한 시위와 폭력적 진압, 혼돈을 틈탄 테러공격 등으로 최소 350명이 목숨을 잃고 1만5천여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2003년 미국이 ‘대량파괴무기’ 제거를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최대 규모다. 전쟁 뒤에도 최근까지 이라크는 2013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전장이 됐다.
이달 초 아딜 압둘마흐디 총리는 시위대의 정당성과 정부 실정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임 의사를 밝혔고, 바르함 살리흐 대통령은 조기총선을 제안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부패 정치인 퇴진과 근본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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