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6 13:42
수정 : 2019.10.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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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5일 반정부 시위대가 도심에서 방화하고 도로를 막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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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반정부 소요 격화…100명 사망·4천명 부상
이라크 전쟁 이후 내란에 준하는 사태
시아파 정부에 시아파 주민 봉기
한낮 통행금지에 실탄발사…정체불명 저격도 횡행
IS 재기할 수 있는 사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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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5일 반정부 시위대가 도심에서 방화하고 도로를 막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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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동분쟁의 발화점인 이라크가 다시 혼돈에 빠지고 있다. 5일째 격화되는 소요 사태로 100명가량이 숨지고 4천여명이 부상했다.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벌어진 폭동과 내란에 준하는 사태로 접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남부 시아파 주민 거주 지역들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지난 3일부터 수도 바그다드 및 남부 주요 도시에 한낮에도 통행금지를 선포할 정도로 악화됐다. 시민들은 실업과 식량난, 공공서비스 파탄, 부패 등 생활고에 항의해 방화 등 폭력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라크 의회의 인권위원회는 소요 사태로 적어도 99명이 숨지고, 4천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540여명이 시위과정에서 체포되고 200여명은 여전히 구금돼 있다. 유엔까지 나서 “분별없는 생명 손실”이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소요 사태는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가 패퇴한 이후 최악이다.
치안 당국은 5일 바그다드 동부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 실탄을 발사하며 강경진압했다. 소요 발생 이후 이라크 정부는 통행금지 및 인터넷 차단으로 강경 대처했으나 시위는 확산됐다. 이날 치안 당국의 실탄 발사 등으로 14명이 숨졌다.
경찰의 실탄 발사 이외에 시위대를 겨냥한 정체불명의 저격도 이뤄지고 있다. 혼란을 부추기려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개입으로 추정된다. 바그다드에서는 소요 발생 이후 지금까지 250명이 총탄에 저격당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의회 인권위는 밝혔다. 남부도시 디와니야에서는 이날 주 정부 청사에 시위대가 난입하는 와중에 공중으로 총격이 난사되는 등 아비규환이 일어났다.
5일 바그다드의 한낮 통행금지는 해제됐으나 도심에서 산발적인 게릴라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의 중심지인 타흐리르 광장은 봉쇄됐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소유의 <알-아라비야> 방송국 등 몇몇 방송국은 방화 공격을 받았다. 남부도시 나시리야에서는 6개의 정당 건물들이 방화됐다.
이번 소요 사태는 이라크 인구의 다수인 시아파 주민 지역에서 시작돼 번지고 있다. 시위대는 부패, 실업, 식량난, 공공서비스 파탄 등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실업에 시달리는 젊은층들이 시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비비시>(BBC) 방송은 작년 이라크 실업률은 7.9%이지만, 청년실업률은 그 두배이고 경제활동 인구의 17%가 실업상태라고 전했다. 세계 네번째 석유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지만 2014년 세계은행은 이라크 4천만 인구의 22.5%는 하루 1.9달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시아파 정부의 집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아파 주민이 주축이 된 이번 소요 사태는 이라크에 또 다른 혼란과 권력 공백을 낳을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벌어진 내란은 이라크 인구의 주류인 시아파 주민들의 수니파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과 봉기에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결합해 벌어졌다. 이번 소요는 시아파 정부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시아파 주민들의 불만이 터지며 소요의 지도부가 없는 채 자발적으로 격화되고 있다. 나시리야에 있는 모든 정당 건물들에 대한 방화 공격에서 보듯, 현 이라크의 모든 기존 정치세력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슬람국가(IS) 패퇴 이후 지하로 숨어든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이라크 전쟁 때와 같은 내란을 주도할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개혁 요구에 대처하라고 정부에 촉구하면서 “정부는 부패와 싸우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라크에서 최대 민병대 세력인 사드르 민병대를 이끄는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아델 압둘-마흐디 총리 정부의 퇴진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민병대뿐만 아니라 의회에서 54명의 의원을 이끄는 사드르는 이날 소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의회 소집을 보이콧했다. 사드르는 유엔이 감독하는 총선의 길을 열기 위해 현 정부가 사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집권 1년을 맞는 압둘 마흐디 총리는 4일 시위대의 우려에 대응하겠으나, 이라크의 문제에 “마술같은 해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등 치안 당국을 완전히 지지한다면서, 경찰 등이 시위대 대처에 “국제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엔의 이라크 지원 대사는 이라크 정부에 시위대를 숨지게 한 치안당국자들을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 이라크와 중동분쟁
이라크는 최근 중동분쟁의 근원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 정권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침공해 2차대전 이후 최장기의 국가 간 정규전을 벌였다. 또 후세인은 지난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점령해, 1991년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이 쿠웨이트를 탈환하는 걸프전을 촉발했다. 2001년 9.11테러 뒤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의 책임을 물어,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감행해 각종 중동분쟁이 파생했다.
후세인 정권 몰락 뒤의 세력 공백과 수니파 주민들의 불만 속에서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주도하는 내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국가(IS)가 탄생했다. 시리아 내전과 연동된 이라크 내란 속에서 이슬람국가가 두 국가 영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칼리프 국가’를 자처했다.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은 난민사태를 촉발해, 유럽의 극우세력들이 득세하는 유럽의 정치지형까지 초래했다.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에 시아파 정부를 수립하는 등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키웠다. 중동에서 이란과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의 일파가 주축인 후티 반군이 득세한 예멘내전에 개입해 내전이 격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라크에서 다시 혼란이 커지면 중동분쟁도 다시 소용돌이치며 격화될 것이 분명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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