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3 19:52
수정 : 2019.10.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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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가 자국의 암살단에게 터키에서 살해된 지 1주년인 2일, 미국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관 앞에서 인권·평화 운동단체 코드 핑크 회원들이 카슈끄지 살해극의 배후로 의심 받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로 분장(가운데)한 동료와 함께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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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살 왕세자에 권력층 내부 견제 조짐
예멘내전 개입 등 대외 강경책 부메랑
미 방공무기 대량구매에도 국방 ‘구멍’
‘묻지마 측근 중용’ 권력 강화도 도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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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가 자국의 암살단에게 터키에서 살해된 지 1주년인 2일, 미국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관 앞에서 인권·평화 운동단체 코드 핑크 회원들이 카슈끄지 살해극의 배후로 의심 받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로 분장(가운데)한 동료와 함께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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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 실세인 모하마드 빈 살만(34) 왕세자가 지난달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드론 공격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군주 국가인 사우디의 거의 모든 권력을 독점한 알사우드 왕족 내부에서 일부가 왕세자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과 문제 제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3일 익명을 요구한 사우디의 고위 외교관과 복수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반군의 아람코 공격이 알사우드 가문의 상당수 분파에서 빈 살만 왕세자의 국방 능력 및 지도력에 대한 우려를 촉발했다고 전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6월 숙부이자 왕위 계승 1위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세자(60)를 제치고, 살만 빈 압둘아지즈(83) 국왕의 공식 왕위 승계자로 책봉됐다. 현재 정부 직책은 국방장관이지만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 구실을 하고 있다.
사우디 왕실의 한 소식통은 “(아람코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감지하지 못할 수 있느냐”며 “(권력층에서) 분노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트 권력집단의 일부는 빈 살만 왕세자를 신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국제문제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닐 퀼리엄 선임연구원은 “아람코 피격의 파장은 빈 살만 왕세자의 인기 하락이나 국방장관이라는 직위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그의 국가 수호 능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데 있다”며 “이는 그가 펼쳐온 외교안보와 국방 정책의 결과”라고 짚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책봉 이후 아랍·이슬람 패권의 숙적인 이란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하고 예멘 내전에 적극 개입해왔다. 사우디 내부의 비판론자들은 왕세자의 공격적인 대외 정책이 사우디를 외부의 공격에 노출시켰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우디가 미국으로부터 수천억달러(수백조원) 규모의 방공 무기들을 사들이고도 공격을 막지 못한 것은 국방장관인 빈 살만 왕세자의 능력과 리더십에 심각한 의문을 낳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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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사우디 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34) 왕세자가 사우디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제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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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권력을 다지려 정치적 경쟁자와 비판자들을 대거 숙청하거나 체포하고 측근들을 핵심 보직에 기용한데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터키에서 살해한 세력의 배후로 의심받는 것도 나라 안팎에서 평판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전임 왕위 승계 1위 나예프 왕세자가 겸직해온 내무장관 자리를 33살의 사촌으로 교체했으며, 국내 보안 기구인 국가수호대의 사령관에도 20여년 경력의 전임자를 몰아내고 32살의 측근을 앉혔다.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는 압둘아지즈 국왕의 절대적 총애를 받고 있어, 국왕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왕실과 권력층 내부에서 공공연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욱이 빈 살만 왕세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고한 지지 기반을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극히 보수적인 이슬람 왕국인 사우디에서 사회적 규제 완화, 여성 권리의 확대, 경제 구조의 다변화 등 개혁 정책이 인기를 얻고 있어서다.
사우디 왕실의 일부에선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친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메드(77) 왕자를 빈 살만 왕세자의 유력한 대안으로 본다고 내부 소식통들은 말했다. 그러나 아메드 왕자의 정치적 경력이 낮은 수준인데다, 그가 새로운 역할을 떠맡을 의지가 있다는 중거도 아직은 없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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