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1 16:37
수정 : 2019.07.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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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요원들이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영국 선적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를 장악하는 모습. 이란 <파르스> 통신이 공개한 동영상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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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영국의 이란 유조선 나포에 맞대응
이란국제핵협정 유지 주장하는 유럽연합 곤혹
나포된 유조선 맞교환으로 위기 타개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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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요원들이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영국 선적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를 장악하는 모습. 이란 <파르스> 통신이 공개한 동영상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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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영국 유조선 나포로 이란 위기가 다시 증폭되고 있다.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관망 자세를 유지하던 영국 등 유럽국가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대이란 비난에 합세하면서, ‘이란 대 미국’과의 기존 대결 구도가 ‘이란 대 국제사회’로 대립 양상이 바뀌는 모양새다.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호는 지난 19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하다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 이란 <파르스> 통신이 이날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이 배는 이란의 고속정들에 의해 둘러싸여 운항이 제지된 뒤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선상으로 내려온 복면을 쓴 무장요원들에 의해 장악됐다. 이란은 또 이날 또 라이베리아 국적의 영국 유조선 ‘MV 메스다’를 같은 방법으로 장악했다가 풀어줬다.
이란과 영국은 ‘유조선 나포’를 둘러싸고 날 선 진실 공방을 벌였다. 이란 국영 통신 <이르나>는 이 유조선이 이란 어선과 충돌한 뒤 정지하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아나 나포됐다고 보도했다. 국제 해운법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은 20일 “불법적” 나포라며 즉각 석방하라고 이란에 촉구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이번 사건은 영국의 안보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국제 해운에 대한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고 비난했다.
영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까지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긴급히 착수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영국 정부가 이란 정권을 겨냥한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며, 헌트 장관이 자산 동결을 포함한 외교·경제 조치들을 21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또 이란 핵 합의 체결에 따라 2016년 해제된 유럽연합과 유엔의 대이란제재를 복원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란의 영국 유조선 억류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영국의 이란 유조선 억류에 대한 대항조처 성격이 짙다. 이번달 초 이란의 유조선 ‘그레이스 1’은 시리아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한 유럽연합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브롤터 해협에서 영국에 의해 나포돼 영국령인 지브롤터에 억류돼 왔다. 이란은 이 사건을 해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트위터로 “지브롤터 해협에서의 해적 행위와는 달리, 페르시아만에서 우리의 행동은 국제 해운법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말한 게, 영국의 이란 유조선 나포에 대한 대항조처임을 시사했다.
이번 사태로 미국의 일방적 탈퇴에도 불구하고 이란핵협정(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잔류하며 존속을 주장해온 영국 등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 이란이 영국 선적 유조선을 나포한 것은 자국의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이란 위기에서 유럽연합 주요국 중에서 영국이 가장 미국 쪽을 거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유럽연합도 일제히 억류 유조선의 돌려보낼 것을 촉구하며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등은 외교적 가능성도 계속 열어놓고 있다.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우리의 우선 사항은 긴장완화할 방법을 계속 찾는 것”이라며 군사적 조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란으로서는 영국을 압박해 양국이 나포한 유조선을 교환하는 조처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압박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교착국면을 타개할 전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 격화를 감수하면서, 타협 출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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