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1 15:55
수정 : 2019.05.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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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공식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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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출신 이집트 대통령이 트럼프에 요청
아랍의 봄 직후 민선정부, 쿠데타로 붕괴
전문가들 “근거 없어”…백악관에서도 격론
무슬림형제단 “흔들림 없다”…터키도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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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공식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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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범아랍세계의 최대 이슬람운동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을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할 태세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 정책 전문가들뿐 아니라 행정부 안에서조차 그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우려를 함께하는 지역의 국가안보팀 및 지도자들과 논의했으며,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내부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도 4월9일 미국을 방문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요청을 했다는 <뉴욕 타임스> 보도를 사실로 인정했다.
미국이 조직적 테러를 저질렀다는 근거도 없이, 신앙을 기반으로 많은 이들이 가입한 조직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려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는데, 외국의 정규군을 이렇게 규정한 것도 처음이었다. 테러조직으로 지정되면 미국 입국 제한과 금융 제재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1일 <로이터> 통신에, 무슬림형제단의 테러조직 지정 방안이 안보팀 안에서 논란을 촉발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지정을 지지한 반면, 국방부와 여타 부처에선 더 제한적인 조처를 원한다는 것이다.
미국내 안보 전문가들도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다. 대니얼 벤저민 전 국무부 테러담당 차관보는 “앞서 2017년에도 국무부가 무슬림형제단의 테러 단체 지정을 검토했으나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미국 최고의 민간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사디 하미드 선임연구원이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지정’ 방안이 부적절하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한다”고 밝히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군부 출신으로, 2013년 민선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이듬해 대통령이 됐으며, 무르시 전 대통령이 몸담은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단원이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최대 야권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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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현지 무슬림형제단 단원들이 요르단 국왕의 예루살렘에 대한 관리권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암만/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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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형제단은 성명을 내어 “우리는 온건하고 평화로운 사상과 신념에 따른 활동을 흔들림 없이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슬림형제단의 강력한 우군인 터키의 집권 정의개발당은 대변인 성명에서 “무슬림형제단의 테러조직 지정은 이 지역의 민주화를 방해하고 다른 무장그룹의 발흥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영국의 식민통치 시기인 1928년 이슬람 학자 하산 알반나가 “개인과 가족, 공동체와 국가에 쿠란과 순나(이슬람 신행과 규범)의 정신을 부활시킨다”는 종교·사회 부흥운동을 목표로 창설했다. 이슬람의 가치와 존엄을 내세우고 서민들에게 교육과 의료, 복지 등을 제공하면서 암울한 식민지 국민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독립 이후 1952년 이집트 군부가 나세르 혁명으로 집권하면서 무슬림형제단은 불법단체로 낙인찍혔다. 군부가 범아랍 민족주의와 함께 정교분리를 명시한 세속주의 원칙을 내세우면서 무슬림형제단의 지향과 정면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체의 정신과 영향력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 아랍 전역으로 퍼져나가 가지를 쳤다. 상당수는 정당 등 정치조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튀니지의 집권 엔나흐다당,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요르단의 이슬람행동전선, 이라크 이슬람당 등이 대표적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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