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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5 17:08 수정 : 2019.04.15 20:41

14일 수단 수도 하르툼의 군 사령부 앞에서 시민들이 군부에 즉각적인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하는 사이로 군인들이 탄 트럭이 국기와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하르툼/로이터 연합뉴스

군사위 “민정 약속…총리 후보 추천해달라”
군경 수뇌 교체·부패 척결·언론 자유 약속
시위대 “혁명 목적 이룰 때까지 압박”

‘아랍의 봄’ 이집트 등 반혁명 역풍 반면교사
“군부가 동맹이란 희망이 최대 실수” 교훈도

14일 수단 수도 하르툼의 군 사령부 앞에서 시민들이 군부에 즉각적인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하는 사이로 군인들이 탄 트럭이 국기와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하르툼/로이터 연합뉴스
“도둑을 도둑으로 교체하지 않겠다!”

11일 수단 군부가 시민들의 힘에 밀려 오마르 알바시르(75) 정권을 쿠데타로 축출한 이후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 중 하나다. 수단 민중은 30년 독재자의 몰락에 환호하면서도, 군부에 즉각적인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혁명 직후의 정치적 혼란과 권력 공백을 틈탄 반혁명이 불어닥친 역사적 사례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수단 군부는 쿠데타 직후 과도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흘 연속 야권 및 시민 대표들과 만나 “2년 내 민정 이양”을 약속하고 개혁안들을 내놨다. 반면 시민들은 신속한 민정 이양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태세다.

샴스 아딘 샨토 과도군사위 대변인은 14일 기자회견에서 “군사위는 야당들이 동의하는 어떤 형태의 민간정부로도 권력을 이양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군사위는 정당들에게 “독립적 인물로 총리 후보를 합의해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군사위가 발표한 개혁 정책에는 군대·경찰·국가정보보안국 수장 교체, 부패척결위원회 설치 및 전 정권 수사, 언론 규제·검열 철폐, 시위대를 지지했다가 구금된 군인·경찰관 석방, 외교 정책 재검토가 포함됐다. 그러나 시위를 이끌어온 수단전문직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민간 중심의) 과도위원회를 구성하고, 군은 이를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협회는 “과도위원회가 혁명의 목적 달성을 위한 모든 형태의 평화적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고도 했다.

14일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민주화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자유’를 염원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다. 하르툼/로이터 연합뉴스
군부에 대한 수단 민중의 불신과 경계심은 나라 안팎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한 알바시르 정권은 30년이나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고 권력과 부를 독점해왔다. 2003년 발발한 다르푸르 내전에선 반대 세력 수십만명을 학살했다. 군부는 그런 정권의 주축이었다.

나라 밖에서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이 정치군인 또는 군벌의 개입으로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수단과 국경을 맞댄 이집트는 생생한 반면교사다. 당시 이집트에선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846명을 살해한 뒤에야 군부가 개입해 32년 독재자를 끌어내렸다. 군사위원회의 과도 통치를 거쳐 2012년 6월 대선으로 무함마드 무르시 정부가 출범했으나, 극심한 혼란 끝에 꼭 1년 만에 군부가 쿠데타로 재등장했다. 수감됐던 무바라크는 풀려났다.

알제리에선 올해로 20년째 장기 집권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82) 전 대통령이 2월에 또다시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거센 시위에 밀려 이달 2일에 결국 물러났다. 이어 9일 임시대통령으로 지명된 압델카데르 벤살라 상원의장은 7월에 대선을 치르겠다고 밝혔으나, 시민들은 압델카데르는 부테플리카의 측근이라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알제리에서 ‘킹 메이커’ 노릇을 해온 군부가 과도 정부를 지지하고 선거 일정을 정한 것은 정치적 외피를 쓴 것”이라는 전문가의 주장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수단과 알제리에 뒤늦게 ‘아랍의 봄’이 찾아왔다”며 “적어도 현재로선 수단이 ‘이집트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단 시민들이 “승리가 아니면 이집트!”라고 외치는 것도 이집트의 선례가 되풀이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보여준다. 한 시민은 이집트 혁명의 실패를 두고 “군부가 동맹이 될 것이란 희망이 가장 큰 실수였다”고 짚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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