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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8 16:44 수정 : 2019.04.08 20:17

르완다 학살 25주년을 맞은 7일 저녁, 르완다 시민들이 수도 키갈리의 국립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추념 행사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키갈리/EPA 연합뉴스

7일 기념식·100일간 애도…각국 사절 추모행진
서구 강대국들 식민통치가 분열·내전·학살 씨앗
깊은 트라우마, 정체성 혼란 딛고 치유·화합으로
UN “비극 뒤 화해 보여줘…국제사회도 배워야”

르완다 학살 25주년을 맞은 7일 저녁, 르완다 시민들이 수도 키갈리의 국립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추념 행사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키갈리/EPA 연합뉴스
“1994년에 희망이라곤 없었습니다. 오직 어둠뿐이었습니다. 25년이 흐른 지금,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절단과 상처를 품고 있지만 우리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폴 카가메 대통령)

7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대학살기념관에선 르완다 학살 2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카가메 대통령은 헌화 뒤 기념사에서 “우리는 함께, 갈가리 찢긴 통합의 실들을 모아 새로운 융단을 직조했다”며 “여기서 있었던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르완다 대학살은 1994년 4월7일부터 석달이 넘게 인구의 85%가 넘는 후투족의 강경파가 소수 종족인 투치족 남녀노소 80만명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 대참극이다. 르완다 투치족의 4분의 3이 목숨을 잃었고, 만연한 성폭력의 후유증도 심각했다. 단시간에 이뤄진 최악의 학살극은 투치족 반군인 ‘르완다 애국전선’이 수도를 점령하고서야 막을 내렸다. 당시 반군 지도자였던 카가메 현 대통령은 2003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해 16년째 집권하고 있다.

르완다 학살 25주년을 맞은 7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학살기념관에서 무사 마하마트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회 의장(왼쪽부터),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카가메 대통령의 부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추모의 불꽃’을 점화하고 있다. 키갈리/AP 연합뉴스
르완다에선 7일부터 일주일 동안 공식 기념행사가 이어지며, 학살이 진행된 기간인 100일 동안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해 희생자들을 기리고 교훈을 되새긴다. 이날 기념식에는 차드·콩고·니제르·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연합 회원국 지도자들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르완다에 민족 간 갈등의 씨앗을 뿌린 옛 식민 종주국 벨기에의 샤를 미셸 총리 등 2000여명의 외국 사절이 참석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전했다.

이들은 의사당부터 국립 아마호로 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진 ‘추모의 행진’에 동참했다. 아마호로는 르완다어로 ‘평화’라는 뜻으로, 25년 전 유엔이 투치족 1만여명을 거리의 학살자들한테서 지켜낸 곳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념 성명에서 “오늘 우리는 그토록 엄청난 비극을 겪은 뒤 화해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모든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고통을 기억한다”며 “르완다는 비극에서 배웠다. 국제사회도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르완다는 카가메 대통령 집권 이후 공공장소에서 ‘종족’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며 국민적 화해와 치유, 사회 통합에 온힘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2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상흔은 깊다. 각국 언론들은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들 중 하나인 르완다 학살을 재조명하고 있다.

<시엔엔>(CNN) 방송은 학살 당시 남편과 5명의 자녀를 모두 잃고 고아들을 키우는 ‘르완다의 엄마’ 고레티(60)의 사연을 소개했다. <비비시>는 학살로 부모와 친척을 잃은 고아들이 자란 뒤 혹시나 생존했을지 모를 피붙이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고투하는 현실을 짚었다. <로이터> 통신은 학살 생존자들과 성폭행 피해 여성들의 트라우마와 심리 치료에 주목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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