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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7 16:02 수정 : 2019.03.27 22:14

2014년 6월29일 이라크 모술에서 칼리프 국가인 이슬람국가의 창설을 선언하는 아부 바르크 바그다디.

미국이 내건 2500만달러 현상금에도 여전히 행방 묘연
이라크 정보당국 “이라크·시리아 사막지대에 있을 것”
핸드폰 등 통신기기 쓰지 않아 추적 극히 어려워
여러 사망설 휩싸여…진면목 둘러싸곤 다양한 의견도

2014년 6월29일 이라크 모술에서 칼리프 국가인 이슬람국가의 창설을 선언하는 아부 바르크 바그다디.
23일 시리아민주군(SDF)의 공격으로 스스로를 ‘칼리프 국가’라 칭해온 이슬람국가(IS)의 물리적 기반이 사라진 뒤, 세간의 관심은 행방이 묘연한 지도자 아부 바르크 바그다디(47)로 옮겨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7일 “이슬람국가는 사멸했지만 지도자 바그다디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는 미군과 미국 정보기관의 ‘인간 사냥’을 수년째 피해왔다”고 전했다. 이라크 정보기관은 그가 시리아-이라크 접경 지역의 사막 지대에 숨어 있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그의 목에 2500만달러(약 283억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있다. 조지프 보텔 미국 중부군사령관은 “정보가 있다면 (그를 잡기 위해) 분명 최고의 능력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다디가 추적을 철저히 따돌리는 것은 핸드폰과 컴퓨터 등 추적이 가능한 전자기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슬람국가의 핵심 구성원으로 지난해 미군에 붙잡힌 이스마엘 에타위는 바그다디를 만나려는 이들은 위치 추적이 가능한 전화와 시계 등을 압수당한 뒤 자동차로 이틀간 여러 곳을 전전하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서구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9·11 테러의 주인공 오사마 빈라덴(알카에다·2011년 사살)이나 물라 오마르(탈레반·2013년 병사)처럼 바그다디도 철저히 자신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자신이 예언자 무함마드를 잇는 이슬람 세계 지도자인 칼리프라고 선언한 바그다디는 1971년 이라크 중부 사마라 근교에서 가난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구적이고 수줍은 많은 청년이었던 그는 바그다드의 이슬람대학에 진학해 코란과 이슬람 법학을 연구하는 성직자가 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바그다디는 이슬람국가의 모태인 알카에다 이라크지부 등에 참여했다. 당시부터 미국에 협력한 이들을 잔혹하게 공개 처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조직의 지도자가 됐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해 이라크-시리아 국경 지대에 거대한 힘의 공백이 생기자 세력을 키워 2013년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를 창설했다.

2014년 6월29일,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에서 검은 성직자 옷을 입은 한 남성이 이슬람국가의 건국을 선언했다. 바그다디는 21분에 걸친 연설에서 젊은이들에게 “나는 당신들을 지도하도록 임명됐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나를 도우라”고 호소했다. 4만여명이 이에 응한 것으로 집계된다.

미국 등 서구의 표적이 된 바그다디를 둘러싸고 2015년 사망설, 2017년 러시아군 사살설이 이어졌다. 하지만 2018년 8월 “포기하지 말라”는 음성 메시지 공개로 건재를 과시했다.

그의 진면목에 대해선 설이 여럿이다. 2004년 미군에 체포됐던 그를 만난 이들은 “적의로 가득한 과격한 수니파로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에타위도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그는 기술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한 사람”이라며 “현재 지위를 차지한 것은 (전임 지도자들의 사망으로 인한) 운 때문”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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