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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30 18:22 수정 : 2018.12.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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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떠날 ‘힘의 공백’ 시리아, 세력재편 각축
러-터키, 지상작전 공조 “테러집단 말소 공감”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 이란도 정치구상 관여

미 군부, ‘IS격퇴 선봉’ 쿠르드에 무기공급 검토
기세등등 시리아는 쿠르드 근거지 만비즈 장악
토사구팽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설’ 꿈 흐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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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최근 시리아 철군을 전격 공표하면서 ‘힘의 공백’에 빠진 시리아가 주변 강대국들의 급속한 세력 재편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인구가 4000만명이 넘지만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해 세계 최대 ‘디아스포라’(이산) 민족으로 알려진 쿠르드족이 그 틈바구니에서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신세에 내몰리게 됐다.

시리아 정부군이 쿠르드 민병대가 통제해온 만비즈에 진격한 28일,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에서 기자들에게 쿠르드 무장단체의 축출을 공언하고 있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러시아와 터키는 29일 모스크바에서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이 참석한 고위급 회담을 갖고 미군 철수 이후 시리아 내에서 진행될 지상 작전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우리는 (터키와) 매우 유용한 관련 부처 연석회담을 했으며, 외무부·국방부·정보당국 수뇌부가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당연히 우리는 미군 철수 발표와 관련한 새로운 상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며 “러시아와 터키 군대가 미군 철수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시리아 내부의 테러 위협을 뿌리 뽑는 것을 지상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조율할지에 대한 전면적 공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군이 쿠르드 민병대가 통제해온 시리아 북부 만비즈에 진격한 다음날인 29일, 터키군 군용 차량이 만비즈의 한 도로를 달리고 있다. 만비즈/로이터 연합뉴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도 회담 뒤 “터키는 러시아 및 이란과 공조해 시리아의 정치적 안정을 앞당기기 위한 주도적 활동을 지속하기로 했으며, 시리아 영토에서 모든 테러 집단을 말소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 러시아·터키·이란 등 3개국 외무장관은 내년 초께 시리아 평화 정착 방안의 하나로 시리아 헌법위원회를 구성해 새 총선을 치르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이슬람 소수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도 받고 있다.

러시아와 터키는 29일 회담에서 ‘전면적 공감’이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터키가 시리아 내 쿠르드족을 상대로 준비 중인 군사 행동에 대해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터키는 시리아 내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자국 내 분리주의 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분파로 보고, 이들을 격퇴해야 하는 테러 집단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들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쪽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29일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정부군인 자유시리아군(FSA) 병사들이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자신들의 깃발과 터키 국기를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알레포/AFP 연합뉴스
그러나 터키는 시리아 내 쿠르드 족 민병대에 대한 공세를 부쩍 높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7일 곧 공격에 나선다는 뜻을 밝힌데 이어, 차우쇼을루 외무장관도 25일 “터키가 (시리아에) 들어간다고 하면 분명히 그렇게 한다”고 공격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쿠르드 민병대는 그동안 대립 관계였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다. 실제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 28일 쿠르드 민병대가 통제해온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 도시 만비즈를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도 이를 반겼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시리아 정부군이 만비즈의 통제권을 회복한 것은 상황을 안정시키는 긍정적 흐름”이라고 말했다고 <모스크바 타임스>가 보도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섰던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의 여성 전사가 자동소총을 조준하고 있다. 출처 FLICKR
시리아 철군 결정으로 쿠르드족을 ‘토사구팽’하게 된 미국은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섰던 인민수비대에 무기 공급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에 협력하면 내전 종식 뒤 오랜 꿈이던 독립국가 건설 혹은 자치 확대를 기대했었다. 미국은 쿠르드족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절충안으로 ‘철수 후에도 무기 공급을 지속한다’는 대안을 고민 중인 셈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섰던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의 여성 전사들의 모습. 출처 FLICKR
<로이터> 통신은 28일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미군 최고위급 지휘관들을 인용해 “이런 방안은 미군의 시리아 철수 계획 초안의 일부로, 미 국방부가 이를 백악관에 최종 건의할 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계획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맹국인 터키를 자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숀 로버트슨 미 국방부 대변인은 “(철군) 계획을 작성하고 있으며, 치밀하고 잘 통제된 철군의 이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밝혔으나 “무기 공급에 관한 언급은 부적절하고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시리아 철군 발표에 대해 미군 지휘부에선 이런 방침이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이슬람국가 세력 격퇴에 일등공신인 쿠르드민병대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섰던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 전사들의 모습. 출처 FLICKR
쿠르드족은 인구가 4560만명(추정치)에 이르지만 단 한번도 독립국가 수립의 꿈을 이뤄보지 못한 채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등에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 디아스포라 민족이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 가며 미국에 협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철군 결정으로 다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됐다.

시리아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과 그에 맞선 반군 사이의 내전에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기 위한 국제 대리전이 뒤엉키면서 수십만명이 숨지고 다른 나라로 살길을 찾아 나선 난민만 600만명이 넘는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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