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10 17:53
수정 : 2018.08.1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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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예멘 사다주 자흐얀에서 사우디 주도 연합군 공습으로 부상한 어린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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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수십명 등 100여명 사상
민간인 공습 책임 안물어 비극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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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예멘 사다주 자흐얀에서 사우디 주도 연합군 공습으로 부상한 어린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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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보복 공습으로 버스에 탄 어린이 수십명이 숨졌지만 사우디 정부는 정당한 공격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대테러전이나 반군 진압을 명목으로 민간인을 대량 살해하고도 책임을 부인하는 ‘연합군’의 행태에 국제사회는 ‘진상 조사’만을 촉구하며 또 다른 학살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국제 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의 성명 등을 보면, 9일 오전(현지시각) 예멘 남부 사다주 자흐얀에서 꾸란 여름 강좌를 듣는 어린이들이 탄 버스가 야외 수업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공습을 받았다. 운전사가 물을 마시려고 혼잡한 시장 앞에 차를 세운 사이에 현장이 폐허가 될 만큼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버스에 탄 어린이 29명 등 최소 50명이 숨지고 77명이 다쳤다. 사상자 다수는 6~14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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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의 국경 근처인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후티 반군 쪽 방송 <알 마시라>는 팔다리가 잘리고 핏물을 얼굴에 쓴 어린이 주검들이 픽업트럭 짐칸에 엉켜 있는 현장을 공개했다. 어린이들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원조품으로 준 파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부상자들이 병상을 함께 쓰며 치료받는 모습과 고통스러운 비명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수도 사나에서 활동하는 예멘 기자 나세르 아라비는 “(공습을 당한) 시장 근처엔 군사시설이 없다”며 “그동안 사우디는 학교와 예식장 등을 목표로 여러 차례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군사시설 없는데…시장 정차한 학교버스에 ‘미사일 벼락’
현장 폐허 될 만큼 강렬한 폭발
숨진 아동들 트럭 짐칸에 뒤엉켜
부상자들 좁은 병원서 겨우 치료
사우디 “반군, 어린이를 방패 이용”
국제사회 “끔찍…용납할 수 없다”
국제사회는 충격을 표현하며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독립적 조사를 촉구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도 “어린이들을 위험한 길에 몰아넣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며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우디가 주도하고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이 참여하는 연합군에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도 이런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헤더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해당 보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사우디 주도 연합군이 철저하고 투명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우디 쪽은 오폭이라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버스에 후티 반군이 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반군이 어린이들을 인간 방패로 이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르키 알 말키 연합군 대변인은 “미사일 공격은 합법적 목표를 겨냥했다”며 “그건 어린이 버스가 아니다. 우리는 목표를 겨냥하기 위해 높은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 공격은 사우디 남부에서 민간인을 죽이고 다치게 한 공격에 따른 군사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후티 반군이 사우디 국경 지대의 지잔에 쏜 미사일로 시민 1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것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연합군은 이번 공격으로 1명이 숨졌을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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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발생한 사우디 연합군 공습으로 부상한 예멘 어린이가 병원 침대에 앉아 치료를 받고 있다. 아이가 메고 있던 가방에 유니세프 마크가 보인다. 후티 반군 쪽 방송 <알 마시라>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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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사우디가 지원하는 수니파 정부와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후티 반군 사이에 시작된 내전은 사실상 국제 대리전으로 확대돼 수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유엔은 사망자 1만명 중 3분의 2가 민간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대부분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의 공습에 희생됐다. <알자지라>는 지난 6월에만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군이 258차례의 공습을 가했으며, 3분의 1은 비군사시설을 목표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주에도 반군이 장악한 서부 호데이다에서 연합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민간인 55명이 숨지고 170여명이 다쳤다. 연합군은 이 지역을 공습하지 않았다며, 반군의 박격포 공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4월에는 후티 반군 거점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산골 마을 결혼식장에 공습이 가해져 어린이 8명 등 22명이 숨졌다.
민간인 지역 공습으로 대규모 희생이 잇따르는데도 책임 추궁이 없기 때문에 교전에 관한 국제인권법의 원칙인 ‘비례와 신중의 원칙’은 무시되고 있다. 예멘과 시리아 등지에서 미국이 주도하거나 후원하는 연합군은 압도적 제공권을 바탕으로 공습을 주요 작전 수단으로 쓰면서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 공습으로 숨진 민간인 사망자 수는 1692명으로 2009년 이래 가장 많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6~10월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하고 있던 시리아 락까에서 미군 주도 연합군의 공격으로 민간인 수백명이 숨졌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미군은 지난달 27일에야 민간인 77명의 사망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예멘 곳곳에서 민간인 사상자 증가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난은 커지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사우디 방문길에 1100억달러(약 124조2450억원) 규모의 무기 거래가 성사됐다며 “미국에 엄청난 날”이라고 환호했다. 이런 무기들이 결국 예멘 땅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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