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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9 05:02 수정 : 2018.05.09 11:14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③ 케냐 숲복원운동과 여성의 삶

1960년대 영국서 독립하던 무렵
돈이 되는 커피나무를 심으려고
토종나무 베어내자 물 말라버려
식수·식량난에 땔감도 못 구해

“남자들은 멀리 돈벌이 떠나고
여자들은 수㎞씩 걸어 오가며
땔감 구하고 수십ℓ씩 물 길어”
집안 돌보다 유산하거나 죽기도

5월8일 현재 이곳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리고 있다.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한 날부터 이레째. 하루에 짧으면 20분, 길게는 두어 시간씩 내린다. 한국 장마처럼 굵은 장대비가 퍼부을 때도 잦았다. 3~6월은 이곳의 우기다. 케냐 적십자사는 지난 4일 “이번 홍수로 적어도 112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 뒤 사망자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른다.

홍수로 사람이 죽어 나가지만, 케냐는 ‘물 부족 국가’다. 4600만 인구 가운데 41%가 여전히 연못이나 강, 얕은 우물에서 물을 떠다 먹어야 한다. 홍수와 가뭄은 정반대의 자연재해다. 그러나 정반대의 재해를 겪는 사람은 정반대의 사람이 아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41%는 비가 오면 고스란히 홍수를 겪는다. 그중 유독 불운한 일부는 가뭄 때 숨지고, 그 못지않게 불운한 일부는 홍수 때 숨진다.

올해 마흔일곱인 리디아 가티도 평생 가뭄과 홍수를 겪으며 살아왔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에게 반복된 것은 가뭄과 홍수가 아니라 건기와 우기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가티의 마을은 건기에도 마르지 않고 우기에도 범람하지 않는다. 그녀의 삶도 그만큼 변했다. 그녀의 운명은 이 지역 나무들의 운명이기도 했다.

지난 4일 오후(현지시각) 케냐 니에리주 키리아 마을이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지역은 주민들이 그린벨트운동본부와 함께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고 가꾼 뒤부터 가뭄과 홍수, 토지 황폐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났다. 키리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4일, 나이로비에서 북쪽을 향해 자동차로 3시간가량 달린 뒤 맞닥뜨린 니에리주 키리아 마을은 전체가 울창한 숲이었다. 저마다 기싸움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가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조밀하게 자라 있었다. 평화원정대가 아니라 케이블티브이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제작진이 된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최근 내린 비로 나무와 나무 사이 공간에 깊숙이 스민 습기가 피톤치드와 함께 묵직하게 오감을 자극했다.

“1991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엔 자생하는 나무가 거의 없었어요. 저 멀리 이웃집이 다 보일 정도로 공간이 뻥 뚫려 있었죠. 사람들은 땔감을 구하려고 얼마 남지 않은 나무를 잘랐고, 나중엔 저 먼 산까지 가기 시작했어요.” 케냐 최대 종족인 키쿠유족 출신 가티가 자신의 집을 빙 둘러싼 그레빌레아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무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건 케냐가 영국에서 독립(1963년)하던 무렵부터라고 한다. 동네 주민들이 여기저기 커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다른 작물에 비해 돈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커피나무가 챙길 영양분을 빼앗아간다는 이유로 토종 나무를 베어냈다. 커피나무는 제국주의 시절인 1900년께 처음 들어왔지만, 막상 제국주의가 물러갈 즈음 케냐의 나무들을 거침없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무는 저 홀로 희생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참혹한 대가를 요구했다. 장작을 때어 음식을 하는 원주민들에게 커피나무는 땔감으로 아무 쓸모가 없었다. 갈수록 장작이 될 만한 나무가 사라져갔다. 풀만 자라는 땅에는 물이 모이지 않았다. 흙이 건조해졌다. 우물과 주변 개천의 물이 말라갔다. 우기가 오면 어김없이 홍수가 졌다. 흙의 영양분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가 땅은 황폐해지고 개천은 심각한 부영양화가 진행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땅이 야위자 주식으로 먹던 콩, 바나나, 옥수수, 카사바, 얌 등의 생산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열대 과일 패션프루트는 물론 파파야, 나무토마토 같은 유실수도 재배하기 힘들어졌다. 땔감 구하기가 쉽지 않자 집에서 먹는 음식 종류도 줄고 갈수록 단순해졌다.

지난 4일 오후(현지시각) 케냐 나에리주 키리아에서 주민 리다아 가티가 한겨레평화원정대와 인터뷰 하고 있다. 키리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어린 시절 얘기를 하던 가티의 눈에 어느 순간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곳에서 장작을 구하는 건 오롯이 여자들의 일이었어요. 남자들은 주로 도시에 나가 일자리를 찾았죠. 여기 있어도 남자들의 일은 아니었어요. 우물이 나오지 않자 20ℓ들이 물통을 들고 물 뜨러 가는 것도 여자들 일이었죠. 한번에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 땔감을 구하고 물을 길었어요. 힘센 여자는 한 번에 물통을 2개씩 들고 다녔죠.”

벨라루스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제목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케냐에서 ‘남벌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번안됐다. 가티의 말이 빨라지고 길어지기 시작했다.

“요리와 설거지도 모두 여자 몫이죠. 그땐 물이 없어 아이들 씻기는 것도 어려웠어요. 머리에 이도 많았고 병도 많이 걸렸어요. 무거운 것 드느라 여자들은 만날 허리가 아팠어요. 임신 중 유산하는 여자들도 많았죠.”

불평등한 성별 분업 이야기의 중간 결말은 재생산의 중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를 견디지 못한 일부 여성들의 죽음이었다고 가티는 증언했다.

가티 옆에서 눈을 끔벅이며 얘기를 듣고 있던 남편 줄리어스 기타이가(56)에게 가티의 말이 사실인지 물었다. 기타이가의 대답은 담백했다. “키쿠유 남자들은 집에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관습이 있어요. 일단 나가서 먹을거리를 구해 가족의 밥상 위에 올려놓는 게 임무죠. 나이로비 같은 데로 나가 주말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왔어요. 지금 와서야 여성들이 참 많은 일을 했다는 걸 깨닫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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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심기 운동이 만들어낸 반전 “자, 이 샘물을 봐요”

지난 4일 오후(현지시각) 케냐 니에리주 키리아의 숲속 우물에서 줄리어스 기타이가가 물을 마시고 있다. 홍수와 가뭄 피해가 번갈아 반복되던 이 지역에 주민들이 100만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고 가꾼 덕에 지금은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키리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나이로비서 차로 3시간 떨어진
니에리주 키리아마을은
1991년 그린벨트운동 접한 뒤
씨앗 받아 심은 나무들이 숲 변신

물 마르지 않고 흙도 비옥해져
작물 생산 늘자 주민 건강해지고
닭 키우고 과일 팔아 소득도 늘어
황폐화한 마을에 다시 평화가

비극으로 끝날 듯하던 줄거리는 이들이 1991년 그린벨트운동(GBM)을 만나면서 반전으로 나타났다.(상자기사 참조) 같은 니에리주의 이히테 마을 출신으로 나이로비대 교수이던 왕가리 마타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무 심기 운동을 제안했다. 마타이는 일찌감치 남벌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마타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내게 ‘여성들을 더 모으고 나무 심기와 소득 증대를 위한 활동을 통해 환경을 보존하도록 가르치라’고 하더군요.” 가티가 말했다.

주민들은 그레빌레아를 비롯해 자귀나무, 왕벚나무, 아프리카올리브, 코르디아 등 커피나무에 밀려 사라진 토종 나무의 씨앗을 받아 모종을 만든 뒤 이를 황폐해진 밭 주변과 산에 옮겨 심는 작업을 꾸준히 벌였다. 변화는 확실했다. 두께가 굵지 않은 대신 매우 빨리 자라는 그레빌레아는 다시 훌륭한 땔감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여성들은 더는 장작을 찾으러 몇 시간씩 헤매지 않아도 됐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산의 나무가 굵어질수록 바짝 마른 동네 우물도 한 해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 됐다. 물통을 이고 몇 킬로미터씩 돌아다니는 여성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린벨트운동 쪽 지도를 받아 밭 인근에 자그마한 저류조를 만들어 빗물을 모으는 한편 나뭇잎과 썩은 나무, 재를 이용해 만든 생태친화적 퇴비를 밭에 뿌리자 흙이 비옥해졌다. 콩과 옥수수의 생산량이 늘고 카사바, 얌 같은 뿌리식물도 굵직해졌다. 여성과 아이들의 영양 상태도 좋아졌다.

가구 소득도 늘었다. 그린벨트운동 쪽 훈련을 받아 닭, 토끼, 염소 등을 집에서 키운 뒤 내다 팔면서부터다. 아보카도와 마카다미아 등 과일을 길러 팔면서 생기는 부수입도 짭짤하다. 거주지와 숲에 50만그루씩 모두 100만여그루를 심은 나무가 자라자 땔감이나 가구용으로 팔아 얻은 수입 또한 쏠쏠하다는 게 부부의 증언이다.

“되살아난 샘물을 보러 갑시다.”

부부의 제안을 받고 이동하려는데, 지붕 끝 처마에 설치된 빗물받이와 함께 한 곳으로 연결된 끝에 설치된 대형 물탱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집에서 물을 조달하는 일종의 자연창고다.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의 숲으로 갔다. 10에이커(약 4만4000㎡) 면적에 나무가 고루 자라고 있다. 큰길가엔 수천개의 나무 모종이 작은 화분에 담겨 자라고 있다. 모두 숲에서 자란 씨앗을 발아시킨 것이다. 다 자란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꾸준히 모종을 심는 덕에 숲은 마르지 않는다.

“자, 보세요.”

기타이가가 숲의 한쪽을 가리켰다. 한국에서 웬만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보다 많은 물이 파이프를 타고 콸콸 뿜어져 나왔다.

“지금이 우기라 수량이 평소보다 좀 많긴 하지만, 가물 때도 이 샘물은 끊이지 않고 나와요. 부근을 지나다니는 초등학생 녀석들이나 인근 주민들의 식수로도 활용되고 있죠.”

그가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아 마시며 상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티가 그를 바라봤다. 어딘지 나무를 닮은, 평등과 평화의 얼굴이었다.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리다아 가티(왼쪽)·줄리어스 기타이가 부부. 키리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키리아/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평화원정대가 케냐에서 만난 버지니아 완지루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완지루는 ‘자유’를 뜻하는 ‘위야디’(키쿠유족어)를 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마라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화원정대가 케냐에서 만난 유니스 완지루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완지루는 ‘하나됨’을 뜻하는 ‘비과노‘(키쿠유족어)를 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마라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화원정대가 케냐에서 만난 리다아 가티(왼쪽)·줄리어스 기타이가 부부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가티와 기타이가는 각각 ‘행복’과 ‘건강’을 뜻하는 ‘기케노’와 ‘우기마’(키쿠유족어)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키리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화원정대가 케냐에서 만난 데이비드 카마우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카마우는 ‘물은 생명이다’를 뜻하는 ‘마지 니 우하이’(스와힐리어)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나이로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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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한겨레 창간 30돌] 평화원정대 : 희망봉에서 널문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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