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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3 17:00 수정 : 2019.11.13 19:59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한 월마트에서 총기 난사로 20명이 숨진 사흘 뒤인 지난 6일, 참사 현장 앞에서 시민들이 촛불과 꽃다발을 놓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엘패소/EPA 연합뉴스

FBI 최신 통계, 트럼프 집권 뒤 3년 연속↑
이슬람 테러 줄자 남미계 이주민에 눈길
“트럼프의 혐오 발언이 혐오스런 결과로”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한 월마트에서 총기 난사로 20명이 숨진 사흘 뒤인 지난 6일, 참사 현장 앞에서 시민들이 촛불과 꽃다발을 놓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엘패소/EPA 연합뉴스

지난해 미국에서 증오범죄가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12일 공개한 <증오범죄 통계 2018>를 보면,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집계된 ‘편견에서 비롯한 범죄’는 7120건에 이르렀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최근 3년 연속 혐오범죄가 증가하면서 역대 최다 발생 건수를 기록한 2017년보다는 55건(0.77%)이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지난해 연방수사국에 관련 통계를 보고한 수사당국의 수가 1만6039곳으로 한 해 전보다 110곳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역대 최고 기록을 이어간 셈이다.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증오범죄의 희생자도 지난해에 24명으로 가장 많았다. 증오범죄의 유형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신체적·언어적 폭력과 시설물 훼손, 재산 약탈이 대부분인데, 지난해에는 재물보다 사람에 대한 범죄가 11.7%나 늘었다.

혐오범죄의 동기로는 인종·민족·혈통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한 범죄가 57.5%로 절반이 넘었다. 이와 함께 종교적 편견(20.2%), 성적 지향성 편견(17.0%)이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젠더 정체성(2.4%)과 장애인(2.3%)에 대한 혐오 범죄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통계에선 남미계 이주민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해 주목된다. 라틴계와 히스패닉 주민을 겨냥한 증오범죄 피해자는 671명으로, 전년의 552명에 견줘 21%나 급증했다. 특정 인종이나 혈통에 대한 증오범죄의 대상은 흑인이 46.9%로 여전히 가장 많았으며, 백인(20.2%)과 라틴·히스패닉(13.0%)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흑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연방수사국이 관련 통계를 공표하기 시작한 1992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해, 라틴·히스패닉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어난 것과 대조를 보였다.

2017년 1월 미국 오레곤주 유진이 연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모두의 목숨이 중요하다 운동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다양성이 우리의 힘”이라고 쓴 손팻말이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추세는 지난해 트럼프 정부가 중남미 난민 행렬인 ‘카라반’을 원천봉쇄하고, 부모와 아이를 격리시키며, 멕시코와 접경지대에 거대한 철제 장벽을 세우는 등 강경하고 반인도주의적인 이주정책을 편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지난 8월에는 멕시코 국경에 인접한 텍사스 주 엘패소의 한 쇼핑몰에서 백인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20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기도 했다.

미국의 라틴계 시민 인권 단체인 유니도스유에스(UnidosUS)의 제닛 머기아 대표는 <로이터> 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은 라틴계를 가장 혐오스럽고 편견에 가득 찬 방식으로 언급하는데, 말이 문제가 된다”며 “혐오의 말은 혐오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폭력이나 심지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증오·극단주의 연구소의 브라이언 레빈 교수는 <시엔엔>(CNN) 방송에 “(미국 사회에서) 중동 관련 테러와 그에 따른 공포 분위기가 잦아들면서, 유권자들의 ‘넘버 원’ 이슈도 테러리즘에서 남미계 이주민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과 미 법무부는 이번 연방수사국 보고서에 대한 언론사들의 논평 요구에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 유대인 혐오 반대 민간단체인 명예훼손반대연맹(ADL)의 조너선 그린블래트 대표는 12일 성명을 내어, 의회는 혐오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규를 즉각 통과시키라고 촉구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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