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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9 17:04 수정 : 2006.05.10 14:22

젖무덤을 반쯤 드러낸 마리아와 어린 동자 모습의 예수의 조각인 성모자상 앞에 서 있는 방상복 신부

유뮤상통마을 방상복 신부

경기도 안성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미리내성지의 노인요양원 유무상통마을에서 젖무덤을 반쯤 드러낸 어머니와 아이를 조각한 성모자상 앞으로 삭발한 머리에 흰 수염 휘날리며 개량한복을 입은 신선 같은 풍모의 인물이 걸어 나온다. 이 요양원을 동서양의 진리를 회통시킨 요람으로 가꾸어온 원장 방상복 신부(57)다.

요즈음엔 종교계에서 이웃종교의 명절을 축하하는 게 낯설지 않다. 가톨릭과 불교, 성공회, 원불교 등 4대 종교 여성수도자 모임인 삼소회가 지난 2월 세계 종교의 성지에서 평화를 기원한 이래 부활절(16일)과 부처님오신날(5월5일)을 앞두곤 불교와 가톨릭이 앞 다투어 이웃 종교의 명절을 축하했다. 한국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부처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를 볼 것이다”라는 법어를 내기까지 했다. 오는 25일과 29일엔 여러 종교인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장·백도웅 목사)가 정진석 추기경의 추기경 서임 축하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서로 다른 종교가 함께 내게 될 하모니와 이를 보는 한국민들의 흐뭇한 미소는 종교 간 전쟁에 찌든 인류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원주인예수상… 우리식 신앙 누뜨게 한 계기
‘종교재판’ 회부 고난 겪어불…불교 등 이웃종교 이해 앞장

하지만 불과 15년 전 방 신부가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합니다’란 플래카드를 내걸 때만 해도 그는 ‘이상하거나 수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종교의 벽을 넘어선 데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인류의 구원으로, ‘이에는 이’라는 구약의 법칙을 사랑의 법칙으로 바꾸려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언제나 희생양이 있게 마련이었다.

방 신부는 애초 6대째 가톨릭 신앙만을 지켜온 집안에서 자랐다. 다른 종교엔 관심도 이해도 없었다. 진리와 구원은 가톨릭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온 ‘정통파’였다. 서양인 코와 눈을 가진 예수와 성모상만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가 어쩌다 이처럼 ‘한국인으로 오신 예수와 성모’를 이곳에 ‘모신’ 것일까.

30대 초반이던 1981년 파퓨아뉴기니섬에 선교사로 파견된 그는 정글, 오지 등에서 지내면서 신앙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맞았다. 그곳서 본 예수상은 ‘툭 까진 입술에 검은 피부’를 지닌 원주민 모습이 아닌가. 먼 나라에 온 예수가 아니라 자기 땅의 자신들에게 온 예수로 받아들인 성물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5년 뒤 귀국할 때 방 신부는 ‘고정된 예수상’의 껍질을 깨고 ‘이 땅의 예수’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의 전통을 이해하며 공부하려 애썼다. 16년 전 경기도 광주 도척성당에 부임해선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합니다’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가서 불교도 공부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다석 사상에서 본 그리스도와 불교의 대화와 일치’였다. 방 신부의 방에는 함석헌의 스승으로 그리스도교인이면서도 불교와 유교 등 전통 사상을 회통했던 다석 유영모의 큰 사진이 걸려 있다.

“불교는 일체를 무(無)라고 하고,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아닙니까. 그러나 무 없이 유가 나오나요? 유무는 서로 통하는 것이지요.”

그가 그런 깨침과 함께 ‘많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가 함께 어울리자는 뜻으로 이름한 유무상통마을 성당엔 한복을 입은 성모자상과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와 한쪽 다리를 다른 쪽에 얹고 앉아 편히 쉬는 예수상 등 로마식이 아닌 우리 전통으로 내려온 예수와 성모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발단이 돼 방 신부는 수원교구의 ‘종교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5년 전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이 요양원을 떠나라는 인사발령을 2002년에 받았다. 15년 전 도척성당부터 사제관에 노인 한두 명과 함께 생활한 것을 시작으로 무료노인요양원원, 치매요양원, 미혼모의집이 생겨났고, 5년 전엔 그가 ‘어르신공동체’라고 부르는 이 요양원이 탄생했다.

그의 발령 소식에 이곳 노인들은 교구 본부에서 농성을 하며 그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그는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종교 재판’과 그 인사발령은 아직까지 미해결 상태다.

세상의 평화를 깨는데 종교인들의 벽과 독선이 가장 문제라고 여기는 그는 자신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자신처럼 ‘종교 재판’의 희생양이 된 이들을 챙기기까지 한다. 개신교 학교인 대광고에서 종교자유를 주장하던 강의석을 돕다 교직과 목사직을 그만둔 류상태씨를 초청해 이곳 노인들과 피정을 여는가하면, ’종교적 관용’을 이유로 개신교 사학인 강남대에서 해직된 이찬수 교수를 지난주부터 초청해 16차례에 걸친 강좌를 열고 있다.

.“하느님이니 하나님이니 하며 이름 가지고도 다투는 세상이다. 절대자는 ‘없이 계시는 님’이 아닌가.”

유와 무로 갈라진 종교가 유무상통마을에서 마침내 벽을 관통하고, 상극은 상생이 되고 있다. 성모자상 앞에선 허공 속에 꽃들이 제각각 아름다웠다.

안성/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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