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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9 15:46 수정 : 2006.05.10 14:22

■형경과 미라에게■

경쟁자한테도 칭찬 듣고 싶어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 걱정이에요

[질문]: 직장 동료가 있습니다. 그는 제가 맡은 분야와 별로 관련이 없음에도 제가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주 와서 일의 진행에 대해 묻고 자료 조사는 어느 정도 했는지 체크하곤 해서 짜증이 납니다. 그는 그런 정보를 상사에게 보고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제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있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 사람이 제게 조금만 칭찬을 해주면 그만 마음이 풀려서 중요한 정보를 술술 털어놓고 만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보고서 내용이 중복되어 제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제게는 남의 칭찬을 받거나, 남한테서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사족을 못쓰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누가 제 욕을 하거나 절 못마땅해 하면, 겉으론 평온한 척해도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무조건 남한테서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도 남자가 날 안 좋아하는 것 같으면 좋아하게 만들어야지 하는 오기가 생기곤 했거든요. 이런 일들에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걸까요?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부럽습니다. (순진?)


인정받고 싶던 어릴적 욕구 흔적
현실 불편한 감정 감수할 필요, 자신을 ‘스스로’ 인정·주도해야

[답변]: 순진이라는 닉네임 뒤에 물음표를 붙이셨군요. 본인이 순진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사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만 명확하게 알 수 있어도 생에서 맞는 갈등 중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 생을 주도적으로 영위해나갈 수 있을 때까지 참으로 긴 시간을 부모에게 의존하여 살아갑니다. 그 긴 성장기 동안 우리가 터득하는 가장 중요한 생존법은 얼마나 잘 의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잘 의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착하게 행동하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래야만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들을 자신의 생존에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입장에서 충분히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기대했던 사랑이나 인정, 지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이의 내면에 그것에 대한 갈증이 남습니다. 그런 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과도한 욕망을 내면에 간직하게 됩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착한 여자/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몸이 부서지도록, 몸 속에 암덩이가 생기도록 참고 헌신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경쟁자나 적으로부터도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순진님께서 잠재적 경쟁자로 느끼는 동료에게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거절하면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유아적 생존법의 흔적입니다.

순진님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유아적 생존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성인으로서 순진님이 살아가는 세상은 착하고 말 잘 들으면 절로 사랑과 보호가 주어지던 가족 공동체가 아닙니다. 동료들과 화해하며 지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순진님 역시 타인에 대해 불편하고 못마땅한 감정을 느끼듯이 다른 누군가도 순진님에 대해 욕하거나 못마땅해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참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경쟁자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에 따르는 분노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순진님의 내면에서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 사회적 성취에 대한 욕망, 더 많은 물질에 대한 소유욕 등이 짚어진다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가 틀림없다고 말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동료가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행위나, 타인에 대해 이유 없이(실은 이유가 있습니다) 욕하는 사람이나, 상사에게 잘 보이고자 공적을 가로채는 사람에 대해 예측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행위에 대해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 불편한 감정을 갖기에 앞서서 그들과 어떻게 적절한 관계를 맺어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외부로부터 원하는 인정과 지지를 순진님께서 스스로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상사나 동료가 내 공적을 알아주고 그에 대해 적절한 보상과 인정을 해주겠지 기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순진님이 내면에서 기대하는 것에 맞춤한 인정과 지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취감과 사회적 소명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에 급급하다 보면 생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권력을 가졌다고 느껴지는(부모 이미지가 투사되는) 상대에게 휘둘리게 되기 쉽습니다.

『상담이 필요하신분은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의 오른쪽 하단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을 클릭한 뒤 상담글(http://happyvil.hani.co.kr)을 써주십시오.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박미라씨가 수요일자 신문 지면으로 번갈아 답변을 드립니다. 비공개 상담요청이 폭주해 당분간 신문지면 공개 상담을 원칙으로 하며 비공개 상담은 원칙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 ‘형경과 미라에게’ Q&A 게시판 ◁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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