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 서울 ‘AI수사관’에
“수사 전 개인정보 수집 안돼” 결정
범죄 혐의자 자주 사용한 단어 쓴
모든 사람들 글 수집 대상 돼
“프로파일링 거부권 필요” 지적
시 “시스템 고도화로 해결할 것”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민사단)의 ‘인공지능을 활용한 민생범죄 수사지원 분석사업’(인공지능 수사관)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의 결정이 나왔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범죄수사 등에 사용할 경우 정보인권을 고려한 제도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보위는 “수사·내사 전단계에서 이뤄지는 조사활동을 목적으로 인공지능 수사관을 활용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고 10일 밝혔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거나 법률에 규정이 있는 경우, 공공기관의 업무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등에 개인정보의 수집과 수집목적 범위 내 이용을 허용하지만 인공지능 수사관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개보위는 판단했다.
민사단은 식품·보건의료·상표권·대부업·방문판매·부동산 등의 ‘민생범죄’에 해당하는 사안들에 대해 특별사법경찰관리로서 수사해 검찰에 송치한다. 민사단은 범죄가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 착안해, 민간업체에 용역을 줘 지난해 인공지능 수사관을 만들었다.
범죄 혐의가 있는 업체들이 자주 쓰는 열쇳말을 입력하면 인공지능 수사관은 해당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 수만건을 검색해 저장한다. 다단계의 경우, 게시물에 보상플랜·투자설명회·소개수당 등이 열쇳말이 된다. 게시물에 담긴 이름·아이디·전화번호·주소·업체명 등을 자동 분류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불법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을 추려내면 ‘사람 수사관’이 넘겨받아 내사·수사에 착수한다. 예전엔 수사 대상을 찾기 위해 ‘사람 수사관’이 열쇳말을 일일이 입력해 검색했다.
이런 방식은 온라인 ‘불심검문’과 유사하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보톡스’나 ‘신혼부부 특별청약’ 등이 포함된 글을 올리기만 해도, 인공지능 수사관이 일단 수집해 범죄 혐의를 따지기 때문이다. 개보위는 “인공지능 수사관이 공개된 게시물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는 것은 온라인 게시물의 통상적인 이용 범위, 정보 주체의 공개 의도나 목적을 벗어나는 것으로 정보 주체가 이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는 볼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공개된 게시물이고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동의했다 해도, 자신의 범죄혐의 수사를 위해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개보위는 민사단 관련 법령에 수사·내사가 아닌 정보활동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고 봤다. 서울시는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를 없앤 뒤 다시 심의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새 기술이 도입될수록 정보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는 한편 새 환경에 맞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통해 ‘프로파일링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한다. 프로파일링 거부권은 자동화된 정보 처리만으로 이뤄진 결정이 자신에게 법적 영향 등을 미치지 않도록 거부할 권리를 뜻한다. 거부권의 예외로는 당사자 간 계약이나 동의, 관련 법률이 있는 경우로 한정된다. 조지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장(변호사)은 “빅데이터·인공지능 등을 수사에 활용하려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인권적·민주적 통제 방안과 프로파일링 거부권 등 제도적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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