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서준 해시드 대표
머잖아 가상현실이 생활 터전 될 것
중력같은 법칙 블록체인이 정의해야
올해 탈중앙화 게임 발굴·육성 집중
사용자 경험 등 한계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게임 이미 수익 내기 시작
밀레니얼 세대 게임 속 경제활동 친숙
아마도 아주 가까운 미래에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택시 기사, 버스 기사 같은 일자리는 곧 사라진다는 얘기다. 어디 운전뿐이겠는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봇 등 새로운 기술은 지금 사람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세계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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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 해시드 대표. 해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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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겸 벤처캐피탈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가 내놓은 답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지난해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 똑같은 답을 한 바 있다. 2045년, 영화 속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브이아르(VR) 안경을 끼고 하루 종일 가상의 세계에서 활동한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잠만 잔다. 현실세계의 부와 명예보다 가상현실 속 부와 명예가 더 중요하다. 김 대표는 “게임이 더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경제활동을 비롯한 모든 생활의 터전이 가상현실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세계에서 가상현실로 넘어가려는 순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가상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신뢰 문제다. 김 대표는 “우리는 뉴턴이 세운 물리학 법칙 덕분에 현실세계의 활동을 신뢰할 수 있다. 누구도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현실세계에 있다. 사람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꽤 신뢰한다. 하지만 중력만큼 신뢰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거대 기업이 자본력을 동원해 게이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반항하는 게이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현실세계에서 그를 해치려 든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에 대한 신뢰를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기업의 중앙 서버에 저장된 법칙보다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위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 프로토콜에 의해 법칙이 정의될 때 사람들이 그걸 믿고 경제활동을 비롯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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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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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실험
김서준 대표는 포스텍(POSTECH)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 연쇄 창업가이자 투자자다. 2016년 초 이더리움 백서를 읽은 것을 계기로 블록체인 업계에 발을 들였다. 2017년 글로벌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Hashed)를 설립했다. 해시드 설립 전 인공지능 수학교육 스타트업 ‘노리(Knowre)’를 공동 창업했다. 현재 소프트뱅크벤처스의 벤처파트너를 함께 역임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등장한지 십 년, 실생활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널리 쓰이는 ‘킬러 서비스’ 출현은 아직 요원하다. 업계에선 블록체인 기술의 쓸모를 대중에게 가장 빠르게 입증할 분야는 게임일 거란 예측이 나온다. 해시드가 이 예측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해시드는 12일 새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 ‘해시드랩스’ 런칭 계획을 공개했다. 목표는 블록체인 기반 댑(dApp,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 그 중에서도 게임 댑을 개발할 팀을 발굴해 육성하는 것이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팀에게 해시드는 개발팀 구성부터 게임 기획과 개발, 배포와 마케팅까지, 게임 출시를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 투자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해시드는 지난해 전세계 40건의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특히 이미 시장에서 서비스를 검증받은 기업이 기존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엮어내는 ‘리버스(reverse) ICO(암호화폐 공개)’에 주목했다. 영화 추천 서비스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성공을 거둔 왓챠의 ‘콘텐츠 프로토콜', 포인트 적립 서비스 ‘도도포인트'로 유명한 스포카의 ‘캐리프로토콜' 등이 해시드의 투자를 받았다.
이미 운영중인 서비스와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를 확보한 만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반ICO 프로젝트들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의 장점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있다. 현실 세계의 기존 서비스와 암호화폐를 이용한 경제 활동 시스템, 즉 토큰 이코노미를 잘 결합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 대표는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 암호화폐로 무언가를 해 보려면 결국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잘 찾아 이용자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서비스와 이용자를 이미 갖고 있는 리버스 ICO의 경우 토큰 이코노미 설계에 더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리버스 ICO 프로젝트 대부분은 전통 사업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기존 참여자들에게 보상을 주는 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이용한다. 반면 게임 속 세상은 애초에 판타지다. 화면이라는 주어진 공간에서 모든 실험이 가능하다. 게임은 온전히 ‘크립토 네이티브' 실험이 가능한 하나의 우주다”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게임의 현실과 과제는
블록체인 댑 순위 사이트 ‘스테이트 오브 댑스’에 따르면, 2015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전체 블록체인에서 이뤄진 월 평균 거래(트랜젝션) 가운데 가장 많은 양(35%)이 게임에서 나왔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넘어섰다.
상위권 게임들은 아니라 매출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오스(EOS) 기반 도박 게임 ‘다이스(DICE)’와 방치형 역할수행게임(RPG) ‘이오스나이츠(EOS Knights)’, 트론(Tron) 기반 도박 게임 ‘트론벳(TRONbet)’이 대표적이다. 이들 게임은 월간 최소 7천만 원에서 최대 3억 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는 게 해시드 측 분석이다. 김서준 대표는 “(블록체인 게임이) 하나의 산업이 되려면, 서비스로 돈 버는 회사들이 나와야 한다. 처음으로 블록체인 분야에서 거래소가 아닌 주체가 적게나마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건 상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럼 재미 측면에서 블록체인 게임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대표적인 블록체인 게임 성공 사례로 꼽히는 ‘크립토키티’는 ‘대체불가형 토큰(NFT, non fungible token)’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고양이 캐릭터) 수집 게임이다. 크립토키티와 그 이후 나온 디지털 자산 수집 게임들은, 고유한 캐릭터를 수집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해 이를 사고파는 것 이상의 재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 다이스와 트론벳 등 게임은 게임에 참여한 대가로 확률에 따라 암호화폐를 얻어가는 도박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김 대표는 "게임이라고 하기엔 아직까지 너무 단순한 게임들이 이더리움과 이오스 등 플랫폼 블록체인에서 일간 활성 사용자 수가 가장 많다는 점에서 오히려 희망을 봤다. 제대로 된 서비스,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오기만 하면 기꺼이 이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해시드랩스는 암호화폐 투자 경험자와 기존 게임 헤비 이용자들을 블록체인 게임의 최우선 타깃으로 보고 있다. 김서준 대표는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이용자들은 토큰 이코노미 구성 핵심 요소인 커뮤니티와 토큰, 코인 등 개념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길드', '게임머니' 등 유사 개념이 게임 세계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플레이 중 획득하는 (아이템?캐릭터 등) 디지털 자산이 이미 게임 바깥 현실 세계에서 사고 팔리며 높은 가치를 지닌다. 사람들은 이미 게임을 즐기려는 목적뿐 아니라 생산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여전히 많다. 웹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 비해 매끄럽지 않은 사용자경험(UX)이 대표적이다. 게임에서 사용할 토큰을 구입하려면 암호화폐와 암호화폐 지갑 주소가 필요한데, 신규 투자자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또한 블록체인 작동 원리에 낯선 이들에겐 심리적 장벽이 될 수 있다.
해시드랩스는 밀레니얼 세대라면 이런 장벽이 별 문제가 안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세계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고래' 계정(대량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계정) 가운데 20~30%가 밀레니얼 세대라는 통계가 있다. 10대, 20대가 세계적 거래소들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암호화폐의) 가격이 낮고,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지 않을 때부터 이미 '디지털 자산으로 돈을 벌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뛰어들었다. 아이티(IT) 기술에 대한 친숙도도 기성세대에 비해 높다. 글을 모르는 두 살짜리 아이들도 아이패드를 열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틀어 보지 않나. 아직까지 (블록체인 게임 댑들의) 사용자경험(UX)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통해 뭔가 재밌는 걸 경험하거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점만 명확하다면, 밀레니얼들에겐 큰 장벽이 아닐 것이다."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ren@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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