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운영기술과 시너지 효과 기대 불구
불평등 계약에 하청기지 전락 우려 많아
독수리 5형제, 케로로, 건담, 드래곤 볼, 괴혼….
일본의 킬러콘텐츠들이 한국 온라인 게임시장에 무더기 상륙했다. 반다이, 닌텐도, 세가 같은 게임업체들뿐만 아니라 〈개구리 왕눈이〉 〈이상한 나라의 폴〉 〈독수리 5형제〉 등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다츠노코 프로덕션까지 나섰다. 게임콘텐츠 부재에 허덕이던 국내 게임개발사들에겐 호재이다. 일부에서는 일본산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과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한국 온라인 게임산업이 애니메이션 산업처럼 일본의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국내 게임업계는 콘텐츠를 온라인게임에 녹여내는 기술력과 온라인게임 운영노하우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한국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반다이의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 온라인’이나 코나미의 ‘두근두근 메모리얼 온라인’ 등 일본 업체들이 직접 생산, 운영한 온라인게임은 일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일본 게임업체들도 한국에서 배워야 할 기술분야가 분명히 있다”며 “특히 게이머들의 심리를 파악해 모집·관리하는 노하우나 콘텐츠를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에 맞게 조율하는 능력은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게임 콘텐츠와 국내 게임 운영기술이 결합해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사례도 있다. 일본 반다이의 캐릭터인 ‘케로로’를 주제로 한 구름인터렉티브의 ‘케로로 온라인’같은 경우이다. 구름인터렉티브는 케로로의 인지도를 활용해 국외판권까지 누리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반다이의 캐릭터인 ‘건담’으로 ’에스디 건담 캡슐 파이터 온라인’을 만든 소프트맥스도 국수주의적인 시각을 경계한다. 소프트맥스 관계자는 “일본 게임업체와 수직적인 관계에서 게임개발을 하는 게 아니라 공동사업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미국 개발업체 등을 통해 게임을 만드는 상황에서 일본업체들의 진출을 경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업계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다 낭패를 본 사례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일본 대형 콘텐츠업체와 한국 게임개발사가 동등하게 계약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제이씨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세가와 계약을 맺어 지난 2004년 ‘쉔무 온라인’이라는 작품을 개발하려고 회사의 물적, 인적자원을 총동원했다가 이듬해 상반기 갑자기 계약이 깨지면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세가가 제이씨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게임 개발노하우만을 노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세가에서) 게임 완성도를 문제삼았지만 콘솔 게임 개발과 온라인게임 개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콘텐츠 업체들과의 공동사업에서 국내 업체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준비부족 탓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게임개발사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과의 계약을 할 때 마땅히 상의할 데가 없었다”며 “흔한 법률자문조차도 전문가그룹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임원재 사무국장은 “현재 국내 게임산업은 일본의 하청 생산기지가 되느냐 아니면 독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정통부와 문광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게임산업 지원 업무를 통합하고 중장기적인 발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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