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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6 18:39 수정 : 2006.04.27 11:15

다음 아고라 페이지.

“이 사람을 처벌해 달라” ‘민원’ 해결 요구하며
상대방 사진·이름·전화·주민번호 공개…인권침해 ‘심각’

누리꾼 3000만명의 인터넷강국 한국에서 인터넷은 ‘만능 해결사’다.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하고, 누리꾼의 여론은 주요한 ‘이슈’가 된다. 또 ‘고발성’ 글을 통해 여론을 조직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부터 ‘꼭짓점춤’이 월드컵 춤으로 부각된 것에 이르기까지 누리꾼의 ‘입김’이 현실계에 반영되는 사안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포털사이트도 누리꾼 ‘고발’란을 만들어 누리꾼의 열화와 같은 요구를 담아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토론방인 아고라에 ‘네티즌청원’ 외에 ‘항의합니다’ ‘같이해봐요’ ‘바꿔주세요’ ‘도와주세요’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다음과 ‘공감톡’ ‘엔터톡’ 등을 서비스하고 있는 네이트가 대표적이다.

인터넷에 고발성 글이 많이 올라오는 이유는 그만큼 인터넷의 ‘파급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디어다음 아고라 담당자는 “사회적 거대 담론을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서비스가 시작됐지만 작년부터 개인적 민원 처리를 요구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며 “사회가 ‘가진 자’을 위한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못가진’ 사람이 문제해결 통로로 인터넷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처럼 무분별하게 올려진 ‘고발성’ 글은 ‘인권 및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글 게시자가 올린 글이 누리꾼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익명’이 ‘실명’으로 바뀌고, 게시되지 않은 신상정보가 노출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개똥녀’ 사건의 경우 애초 몰지각한 시민을 고발하는 취지에서 시작됐으나 화제가 되면서 실명이 공개된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도 이런 종류의 글은 포털사이트 곳곳에 노출돼 역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 인터넷 고발 ‘인권침해’ 위험수위

“저는 4월21일 자살한 화순전남대학교병원 김아무개 간호사의 큰언니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는 아이가 죽기 하루 전날 수술실 미팅 도중 심한 야단을 듣고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힘없는 소시민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blog.empas.com/drumcide)


“3월27일 모 이사업체와 4월16일 이사계약을 했는데, 이사 당일 직원이 와서는 ‘다른 업체를 구해보라’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이사업체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인데도 박아무개 부장은 구두계약이어서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보상은 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저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해주세요.”(다음 아고라 ‘네티즌 청원’)

“진해 군항제 기간동안 ‘진시황 유물대전, 병마용갱’ 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사장이 장사가 안돼 돈을 못주겠다고 합니다. 이 사장은 작년에도 진해와 대구에서 같은 공연을 하고 아르바이트 비용을 떼먹었던 전력이 있습니다. 신원조회 해보니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200만원 벌금 안내 지명수배돼 있었습니다. 회사명과 사장이름 공개 원하시면 언제든지 공개할 의사가 있습니다.”(다음 아고라 ‘네티즌 청원’)

인터넷 고발의 ‘인권 침해’가 도를 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사람(업체)를 고발한다”며 올린 ‘민원성 글’을 통해서다. “억울함을 풀어달라” “글을 널리 유포해 달라”는 이런 유형의 글에는 고발대상(업체)의 사진과 연락처, 주민번호 등 신상정보까지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제도적 피해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며, 누리꾼의 ‘집중 포화’를 유도한다. 사연은 모신용카드회사 모 팀장의 ‘피를 말리는’ 원금 상환 압박, “변심한 애인을 응징해 달라”, “억울한 죽음을 추모해 달라” 등 갖가지다. 대부분 법적·제도적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에 놓였을 때, 누리꾼의 ‘사이버 응징’을 통해 한풀이를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글이다.

사연 속에 상대방의 신원이 공개되지 않아도 누리꾼들이 댓글로 ‘익명’을 ‘실명’으로 밝혀내기도 한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곤욕을 치른 ‘개똥녀’처럼 신원이 공개되면 당사자는 ‘파렴치범’으로 몰려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한 이슈화가 늘어나면서 인터넷의 파급력을 경험한 누리꾼은 점점 인터넷을 ‘여론화’의 도구로 이용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김영홍 국장은 “지난 6~7년간 인터넷의 위력을 누리꾼이 직접 학습했기 때문에 본인의 억울함을 사회적(인터넷)으로 제기해 풀어보려고 하는 욕구가 충분히 가능한 시스템이 됐다”며 “사적인 것을 공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이 많은데, 객관적인 시각과 개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아무개양 자살 사건, ㄱ중 체육교사 성폭행 등…상대방 ‘마녀사냥’ 희생

‘고발성 민원’은 작년부터 크게 늘어났다. 특히 각 포털사이트들이 ‘네티즌 청원’(다음 아고라), ‘톡톡’(네이트) 등의 콘텐츠를 통해 누리꾼의 사연을 올리도록 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사이버폭력도 함께 늘고 있는 추세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자체 모니터링 및 신고된 사이버폭력 심의건수는 1월 4304건, 2월 4551건에서 3월 7115건으로 갈수록 크게 늘고 있다.

하루 수백만명이 모이는 포털사이트에서 ‘민원성 사연’은 쉽게 회자된다. ‘누굴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관음적 성향이 덧씌워진 사건은 확대해석·재가공되어 퍼진다. ‘민원성 글’을 본 누리꾼들은 글을 올린 당사자의 글을 전적으로 믿고 악성 댓글을 올리고 무차별적인 사이버폭력을 감행한다.

네이트 톡톡 페이지.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5월 서아무개양 자살 사건과 올 3월 ㄱ중 체육교사의 기간제 교사 성폭행, 지난해 10월 대구의 ㅌ어린이집 원장의 사촌동생 폭행, 밀양 고등학생 성폭행, 부산 ㄱ중 살해사건 등이다.

서양은 교제중인 대학생과 깊은 관계를 맺었으나 관계가 깨어지자 자살했다. 사연은 서양의 어머니라고 밝힌 이가 한 포털사이트에 올린 ‘고발’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급속히 확산됐다. 사연을 올린 이는 “우리 딸의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어달라”고 했고, 이 과정에서 교제했던 상대의 사진과 이름, 학교 등을 공개했다. 교제 당사자들간의 ‘내밀하고 감정적인 관계’가 제3자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재단되어었다. 이 과정에서 자살한 연인의 상대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3월에는 ㄱ중 체육교사가 동료 기간제 여교사를 술자리에서 성폭행했다는 사연이 올라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글은 피해 여교사가 법률 자문을 받기 위해 한 법률 사이트에 익명으로 작성해 올린 글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글이 인터넷에서 옮겨지면서 익명으로 처리했던 관련자들의 실명이 공개됐고, 내용이 덧붙여지거나 과장돼 확대·재생산됐다. 누리꾼들은 성폭행 교사의 사진과 블로그를 찾아내 성폭행 교사뿐아니라 당시 함께 있던 교사들의 사진과 실명, 미니홈피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거론된 교사들은 법적 처벌말고도 누리꾼의 무분별한 ‘퍼나르기’와 ‘마녀사냥’식 비판에 고통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대구의 ㅌ어린이집 ㄱ원장의 사촌동생이라고 밝힌 이는 사촌언니인 원장이 휴대폰 등을 못쓰게하고 폭행을 하며 ‘식모살이’를 시켰다는 ‘고발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려 문제가 됐다. 원장의 실명, 어린이집의 이름이 공개된 까닭에 어린이집은 한동안 언론과 누리꾼의 집중공격 대상이 되었다.

김영홍 국장은 “이슈의 증폭, 정보의 공유와 축적이 인터넷 상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풀어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다만, 타인에 대한 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포털의 책임은 없나?

‘고발 글’을 올리는 주체는 누리꾼이기 때문에 포털사이트에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 등의 법적 제재를 받을 경우 그 피해를 해당 사이트를 신뢰하고 이용하는 누리꾼이 입게 된다는 점에서 포털은 페이지뷰 확대를 위한 코너 마련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회원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행법상 원래의 글과 달리 네티즌들이 글을 퍼나르면서 내용을 추가해 사건을 왜곡하는 경우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한 팀장은 “포털에서 활동하는 누리꾼들로 인해 수익을 얻고, 사회적 문제를 이슈화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도의적 책임외에 누리꾼 보호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며 “자체적으로 자정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많이 부족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누리꾼의 게시물을 모니터링하고 인권침해나 명예훼손이 우려되는 글은 누리꾼에게 주의조처를 주거나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김영홍 정보인권국장도 “사이버상 명예훼손, 허위사실·개인정보 유포는 처벌 대상이지만 포털사이트에서 운영지침을 갖고 적절히 개입해 안내·고지할 필요가 있다”며 “누리꾼도 일방적 폭로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포털들이 이런 문제들에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디어다음은 ‘권리침해신고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아고라 담당자는 “사회적 거대 담론을 논의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서비스가 시작됐지만 작년부터 개인성 민원 처리를 요구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며 “개인의 신상이 노출되었거나 신원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글은 삭제하거나 주의조치를 주고 있지만, 워낙 전파속도가 빨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포털사이트 한 관계자는 “명예훼손·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는 글에 대해서는 게시자에게 주의를 주거나 삭제하는 등의 정화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글 자체가 많아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문제의 글을 삭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방문자와 페이지뷰 확대의 목적으로 포털들이 앞다퉈 누리꾼 고발코너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에 걸맞은 책임과 관리는 뒷전인 상태에서 인터넷 공간은 돌과 옥이 함께 뒤섞여 불타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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