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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30 18:21 수정 : 2018.12.07 17:59

고물이 아니었다? 보물이었다!
라면박스에서 찾아낸 세계 유일본 법령집, 지정조격(至正條格)

1994년 경주 양동마을 경주 손씨 종가. 종손 손동만씨는 별채를 정리하다 대나무 종이에 쓰인 책 한권을 발견한다. 한자로 어지럽게 쓰여서 너덜너덜 낡은 모양새에 따로 둬야겠다 싶어 라면박스 안에 넣어놨다.

2003년 경주 양동마을 경주 손씨 종가에서 보관하던 고문서들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2003년 5월. “잠깐만요! 저 라면박스는 뭐죠?” 다급한 목소리가 종가에 울려퍼졌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 원나라 법전 ‘지정조격(至正條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무려 657년 만이다.

경주 손씨가 경주시 양동면 양동 민속마을에 대를 이어 살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부터. 종가 별채 서백당은 대대로 전해오는 귀중 자료로 가득한 곳이다. 중요민속자료 23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만큼 이를 겨냥한 도난사건도 잦았다. 이에 2003년, 경주 손씨 종가는 보관하고 있던 고문서들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하기로 한다. 총 131종, 점수로는 1158점이나 된다. 문서들을 이관받기 위해 장서각 연구원들이 종가를 방문한 바로 그날, 비로소 지정조격이 600년 긴 잠을 깬 것이다.

왕실자료부터 민간 고문서까지... 학술 한류 열풍의 근원

낡은 책 한권이 1364년에 발간된 원나라 법전이자, 중국에도 전하지 않은 유일본임을 밝혀낸 곳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다. 왕실도서와 고문서를 관리하는 학술연구 기관 장서각은 오랜 시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자양분을 만들어왔다. 묻혀 있던 활자에 숨을 불어넣어 학술 자료가 되게 하고 세계적인 콘텐츠로 학술 한류 열풍을 불러왔다. 왜곡된 역사도 바로잡는다. 『동의보감』과 『조선왕조의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고 국가 지정 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이 되기까지 그 가치를 재조사하고 연구한 장서각의 역할이 컸다.

‘문화 부흥으로 국력신장’…고종의 꿈을 살려내다

장서각의 역사는 1908년, 고종이 흩어진 왕실도서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 황실도서관 건립을 계획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만권이 넘는 도서목록까지 만들었지만 고종의 꿈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무산되고 만다. 1918년 이왕직 도서고에 ‘장서각’ 현판을 걸면서 비로소 그 꿈이 계승됐다. 장서각의 역사는 이 현판과 함께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시작됐다.

흥미로운 점은 황실도서관이 서적 보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예로부터 문헌은 지식이 쌓이고 담론이 오가며 왕이 정책을 결정하는 통로였다. 이에 고종이 스러져가는 왕조의 끝자락에서 황실도서관 건립을 추진한 것도 문화 부흥을 통해 국운 회복을 모색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 마지막 출발이 역사의 교훈과 지혜가 살아 숨 쉬는 장서각이었던 셈이다. 장서각은 해방 이후 격동의 시기를 지나 1981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관됐다. 이후 줄곧 수백년 역사의 숨결이 담긴 기록유산의 보존, 연구, 대중화, 정보화를 통해 소통의 문을 열어 새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1911년 창경궁 이왕직 도서고(왼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위치한 현 장서각

장서각이 대한민국 기록유산 보고이자 기록문화의 정수로 거듭난 배경에는 체계적인 보존관리, 철저한 자료조사, 다양한 연구사업이 있었다. 전문 사서를 배치해 기초 서지 조사와 목록집 간행, 전체 자료에 대한 마이크로필름 촬영 등 한국학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써온 것이 그 기반이 되었다. 왕실도서의 연구 기능도 강화하여 각종 자료집, 해제집, 연구총서 등을 꾸준히 출간해 학계와 일반에 전하고 있다. 장서각이 고문서를 발굴해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연구서를 발간할 때마다 학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주목한다.

수집과 보존을 통해 한국학 인문가치의 세계화에 기여

전국에 산재한 민간 고문서를 발굴, 수집, 복원, 보존하는 일은 장서각의 주요사업 중 하나다. 자칫 멸실 위기에 놓인 민간 고문헌을 지켰고, 문중이나 개인이 소장한 고전적의 기증·기탁 제도를 1990년대부터 활성화해 국가기록유산 집적에 기여했다. 그동안 기증받은 약 5만점의 고전적들은 사대부를 비롯한 민간 기층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장서각은 또 고전적의 보존과 수집에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연구를 거쳐 명가의 고문서 등을 간행해 한국학을 더 깊고 넓게 비추는 창이 되고 있다. 한국학의 인문학적 가치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장서각 자료의 국제 공동연구, 영문 번역 출간사업, 장서각 펠로 초청 및 한문 아카데미 추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사업 등에 힘쓰고 있다. 특히 장서각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고문헌의 안전한 보존과 관리다. 2011년 신축 건물을 완공하고 첨단설비를 마련해 고전적을 최적의 상태로 보존하고 있으며 전문 인력 또한 늘렸다.

특별전, 아카데미 등 대중과 소통에도 적극적

조선왕조의 유서 깊은 고문헌을 소장한 장서각은 학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세계 수준의 기록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장서각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현재 개원 40주년 기념 행사 ‘봉모(奉謨)-오백년 조선왕조의 지혜’ 특별전이 12월까지 진행되고 있다. 영조가 손자인 정조에게 가르친 통치 이념과 훈육 내용을 담은 서책, 자신이 내린 시제를 이해 못한 성균관 유생들을 꾸짖는 정조의 별유문 등 흥미로운 자료들이 가득하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임금에게 억울한 마음을 전한 상언 등은 지금의 국민청원제를 연상케 한다. 특별전 외에 상설전도 병행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장서각 전시회가 특별한 이유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는 인문학 특강 ‘장서각 아카데미’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통해 실제 고문헌을 접하고, 전문가가 진행하는 동명의 강의를 통해서 더 깊은 의미를 배울 수 있다. 고문헌에 담긴 삶의 철학과 실천 방법을 재미있게 배우며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한눈에 보는 혜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인기가 높다.

이외에도 정보화 사업을 새롭게 편재해 고전적의 현대화 작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원석 같은 기록유산들이 한국학이라는 보석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곳, 장서각을 방문해 600년의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문화강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서각 공식 누리집(http://jsg.aks.ac.kr)

기획·제작 콘텐츠랩부

이 콘텐츠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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