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인체다 (Ⅲ) Human body is The stock market (Ⅲ)
Digital c-print with painting on canvas 95×190Cm 2008 |
‘리빙 - 더 스톡마켓’ 조상 초대전…12일까지 금호미술관
자연과 문명 축소판 증시, 그래프 통해 현상-본질 재해석
무대영상 연출 등으로 세간에 알려진 중견 작가 조상(50·서울예대 디지털아트학부 교수) 씨가 'Living - The Stock Market' 이란 주제로 9월12일까지 초대전을 열고 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뉴욕대(NYU)에서 페인팅과 미디어아트를 전공한 조 교수는 지난 2002년 서울디지털미디어시티(DMC) 환경조형물 계획과 설계를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은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자연 풍경 페인팅과 증시 그래픽의 결합이고, 두 번째는 디지털 이미지 위에 페인팅과 증시 그래프를 결합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영상 이미지 설치작품과 증시 그래프의 결합이다.
금호미술관의 박강자 관장은 “작가는 노자의 사상과 같은 동양 철학과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같은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접목시켜 페인팅, 사진, 영상설치에 이를 다양한 장르를 선보여 왔다”며, “이번 전시는 뉴욕 나스닥 미디어보드의 현란한 이미지들, 증시 그래프를 이용한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양한 흐름으로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어떤 측면에서 그는 단순 작가의 차원을 넘어 정신적 직관을 중심에 두는 동양적 사고 원형과 현대 사회의 과학적 성과를 집대성한 물리학의 영역을 예술적 매개로 재구성한 종합예술가 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미학세계의 원형은 동양적이고 신비적이다. 그것도 노자가 말하는 인위적 법칙을 제거한 자연세계다. 그리고 사물의 시비, 선악, 빈부, 화복의 경계가 없고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되는 무위자연이 올바른 세상 이치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번 작품의 동기는 그의 유학 시절, 타임스퀘어 앞 나스닥 전광판을 우연히 엿보면서 시작된다. 그런 가운데 현대 사회의 군상을 담은 뉴욕 지역은 그에게 분명 새로운 예술적 감흥을 만들어낸 것이 틀림없다. 당시 기호학과 물리학에 기반한 추상화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나스닥 전광판은 묘한 감정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나스닥 전광판에 비친 주가 그래프들은 필시 그에게 세계 자본이 밀집한 또 하나의 공간으로 보였다. 결국 증시는 무위자연의 세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의 시선으로 재구성됐다. 그의 증시에 대한 생각은 온통 자연법칙이나 인간 군상과 극적인 일치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증시는 물결이다’, ‘증시는 폭포다’ ‘증시는 인체다’, ‘증시는 암벽이다’ 등 그의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통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증시 현장을 거대한 자연 세계 속에 그려놓았다. 그에게 증시는 자본의 촉수다. 그리고 모든 사건들이 통제되는 심리의 핵이다. 또한 우리 삶의 존재양식을 입체적으로 반영한 뒤, 즉각적으로 토해내는 변덕스러운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증시를 통해 세상의 불확실성을 입증한 현대물리학계의 거장인 하이젠베르크의 확신을 만난 듯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대물리학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법칙을 이탈해 주관적 영역으로 옮겨가며, 인위적 가공을 배제한 노자의 주관적 접근으로 모아진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공방이기도 했던 뉴욕의 한 복판, 그것도 나스닥 전광판을 통해 이런 자기모순적 일치를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내 그 동안 몰입해왔던 기호학과 물리학에서 해법을 찾아내고 추상적인 언어로 동양적 원형에 입각해 증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한다. “미술은 세상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전 시대 흐름을 인간 군상들의 삶이 녹아 있는 증시 그래프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선지 그의 화폭 속에는 주가 변곡점이 폭포수의 시작, 태산의 최정상, 여체의 유두로 표현되고 있다. 어쩌면 그의 미술 세계는 이처럼 물리적 대상이기 보다는 2차원의 표면에 3차원적 무의식의 원형을 결합시킨 하나의 아이디어 또는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그의 작품은 개념주의 미술에 가깝다. 하지만, 더 나아가 동양화를 조형 언어로 바꾸어 주가 그래프와 접목시키면서 언어와 미술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해버렸다. 게다가 인간 군상의 감정과 마음의 상태가 보였고, 자연법칙에 입각한 정신적 질서의 내재화를 엿보았으며, 무의식과 본성을 탐구하는 초현실주의의 면모를 읽었다. 말 그대로 모더니즘의 전형들이 조화롭게 채색된 형국이다. “이번 그림을 통해 동양화가 조형언어로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구적 어법에 의존하지 않고 저만의 새로운 표현법을 찾았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평범하기만 했던 주가 그래프는 그의 상상력을 통해 동양적 화풍과 결합하면서 험준한 태백산맥으로 탈바꿈하고 만물상으로 뒤덮인 금강산으로 바뀌며, 수많은 변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인체의 원형으로 변신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고즈넉한 산책길을 따라 미술관을 찾아 증시 그래프에 등장하는 각종 주기와 흐름을 우리 삶과 연결하는 작가의 독특한 해석과 정신적 직관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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