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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19:22 수정 : 2019.12.01 14:39

사진 신지민 기자

[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15. 겨울 제철음식과 와인

사진 신지민 기자

굴, 과메기, 방어회… 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요즘 제철을 맞은 이 음식들과 와인을 마셔보면 어떨까. 문제는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친구들의 반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와인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그냥 소주를 마시자는 거다. 와인파에게 포기란 없는 법. 난이도에 따라 차례로 공략했다.

1단계, 굴이다. 사실 ‘굴과 와인’에는 수학 공식마냥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진 조합이 있다. 바로 ‘굴과 샤블리’다.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소개된 조합인 만큼 검증된 공식이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어서 친구들을 설득하는 데 어렵진 않았다.

샤블리는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와인 산지에서 나온다. 머나먼 과거 바다 밑바닥이었던 이 지역은 땅속에 해양 생물 퇴적물이 많아 석회질이 풍부해 토양에 칼슘 함량이 높고, 미네랄 성분이 강하게 나타난다. 포도밭을 파보면 지금도 화석화된 굴 껍데기가 가득하다고 한다.

사실 샤블리만 마셔보면 조금 심심하고 밋밋한 느낌이 난다. 다른 와인에서 느껴지는 오크 풍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상큼함도 덜한 편이다. 대신 쇠맛이나 돌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샤블리를 굴과 함께 마시면, 조금 전에 마신 와인이 이 와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맛이 느껴진다. 바다의 풍미를 품고 있는 샤블리가 굴 요리를 만나면 그 맛이 폭발하는 것이다.

2단계, 방어회다. 역시나 “회는 무조건 소주”라는 소주파의 반대에 부딪혔다. 소주를 마시려는 친구들에게 “일단 한번 마셔봐”라며 샴페인을 꺼냈다. 방어는 다른 생선보다도 유독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엔 샴페인, 크레망, 카바 같은 스파클링 와인이 ‘치트키’다. 기름기를 씻어주면서 느끼함을 잡아주고 입안을 상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방어회와 샴페인을 맛본 소주파들도 바로 “소주를 버리고 스파클링으로 갈아타야겠다”고 할 정도다.

3단계, 과메기다. 과메기에 와인을 마시자고 하니, 소주파들은 기함했다. 과메기에 와인을 먹을 바에야 차라리 먹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조차 과메기에 어울리는 와인이 있을지 궁리를 해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과메기 같은 생선에 괜히 와인을 마셨다가 비린 맛이 부각되면 어쩐담. 고민이 될수록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엔 스파클링이나 산미 있는 화이트 와인이 좋고, 생선의 비린내를 피하고 싶다면 오크 숙성한 화이트 와인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소비뇽블랑을 선택했다. 김 위에 미역을 올리고, 초장에 찍은 과메기를 올린 뒤, 쪽파와 마늘까지 올려 돌돌 만다. 이 다음엔 산미가 쨍쨍한 소비뇽블랑 한 잔! 기름기 가득한 쫀득쫀득한 과메기에 소비뇽블랑의 상큼한 신맛이 어우려져 가히 최고의 조합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음식들은 술꾼들을 유혹할 것이다. 제철 음식과 어울리는 소주나 맥주 같은 쉬운 길도 있겠지만 와인과 조합해보면 어떨까. 어려운 도전 이후 마시는 와인 한 잔은 더욱 맛있을 테니까.

문화팀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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