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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3 10:24 수정 : 2018.11.03 13:31

[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26) 나의 소망

공유와 자유, 환대! 이 셋은 유목 공동체가 가진 삶의 가치이다. 키르기스 유목민인 타르카이가 지난 9월 말타기를 잘 못해서 낙담해 있는 중앙아시아 연구자인 윤성제씨를 위로하고 있다. 공원국 제공
친구여. 나는 마천루 밑으로 태양이 지나는 도시를 떠나, 해 없는 겨울 숲을 지나 봄이 갓 피어나는 때 이 고원으로 왔다네. 아침저녁으로 마천루 아래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기보다, 우물 바닥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개구리 같은 처량한 모욕감을 주는 일이었네. 여기에 와서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네. 저 산은 마천루보다 스무 배나 높지만, 태양은 언제나 산 위로만 다녔네. 지평선이 보이는 곳에 와서야 알았네. 태양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었음을.

친구여.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사방이 산으로 막힌 곳에서 태어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친 집들이 모인 도시를 떠나, 겨울바람이 마음대로 통과하는 두껍지만 엉성한 숲의 벽을 지나고, 마지막으로 남쪽으로 버티고 선 얼음 병풍만 빼면 벽이라고는 없는 이 고원까지 왔네. 이제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두르지 않고는 두 발로는 더 오를 수가 없는 곳이지. 어쩌다 지구의 축이 기울어졌는지 몰라도, 여기도 사계절이 있다네.

키르기스 여인인 즐드스(오른쪽)와 남편 오슈르가 지난 6월 자신들의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의 아들 바이 테미르는 내년에 장가든다. 공원국 제공
봄이 찾아와 파릇한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던 지난 4월 키르기스 강가에서 물을 긷고 있다. 공원국 제공
하늘에 묻고픈 질문들

운 좋게 익숙한 시간과 공간에서 멀찍이 떨어졌기에 지금껏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조금 보았네. 하지만 보고 들은 것은 바다에 뜬 좁쌀 하나보다 적고, 질문만 한 보따리 늘었네. 시인 굴원이 ‘하늘에게 던진 질문’(天門)을 보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을 하늘 대신 자네에게 물어보려네. 친구, 혹시 자네는 알지 모르지. 코미 유목민들이 이야기했네. 하늘을 나는 순록이 뿔에 해를 싣고 정오까지 하늘 꼭대기로 옮긴다네. 정오가 되면 곰이 따라붙어 순록을 깨물지. 그러면 해를 머리에 인 순록은 떨어진다고 하네.

나는 어린이처럼 물어보고 싶네. 하늘의 순록은 얼마나 크기에 해를 뿔에 싣고 다닐까? 곰은 왜 매일 정오에야 순록을 따라잡을까? 따라잡혀 떨어진 사슴은 어디서 쉬기에 내일 또 오르나? 어쩌면 그 사슴의 새끼일까? 그런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질문은 그거였어. “겨울에는 곰이 겨울잠을 자지 않아요?”

그리고 타이가 사람들은 늑대가 저승에서 순록과 화해한다고 생각하더군. 저승에서 늑대가 배고플 땐 어떻게 하나?

나의 질문은 끝이 없네. 들은 이야기마다 신기했으니까. 이제부터 질문만 던져보려 하네.

태고부터 죽은 양이 다 별이 된다면 하늘 초원이 가득 차지 않을까? 은하수가 마르지는 않겠지? 양은 겁쟁이인데 어떻게 어둠을 이기고 돌아다닐까?

미트라는 태양신인데 왜 얼음 궁전에 살까? 저 궁전은 무슨 얼음으로 지었길래 태양 앞에서도 녹지 않지? 얼음 봉우리는 뾰족한데 일곱 백마는 어디에 묶어 두었을까? 미트라의 전차가 하늘에서 내릴 때 미끄러져 굴러떨어지지 않을까? 그 약속의 주(主)는 내가 한 약속을 다 알고 있을까? 하다하다 못 지키는 약속도 안 지키는 것과 같을까?

중려(重黎)는 무엇 때문에 하늘과 땅을 나누었고, 왜 수시로 번개로 다시 이을까? 천지를 잇는 밧줄은 어디로 떨어졌길래 아직 본 사람이 없는가? 오늘날도 그 밧줄이 있으면 매달리는 사람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투르파르켈의 천마를 탄 사람은 물에 잠겼을까, 헤엄쳐서 달아났을까? 유목민이라면 수영을 못할 테니 아마 벗어나지 못했겠지. 그 사람도 별이 되었을까?

그리고 초원과 타이가에서 처음 역사가 벌어진 순간들을 상상하면 그 장면을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네.

처음 어떤 인간이 어디다 오줌을 눴기에 순록이 따라다녔을까? 첫 눈맞춤의 순간 누가 먼저 눈을 깜빡였을까? 둘 중 누가 먼저 입을 열었을까? 그때 늑대는 얼마만치 먼 거리에서 둘을 지켜봤을까? 곰은 겨울잠을 자고 있었을까? 검은 담비는 다가올 미래를 짐작했을까?

처음 말 위에 오른 사람은 몇번이나 떨어졌을까? 오른 뒤에는 몇번 뼈가 부러졌을까? 좋은 처녀를 만나 장가를 갔을까, 불구가 되고 말았을까? 혹은 그 사람이 여자가 아니었을까? 첫 고삐를 채운 이와 나무 안장을 올린 이는 무슨 상을 받았을까? 사슴뿔을 처음 다듬은 이, 숫양을 처음 거세한 이, 양 무리에 처음 염소를 넣은 이, 야크를 산 아래로 데려온 이들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 그들은 처음 으쓱했을까 머쓱했을까? 처음 모전(毛氈)을 만든 이는 여인일까 남정네일까?

초원과 숲에서 사물의 조화는 기계적인 연상의 범위를 넘어선다네.

풀은 푸르고 물은 무색인데 젖은 왜 흰색인가? 왜 어떤 때는 응유가 되고 어떤 때는 술이 될까? 처음 마유주를 얻은 이는 누구와 잔을 나누었을까? 혹여 둘이 마셨다면 다 취했을까? 염소는 양보다 작은데 젖은 왜 더 많을까? 양은 염소보다 큰데 왜 따라다닐까? 염소털은 곧은데 양털은 왜 꼬였을까? 무게는 비슷한데 왜 소발굽은 갈라지고 말발굽은 통굽인가? 말은 그냥 소화시키는데 소는 왜 되새길까? 당나귀는 말보다 작은데 목소리는 왜 더 클까? 사슴은 멀리 보는데 왜 소리는 못 낼까?

파미르 초원의 여름 목장이 닫혔다. 사리모골 마을로 돌아온 유목민이 나귀에 물을 길어 나르고 있다. 공원국 제공
키르기스는 벌써 겨울에 접어들었다. 내년 봄까지 초원에 눈이 쌓이고, 그 눈은 여름철 초원의 풀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사진은 지난 4월 눈이 녹아 봄을 기다리는 사리모골 마을의 모습. 공원국 제공
역설 덩어리의 역사

그러나 인간사야말로 이해할 수 없네. 아예 오리무중이지.

처음 곡물 없는 곳으로 들어간 목동은 어떤 신분이었을까? 도망자였을까, 모험가였을까, 전사였을까, 족장이었을까?

다레이오스는 병법을 안다면서 왜 외줄다리를 건넜을까? 말 위에서 활로 제국을 얻었다는 이들이 초원에서는 왜 그렇게 유약했을까? 그들 또한 초원에서 온 사람들 아니었나?

맹강녀(孟姜女)가 열흘 울 동안 진시황은 어디에 있었을까? 호(胡)를 미워하면서 아들 이름은 왜 호로 지었는가? 두만(頭曼)은 왜 아들 묵특(冒頓)을 죽이려다가 돌연 군대를 주었을까? 아버지를 죽인 묵특은 어쩌다 적수 유방은 살려두었을까? 초원에서 말은 귀하고 땅은 흔한데 왜 땅을 아꼈을까?

이능(李陵)은 무장인데 어찌 시를 그리 잘 짓고, 소무(蘇武)의 젖 안 나는 숫양은 어찌 그리 오래 살았을까? 유철(鍮鐵)은 한혈마(汗血馬)를 얻고도 왜 이기지 못했고, 살인을 즐기면서도 어찌 천수를 누렸을까?

고원 떠나 돌아온 내 사는 곳
살길 찾아 바다 건넌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조차 않는구나

약한 것 가엾이 여기는 마음도
이방인 반기는 따뜻함도 잃었고
추위 속에서 자유 즐길 여유도
스스로 길 떠나는 법도 잊었네

내년 타이가로 또 유목 가려는 건
공유, 환대, 자유 찾고 싶어서라네
부디 산 것들이 산 채로 남아있길

아틸라는 말 위에서 유럽을 정복하고 어쩌다 신방에서 죽었고, 말과 한 몸이던 일릭 카간은 어찌하다 초원에서 한갓 당나라 장수 이정(李靖)에게 잡혔던가? 고선지는 왜 항복한 왕을 학대해서 배신을 불렀고, 술탄 산자르는 명군이라는데 어쩌다 거란의 패잔병에게 졌는가? 자무카는 의리가 있었지만 왜 제 친동생을 죽인 냉혈한에게 졌는가? 칭기즈칸은 늙어 죽었는데 지하로 소녀 40명은 왜 데려갔을까? 그녀들은 왜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했을까? 칭기즈칸은 잔인한데 왜 도리어 우구데이를 선택했는가? 우구데이는 온유했는데 어쩌다 오이라트 여인들을 강간하도록 했는가? 신풍(가미카제)은 왜 황해에서는 불지 않고 남해에서만 불었는가? 가잔은 알라에게 몸을 맡겼고 쿠빌라이는 아무 신도 택하지 않았는데, 왜 둘 다 교인들의 호평을 얻었는가? 티무르는 오스만을 이겼는데, 어찌하여 오스만이 더 오래갔는가? 바부르는 참외를 좋아하고 더위를 싫어하면서 왜 인도로 갔는가? 차르에게 항복한 카자흐는 어찌하여 나라를 이루고, 차르에게서 벗어난 토르구트는 어쩌다 사라졌는가?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기원전 5세기에 사용했던 사슴 모양의 말 가면. 알타이 산맥 근처의 파지리크에서 출토됐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공원국 제공
오래전 이야기를 들 것도 없네. 집단농장을 피해 중국으로 간 키르기스 친구들은 소수민족이 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이들은 고산에 고립되어 기갈에 시달리고 있지만, 남은 이들은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네. 의도와 결과는 이렇게 들어맞지 않는다네. 어쩌면 역설 덩어리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통째로 착각일지 모르지.

오늘날 알 수 없는 일은 더 많네. 이가 다 빠지고 폐가 망가져도 분진의 성분을 조사한다는 과학자가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잘 알지 못하고, 그런 먼지를 일으키며 돈을 벌면서 임대료조차 내지 않는 개발자의 속내는 절망적으로 알 수가 없네. 그냥 빛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절망감이 느껴지네. 유정을 뚫고는, 퇴각하듯이 폐설비를 버리고 간 사람들의 속내도 알지 못하네.

정작 오늘 이 땅으로 돌아오니 물어볼 것이 더 늘었네. 우리는 왜 새가 가는 길, 바람이 가는 길을 가지 못할까? 살길을 찾아 바다 건넌 사람에게 ‘난민’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네. 한자 단어 ‘난민’(難民)은 피난처를 찾아가는 사람들(refugee)이라는 의미를 감추고 있네. 그래서 그 이상한 이름이 종시 듣기 거북하네. 그런 이름마저 주기 어려운 곳에서 인간성을 계속 논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나를 넘어 ‘우리’를 이야기해보세. 도대체 우리가 뭘 안다는 말인가? 우리는 가진 것을 나누는 법을 잃었네. 철조망과 담장이 없으면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하지. 우리는 공동의 재산을 부수지 않는 법을 잊었네. 우리는 한푼의 편익과 이익을 위해 광장을 없애고, 총을 가볍게 들지.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을 반기는 마음을 잃었네. 우리는 약한 것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잃었네.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기에 우리 마음은 너무 좁은 것일까? 또 우리는 스스로 길을 떠나는 법을 잊었네. 추위 속에서 자유를 즐길 여유를 잃었네. 소유가 없으면 우리는 당장 공황에 빠져버리지. 결국 우리는 공유, 환대, 자유를 다 잃었네.

초기 기마 유목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인 기원후 5~6세기의 말안장. 일체형 안장이 출현하기 이전의 것으로 나무로 만들었으며, 알타이 산맥 근처의 투에크타 유적지에서 출토됐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공원국 제공

내년의 유목지 타지크 무르가브

그러나 다시 고요가 찾아오면, 나는 다시 누군가를 탓하는 내 마음을 탓하네. 나는 고원에 핀 백 가지 꽃 중 단 두 가지의 이름도 알지 못하네. 가을꽃과 여름꽃을 구분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지. 하늘하늘 지표를 잡고 있는 관목들의 뿌리 길이와 굵기를 알지 못하고, 그들의 수명이나 나이도 모르네. 타지크에서 갓 마을로 들어온 사람의 세간살이를 알지 못하고, 그들과 인사하는 법도 모르네. 눈 맞은 날 유르트 안에서 차를 건네는 할머니의 손 온기를 알지 못하고, 옛 목동 시절을 그리는 노인의 회한을 알지 못하네. 나를 위해 양을 잡아온 이에게 보답할 줄 모르고, 끌려오는 양에게 대속할 방법은 더 모르네. 월급 없이 러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의 속내를 알지 못하고, 고기가 되려 카자흐 국경을 넘는 말과, 가죽과 고기로 나뉘어 중국 국경을 넘는 당나귀의 마음을 알지 못하네. 그리고 바로 저 국경 너머 수용소에 있는, 몽골고원을 떠나 오아시스에 정착한 위구르 사람들의 고난을 알지 못하네. 이제 국경은 닫혔고 다시 들어갈 도리도 없다네. 그들의 소식을 들려줄 만한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네.

이제 와서 누굴 원망하겠나. 어리석게도 내 선택은 다시 떠나는 걸세. 내년 봄에는 저 남산 너머 타지크 무르가브로, 천산 너머 발하슈로, 알타이 넘어 타이가로 가려 하네. 자연도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지. 석탄은 분명 나무였을 텐데, 여기는 나무 한 그루 없지 않은가. 인간사야 말할 나위가 있겠나? 불과 70년 전 겨울에 여기 사람은 없었네. 그러나 이제 수천 명이 여기서 겨울을 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을 따라 내년에도 유목하려네.

친구여. 나는 바라네, 산 것들이 산 채로 남겨지길. 알아야 할 것들이 먼지 속에 잠겨 있지 않기를. 그리고 간절히 바라네. 나의 바람의 한 조각이 자네의 바람이 되고, 자네 바람의 한 부분이 내 몸과 맘의 일부가 되길.

※ 이번 회를 끝으로 ‘공원국의 유목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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