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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풍의 계절이 돌아왔다. 파미르고원의 목초에 갈색빛이 도는 등 벌써 가을색이 완연하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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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22) 정주사회와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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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풍의 계절이 돌아왔다. 파미르고원의 목초에 갈색빛이 도는 등 벌써 가을색이 완연하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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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한 치도 어김없이 돌아와 사리모골 뒷산 공유지에 풀이 누렇게 바랬다. 가족을 배웅하러 초원을 비운 사이, 물에 빠질 때 바람 어깨에 생긴 상처가 덧났다. 며칠 이 공유지를 독점하며 풀을 뜯기니 어깨는 하루가 다르게 낫는다. 그사이 말 옆에서 떠나온 건너편 초원을 다시 멀리서 바라보는 행운을 얻었다.
멀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평선에서 바람이 서로 휘감기고, 티끌 같은 하얀 점이 생겨나 가까스로 하얀 선으로 자라더니, 슬금슬금 다가오면서 어느덧 하늘을 찌르는 용오름 기둥이 되어 동쪽으로 기나긴 벌판을 건넌다. 가을에는 이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힘이 좋은 녀석은 강을 건널 때 가끔 물줄기까지 말아 올리는 것도 볼 수 있다. 계절은 이렇게 정직하게 다가와, 다시 서풍의 시간이다.
신고도 없이 국경을 건너는 용오름을 볼 때면 부럽고 서글프다. 바람끼리도 그렇게 묻고 다그칠까? ‘너는 어디서 온 놈이냐? 타지크, 우즈베크, 카자흐, 러시아? 어디 출신은 이리 오지 마.’ 바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새로 온 바람은 먼저 간 바람 역시 비슷한 길을 떠돌았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을 테니.
배우기 위해 잠시 머물고 있는 국경 마을 다롯, 오후 수박을 사러 시장을 거닐 때 그들이 다가온다. 차에서도 내리지 않은 채 “후자오(?照, 중국어로 여권), 후자오” 주억거린다. 중국어로 물으니 중국어로 대답해주었다. “후자오메이유.”(?照?有,여권 없다) 못 알아듣더니 당장 키르기스 말로 바꾸어 묻는다.
“여권 어디 있나? 차에 타라.”
“여권은 여관에 있다. 당신들이 따라오라.”
동양인 여행자처럼 보이면 일단 중국인으로 간주하고 취조식으로 묻는다. 요즘 그들은 중국인, 정확히는 신장(新疆)을 벗어난 이들을 사냥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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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경 가까이에 있는 파미르. 이곳에서 물길이 나뉜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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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게 돈통을 넘긴 택시 기사
그보다 일주일 전. 카자흐-키르기스 국경을 지나는 장거리 택시는 숲에서 불쑥 나타난 경찰을 보더니 스스로 차를 세웠다. 그는 말도 없이 돈통을 열어 그날 우리 네 손님에게 받은 돈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만나면 그날 노동의 대가는 없는 셈이다.
키르기스로 들어와서 오시로 가는 길에 다시 장거리 택시를 탔다. 늙은 기사 아저씨는 목적지를 겨우 몇십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 어느 어둑어둑한 곳에서 그들에게 주머니를 털려버렸다. 이제 중앙아시아에서 제복만 보면 하이에나의 줄무늬가 생각나 움츠러든다.
다시 그 한 주 전. 이르케시탐 키르기스-중국 국경에서 그 친구는 집요하게 물었다. “동투(東突, 동투르키스탄)의 범위는 어디이고, 그곳의 주요 주민은 누구인가? 당신의 생각을 말하라.”
동투르키스탄은 신장 남부고 그 주민은 주로 위구르인이라고 말하다 흠칫하곤, 짐짓 딴소리를 했다. “카스피해 동쪽이 동투다.”
카스피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자는 “진짜” 내 생각을 알기 위해 새벽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초원에서 쫓겨나 오아시스에 갇히고, 다시 오아시스에서 말살을 기다리는 그 민족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아내와 아이들은 굶으며 취조실 밖에서 거의 밤을 새웠다. 내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과 아비를 분리시켜 학대할 이유가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위구르인 ‘분리주의자’와 그 동조자를 잡기 위해 신명을 바친다.
“보통 백성의 안녕을 위해 우리는 밤을 새워도 피로한 줄 모른다.” 그자들 중 하나가 한 말이다.
또다시 몇 주 전, 키르기스 제2의 도시 오시에서 나는 그들에게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하루에 두번 뜯어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소?”
다행히 그들은 완강한 나를 버리고 금세 다른 먹이로 다가갔다.
소문에 곧 비슈케크에는 중국 기업의 도움을 받아 거리마다 감시카메라를 달 계획이라고 한다. 카자흐 땅에서 흔히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정적들을 감옥에 넣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움직이는 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는 모두 말뚝에 비끄러매야 성이 차나 보다.
카자흐-키르기스-중국 국경지대
관리들이 마구잡이로 감시 통제
‘움직이고 생각하는 이’ 붙잡아서
툭하면 돈 뜯고 “위구르냐?” 물어
인간 이룩한 정주문명에 회의감
법이란 재산, 여자, 자식, 노예 등
소유권 정하기 위한 것 아닌가
가난하나 자유로운 유목정신으로
현대의 노예 사슬에 저항할 터
그보다 또 몇 달 전 투바 공화국의 산중으로 들기 전에 안내인 아이다는 묻지도 않고 나를 경찰서로 먼저 데려갔다. 총을 허리에 차고 ‘왜 산에 들어가는가’ 힐난조로 묻는 러시아 경찰에 나는 주눅들고 말았다.
“산에 들어가는데 왜 경찰서에 가야 하오?” 경찰서를 나오며 은근히 항의해 보았지만 그녀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 지금 새 학기 등록을 위해 학교로 가는 길에 들른 우룸치 공항. 나는 네 손가락의 지문을 입력하고, 동공 검사를 참아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책을 다 쏟아내고 한 권씩 펼치며 한 질문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책이 많은가?”
한참 지나서 나는 대답했다.
“나는 학생이다.”
학생 가방에 책이 많은 이유를 대야 하는가? 널브러진 책 중에는 <파우스트>도 있었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괴테의 그림이 허공을 응시한다. 진리를 찾아 헤매던 어떤 인간의 초상이 저 책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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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고원의 풀을 맘껏 뜯어먹은 야크는 살이 쪘다. 몸피를 불린 그에게는 가을의 찬 바람도 무섭지 않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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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계곡을 건너다가 주인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던 ‘바람’. 공원국 작가가 그때 다친 바람의 어깨를 담요로 감싸고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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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은 인생이 풍부한 사람”
지금 제복을 입은 유령들이 고원을 떠돌고 있다. 감시의 전염병이 대지로 퍼지더니 눈에 띄는 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달려들어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중국 국경경찰이 가장 집요하게 ‘왜 당신 남편은 이렇게 많은 비자로, 이렇게 많은 지역을 움직이는가’라고 물을 때 아내는 하소연하듯 대답했다.
“우리 남편은 인생이 풍부한 사람이에요.”
과연 지난 인생이 풍부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수천년 동안 인류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 회의가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인간 스스로가 양심과 판단의 자유를 버리고 대신 제3의 심판자에게 그것을 맡겨버린 뒤, 그가 채운 족쇄를 찬 채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선 게 정주의 역사가 아닐까? 정주문명이란 오는 물결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않고 썩어가는 고인 물, 한쪽 둑을 트지 않으면 모두가 썩어 죽을 죽음의 웅덩이가 아닐까?
회의는 슬픔으로 증폭되고, 심지어 인류의 진보는 모두 조작이 아닐까 하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어떤 순결한 여인에게 “신의 노여움이 너를 사로잡으리라. 심판의 나팔소리 울리리라”라고 위협한 이가 천사가 아니라 악령이었다는 사실, 겨우 문학 속에 있는 약간의 이성에 희망을 걸며 비척댄다.(직접 인용은 정서웅 역, <파우스트>)
책을 찾아보았지만 정주문명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말뚝에 묶는 것에서 출발했고 지금도 그 망치질은 멈추지 않고 있다는 확신만 더해졌다. 여자를 남자에게, 어떤 남자를 다른 남자에게, 그리고 자유민을 땅에, 마지막으로 땅을 왕에게 묶어둔 뒤, 다수를 소수를 위해 봉사하는 노예로 만드는 것이 정주문명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문자가 말하는 것은 죄다 그런 것이었다. 서기전 18세기 어느 무렵에 쓰였다는 함무라비의 법전도 그렇게 밝히고 있었다. 토대가 확고한 영원한 왕권을 위해, 샤마시와 마르두크로부터 권능을 받은 목자 함무라비, 군중을 대신하여 사원을 지키고 성읍을 풍요롭게 하는 자. 그가 백성의 안녕을 위해 법을 선포한다고 한다. 그는 받았고 군중은 받지 못했다. 그가 지켜줄 뿐 군중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그의 법이란 재산과 여자와 자식과 노예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것, 자유민과 그 나머지의 차별을 명확히 해주는 것 이상은 없었다. 결국은 다수가 소수의 소유물이 되고 노예가 되는 것이 법의 목적이었다.
아닌가 하여 더 찾아보았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그리스. 그 옛날의 정주문명은 예외 없이 노예사회였다. 중국에는 그렇게 많은 노예가 없었다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상앙과 진시황의 법을 보라. 오(俉)를 지어 서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각자는 꼬박꼬박 노동력과 세금을 국가에 바치고, 전쟁에 나가라면 나가고 죽으라면 죽으라는 내용이 전부다. 그들을 자유민으로 부를 것인가? 명·청대의 이갑제 보갑제 따위 연대 책임제, 일제의 괴뢰국이 돌아다니는 이들을 비적이라 고깔 씌우고 보갑제를 부활시킨 것은 어떤가? 중세의 서구와 제정 러시아가 농노를 땅에 말뚝박은 것은 어떤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인도의 카스트, 그리고 갑오개혁으로 겨우 폐지된 우리의 신분제는 어떤가? 중동과 서구에서 노예무역이 사라지고, 노예제가 폐지된 날은 겨우 며칠 전인가?
오늘날은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돈으로 사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 기회를 봉쇄당한 이들, 하루 종일 작업장에 있어야 기아를 면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노예보다 얼마나 나은가?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가 쌓은 문명은 결국 어쩌면 수만년 인류 역사에 대한 반역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사기>에 나오는 중항열(中行說) 언사가 섬뜩하게 와닿는다. 흉노가 부자, 부부, 군신의 예의도 모르고, 의관도 없는 종족이라고?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흉노는 짐승의 고기와 젖을 먹고 그 가죽을 입고, 가축은 물과 풀을 먹고 마시니 때에 따라 움직여 다닌다. 그러니 급할 때 사람들은 말 타고 활 쏘는 법을 익히고, 여유로울 때는 일 없음(無事)을 즐긴다. … (너희 한나라는) 상하가 서로 원망하며, (위에서) 궁실을 극히 화려하게 지어 대니 백성의 힘이 고갈된다. 백성은 밭 갈고 누에 쳐서 입고 먹고 성곽을 쌓아 대비하니 급해도 백성은 전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평소에는 일을 하느라 피폐해진다. 아, 흙집(土室)에 사는 사람아, 잔말 말아라.”
평소에는 자그마한 흙집에 갇혀 윗사람의 커다란 궁실을 위해 죽어라 일하고, 전시에는 거대한 흙집(城)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 그들에게 땅과 예의라는 족쇄를 채우는 것이 문명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노예는 쉴 수(無事) 없다. 그들의 주인처럼 쉰다면 주인을 우습게 여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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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무슨 경계가 있을까. 지난여름 서울에서 온 아이들과 키르기스 아이들이 초원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고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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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 작가가 파미르고원의 초원에서 책을 읽고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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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깊이의 영혼들
유목사회는 가난했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노예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을 일(목축)에 종사하니까. 같은 일을 하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예는 자유 유목민의 지위로 오른다. 이 사실을 정주 세계의 옹호자들은 유목경제는 ‘미개해서’ 노예노동을 대규모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노예를 부리려면 도주한 자를 징벌하는 진짜 감옥이 있어야 한다. 노예의 도주를 막을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 사마천이 말한다. ‘흉노 땅에서 온 나라에 옥에 갇힌 이는 몇 안 된다.’ 오직 토지에 말뚝 박아야만 노예의 자식을 계속 노예로 부릴 수 있다. 정주사회의 옹호자들은 다시 이를 노예를 관리할 조직과 관리 수단이 없는 ‘미개한 사회’라 부른다. 누가 나에게 노예로 살라 하면 나는 차라리 미개한 사회를 택하겠다.
공항에서 내 책을 뒤지는 그에게 나는 기어이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은 어찌 그토록 무례한가?”
“당신 뭐라고 했어?”
한 뼘 깊이의 영혼은 조약돌의 파문도 견디지 못하고 발끈한다.
쓰러진 파우스트의 영혼을 챙기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정직하게 내뱉었다.
“그것은 … 날개 달린 영혼이다. 하지만 날개를 뜯어내면 더러운 구더기가 되느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영혼은 썩는다.
지난 역사와 오늘의 반동 상황을 보면,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라는 파우스트가 내린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틀린 듯하다. 인간의 땅을 다 돌아보고 나서, 새로 개척한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자” 한 그의 꿈도 헛것에 불과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영혼을 담은 내 육체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이들에게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유목의 정신이란 바로 사슬에 대항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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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목장에서 바라본 사리모골의 모습.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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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아바스 제국이 전투를 벌였던 탈라스 계곡. 넓은 계곡의 저 아래에는 탈라스강이 카자흐스탄으로 흐른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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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국 작가/탐험가/역사·인류학 연구자. 동양사(학사), 중국경제(석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유목인류학(박사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목축 지대에서 생활하며 현장조사를 수행 중이다. <춘추전국이야기(1~11)>,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을 쓰고 <중국의 서진>, <말, 바퀴, 언어> 등을 옮겼다. 짐승에 기대어 옮겨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격조의 삶을 모색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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